저운임 강요받는 화물운전자, 이들도 안전하고 싶다

화물차는 낮이고 밤이고 계속 달린다. 몸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더라도 달린다. 화물운전자 A씨는 말했다. “도로에 전광판이 살아서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정신이 있는데 시야가 블랙아웃 된 경험도 해봤다. 아무리 앞을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다.” 이들은 왜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나.

 

 

과로·과속·과적에 내몰린 화물운전자
줄지 않는 화물차 사고


최근 5년간 정부는 신호등·과속단속카메라 추가 설치 안전속도 5030 등 교통안전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전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화물차 사고의 건수는 늘어나고 있다. TAAS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전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지난 2016년 총 22917건에서 2021203130건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화물차 교통사고의 경우 5842건에서 613건으로 소폭 증가했다.

화물차 사고로 인한 사망 수치는 전체 교통사고에 비해 감소세가 둔화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지난 20164292건에서 20212916건으로 감소해 32%의 감소율을 보였다. 반면 화물차는 212건에서 205건으로 3.3% 감소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화물차 사고의 주원인으로 과로·과속·과적을 지목한다. 과로는 긴 노동 시간에서 비롯된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2021 화물운송시장 동향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화물운전자의 일평균 노동시간은 12시간으로 집계됐다. 이 연구원은 과로한 운전자는 교통 상황을 잘못 판단하거나 차간 거리를 착각하는 등 교통사고 위기에 자주 놓인다고 전했다. 17년째 9.5t 화물차를 몰고 있는 이모(58)씨는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과로한 상태에서 멍하니 운전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속도로 출입구를 잘못 들어섰음을 깨닫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과속과 과적 역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높인다. 과속 시 운전자의 시야각은 좁아지고 제동거리가 늘어난다. 주행속도 40km/h에서 100도인 시야각이 100km/h에서는 60도로 좁아진다. 60km/h에서 80km/h로 속도를 높인 경우 제동거리는 32m로 늘어난다. 이 연구원은 과적이 지닌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과적 화물차의 경우 제동거리가 10m 이상 증가하는 탓에 돌발 상황에서 운전자의 민첩한 대처를 어렵게 한다고 했다.

 

저운임과 유가 상승에 허덕이는 화물운전자
정부는 응답하지 않는다

 

화물운전자는 왜 과로과속과적 운행에 내몰리는 걸까. 화물운전자 대부분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이들은 달마다 정해진 급여를 받는 대신 건마다 책정된 운임을 받는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다 보니 화물운전자는 4대 보험 가입, 산재 보상 등 제도적인 안전망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조은경 교수는 별다른 안전망 없이 운송량에 따라 수입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운임 구조에서 화물운전자는 더 오래, 더 빨리, 더 많이 운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적은 화물 운송업체의 이익 추구와 무관하지 않다. 업체는 한 번에 더 많은 화물을 실을수록 오가는 데 드는 물류비를 아낄 수 있다. 옥모(55)씨는 두 대에 보낼 양을 돈 몇만 원 더 보태 한 대에 실어 나르면 운송업체는 그만큼 이득을 볼 수 있다화물운전자도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 과적을 감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조은경 교수는 대다수 화물운전자가 받는 운송료에는 유류비나 보험료 등 운송 원가가 반영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화물운전자가 과로과속과적에 시달리는 배경에는 지입제가 존재한다. 이는 운수업체에 개인 차량을 등록한 운전자가 업체로부터 일감과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를 뜻한다. 지입제는 다단계 구조를 부추긴다. 다단계 구조에서 화물운전자는 과도한 수수료를 상급 업체에 지불해야 한다. 최 교수는 다단계 구조 안에 수수료만 편취하는 중간 운송사업자가 있다지입전문회사가 최소 3단계 이상 운송을 재위탁하는 동안 중간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화물운전자들은 수년째 얼어붙어 있는 운송료를 문제 삼는다. 이씨는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운송료는 거의 그대로라면서 힘에 부치더라도 생계를 유지하려면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두 박귀란 전략조직국장은 컨테이너 화물차의 경우 10년간 평균 운송료 인상률이 같은 기간 물가 인상률에 미치지 못해 실질적으로는 하락했다고 말했다.

운송료를 인상해달라는 요구는 늘 존재했다. 민주노총 화물연대는 매년 5월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해양대 최진이 인문한국연구교수는 주기적인 운송료 인상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때마다 기업의 경제적 피해를 고려해 파업 중단을 요구했다정부는 화물 노동자들의 요구안을 제대로 논의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부담 역시 화물운전자에게 과로·과속·과적을 부추긴다. ‘2021 화물운송시장동향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화물운전자의 지출 중 유류비는 평균 44.5%에 달한다. 이는 화물운전자의 지출 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박 전략조직국장은 “1년 전보다 40% 이상 유가가 인상돼 25t 화물차의 경우 월 250만 원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화물운전자 개인이 유가 부담을 통제할 수는 없다. 대신 이들은 자기 몸을 혹사해 적자를 감내하고 있다. 조 교수는 유류비 변동을 반영하지 않는 수익 구조는 정당하지 않을뿐더러 화물운전자 개인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면서 이들이 과로·과속·과적을 해서 적자를 메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화물운전자의 노동 조건부터 들여다봐야
 

안전 규정 강화와 개인의 인식 제고만으로는 화물운전자의 노동과 안전을 보호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운전자의 노동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더욱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 연구원은 전체 차량의 운행 시간을 전수조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현장 점검 자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전략조직국장은 “‘졸리면 쉬어가라는 식의 조언만으로는 사고율을 줄일 수 없다줄지 않는 화물차 교통사고가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화물차 교통사고를 예방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과로·과속·과적을 단편적으로 규제하기보다 화물운전자의 노동 조건을 들여다봐야 사고 예방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안전운임연구단 백두주 연구단장은 과로·과속·과적이란 현상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화물운전자의 노동 환경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라며 과로·과속·과적의 핵심 원인인 저운임을 비롯해 화물운전자의 취약한 노동 환경을 고려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저운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화물운전자의 운임비를 갉아먹는 다단계 고용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 교수는 화물운전자는 개인사업자로 일하고 있어 노동권을 보장받기 어렵다지입전문회사 중 유령회사를 없앰으로써 과도한 운임수수료를 낮추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 말했다.

정부는 화물운전자가 운임비를 정당하게 지급받을 수 있도록 안전운임제카드를 꺼내 들었다. 안전운임제는 매년 화물 운송비용을 새롭게 산출해 운송료를 산정하는 제도다. 3개월마다 평균 유가 변동률을 고려해 운송료를 책정하는 식이다. 그러나 모든 화물차종이 안전운임제의 적용을 받는 건 아니다. ‘2021 화물운송시장 동향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12월 기준 총 438331대로 집계된 화물차 중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인 컨테이너·시멘트 차종은 28천여 대에 그쳤다. 3일몰제**로 도입된 안전운임제는 오는 1231일 만료된다. 박 전략조직국장은 제도 시행 기간이 끝나면 그간 안전운임제를 적용받았던 차종의 운전자들도 다시금 열악한 환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 지적했다.

화물운전자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안전운임제는 실제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202111월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이 발표한 한국 안전운임 시행 효과 분석 및 지속가능한 제도시행을 위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운전자들의 졸음운전(과로)으로 인한 사고위험 경험 비율은 6.7%p 감소했다. 과속·과적 운행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과속으로 인한 사고 경험 비율은 12.8%p, 과적으로 인한 사고 경험 비율은 5.4%p 감소했다.

현장 노동자 역시 안전운임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안전운임제는 트레일러 운전자 천모(56)씨에게 주말을 안겨줬다. 천씨는 안전운임제 덕분에 임금이 올라 이제는 주말에 일하지 않고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서 과로·과속·과적이란 악습도 끊어냈고, 무엇보다 가족과 주말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돼서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안전운임제를 확대·연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 연구단장은 안전운임제를 적용받는 차종은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적용 대상을 모든 차종으로 확대해야 제도의 시행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박 전략조직국장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실효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운전자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서 일몰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이현성 기자
leehs9800@yonsei.ac.kr
최준성 기자
jschoi0609@yonsei.ac.kr

그림 민예원

 

* 안전속도 5030: 보행자 통행이 많은 도시부 지역의 차량 제한속도를 일반도로는 50km/h, 보호구역·주택가 등 이면도로는 30km/h 이하로 하향하는 정책
** 일몰제: 시간이 지나면 해가 지듯이 법률이나 각종 규제의 효력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없어지도록 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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