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유정미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만나다

평등과 고정적인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다양한 젠더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20대를 중심으로 가부장제, 징병제 등 젠더 이슈에 대한 논쟁과 갈등이 온라인상 혐오의 형태로 확산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성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어떤 논의가 필요할까. 유정미 보건복지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만나 대한민국 젠더 담론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다.

 

실재하지 않는 실체, ‘젠더 갈등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진행한 ‘2022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약 67%가 한국 사회의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는 젠더 갈등을 의식하는 현상이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유 정책담당관은 젠더 갈등은 실존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낳은 불합리에 대한 저항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 젠더 갈등프레임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면서 남녀 공동의 문제로 보아야 할 이슈들을 한 성별만의 문제로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성 불평등을 다루는 시선은 젠더 갈등프레임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N번방 사건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묵인해온 사회 구조의 산물이다. 그러나 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관련이 없는 개별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과 모든 남성이 잠재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립하며 N번방 사건은 단순한 젠더 갈등사건으로 귀결됐다. 이와 관련해 유 정책담당관은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대한 반발을 단순히 젠더 갈등으로 치부할 경우, 문제 원인의 정확한 진단을 방해하고 불합리에 대한 시정 요구를 축소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젠더 갈등프레임은 근본적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기보다 갈등만을 부각해왔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격하해 이들의 발언권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젠더 갈등프레임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를 단순한 남녀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보이도록 했다.

유 정책담당관은 불평등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젠더 갈등프레임의 해체는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불평등을 젠더 갈등으로 정의해 특정 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정책담당관은 불평등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위해 젠더 갈등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의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적극적 조치, 실질적 평등 보장의 열쇠

 

성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는 어떻게 이루어져 왔을까. 지금까지 불평등의 정책적 시정 조치는 대부분 기회의 평등에 초점을 맞춰왔다. 여성의 교육권이 확대됐고, 간호직을 포함한 특정 업종에서의 성별에 따른 지원 자격 제한이 사라졌다. 그러나 유 정책담당관은 단순히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공정성을 실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동등한 기회가 보장됐다고 하더라도 사회 기저에 만연한 차별적 인식이 개입한다면, 이는 결코 평등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대부분의 기업은 인사 채용에서 성별과 관련한 지원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출산이나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취업 시장에서 여성은 상대적인 약자일 수밖에 없다. 유 정책담당관은 동등한 기회를 부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불평등한 결과가 정당화된다고 지적했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평등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유 정책담당관은 궁극적인 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여성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가치 판단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적극적 조치가 정부 정책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사회에선 불평등 현상에 대한 진단이 부족하고 젠더 갈등의 문제로 과대대표 돼있는 측면이 있다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적극적 조치를 도입하고 공적 논의를 통해 사회적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유 정책담당관은 우리 사회의 궁극적인 성평등 지향점은 갈등 관계가 아닌 서로 배려하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그 방향성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허상뿐인 젠더 갈등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을 이제는 멈춰야 할 때다. 대립 양상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불평등을 함께 고민할 때 비로소 진정한 성평등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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