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의 현실을 담은 영화 『어시스턴트』

 

영화는 대개 화려하고 이상적인 설정을 통해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반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영화는 관객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여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을 담은 영화가 있다. 2개월 차 사회초년생의 일상을 통해 미국의 부조리한 회사 구조를 드러낸 어시스턴트를 소개한다.

 

일상이라는 무게

 

어시스턴트는 최소한의 카메라 움직임과 사무실 풍경만으로 사회초년생 제인의 일상을 담고 있다. 영화는 대사를 통해 제인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다. 영화는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혀 무심하고 흐릿한 주인공의 표정과 간결한 대사만으로 구성돼 있다.

이른 아침, 주인공 제인은 졸음을 꾹 참고 출근길에 나선다. 택시를 타고 지나는 도로 위, 그가 내다보는 세상은 조용한 정도를 넘어 삭막하게 느껴진다. 사무실에 도착한 이후의 일상도 다를 바 없다. 제대로 된 휴식 없이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삶이 이어진다. 그에게는 친구를 만날 시간과 아버지 생신을 챙길 여유조차 없다. 영화 제작자를 꿈꾸며 원하던 회사에 취직했지만, 그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그를 붙잡는 것은 회사 사람들의 조언과 안부를 묻는 부모님의 전화뿐이다.

평범해 보이는 동료들과의 관계도 사실 엉망이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동료들 역시 제인을 힘들게 한다. 그들은 거래처의 컴플레인 전화를 제인에게 돌리는 등 업무를 떠넘기고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방관하며 즐긴다.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괴롭힘은 오직 제인만이 느낄 수 있는 정도로 은밀하게 이뤄진다.

과중한 업무의 경계와 직장 내 인간관계로 어두워진 제인의 표정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의 삶과 맞닿아있다. 침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의 답답함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적막한 분위기에 깊은 현실감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진행되는 내내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부조리가 일상이 된 사회 속에서

 

어시스턴트는 익숙한 일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대표의 비리를 알게 된 제인은 인사팀에 찾아가 고발한다. 그러나 직원은 오히려 그를 탓하며 심리적으로 그를 위축시킨다. 부조리와 불합리가 일상이 된 곳에서 그의 양심과 도덕성은 어떠한 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사 내 권력 구조에 길들여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동료들의 모습 또한 낯설지 않다. 관객들은 힘없는 제인의 모습에 분노하지만, 점차 동료들에게 물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는 보수적인 직장 문화로 퇴사를 고민하는 현 청년들의 문제를 보여주는 듯하다. 제인은 침묵을 선택했지만 우리는 과연 끝까지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지난 2021년 구직사이트 사람인이 기업 500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년 이내 조기 퇴사하는 청년들의 비율은 약 30%에 달한다. 맞지 않는 직무 적성과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족이 가장 큰 이유다. 젋은 사내 문화를 조성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기대와 다른 현실에 좌절한다. 어시스턴트는 직장 문화의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과거와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스스로 질문하게끔 할 뿐이다. 우리 역시 어느새 부조리에 익숙해져 불합리한 직장 문화에 안주하고 있진 않을까.

어시스턴트는 자유분방한 사내 분위기와 수평 문화를 강조하는 기존의 미국 영화들과는 다르다. 영화는 갑과 을의 관계, 책임 전가, 부조리에 대한 침묵 등 현실적인 직장의 모습을 담는다.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미국의 사내 문화는 우리와는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깨졌을 때, 관객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영화는 히어로물처럼 통쾌한 복수로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영화에 끝까지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제인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어서가 아닐까.

 

영화는 직장 내 보이지 않는 따돌림과 교묘한 심리전, 뚜렷한 권력 구조 등 현실적인 회사 생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방관자가 돼가는 사회초년생 제인의 모습은 무력감을 주지만 동시에 전 세계 직장인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었다. 우리는 왜 침묵하고 방관자가 된 것일까. 불합리한 회사의 구조가 만들어낸 방관자를 쉽게 비난할 수 있을까. 영화는 무덤덤한 제인의 모습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과연 카메라 앵글 밖의 제인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세상의 모든 제인에게 묻고 싶다.

 
 
 

글 서지안 기자
forjinuss@yonsei.ac.kr

<자료사진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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