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들여다보다

▶▶ 완화의료 과정에서 느낀 경험을 전하는 경균이. 환아를 연민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희망을 보내야 한다.
▶▶ 완화의료 과정에서 느낀 경험을 전하는 경균이. 환아를 연민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희망을 보내야 한다.

 

힘들어 누워 있는 친구들도 완화의료팀을 한 번 만나고 나면 일어나서 다음 만남을 기다릴 걸요?” 경균이(12)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할 때 완화의료팀을 처음 만났다. 치료 도중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서 에크모(ECMO) 치료를 받기도 했다는 그는 최근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치료가 끝나 외래 진료를 받는 중이다.

씩씩한 표정의 경균이는 인터뷰 내내 연세 세브란스 완화의료팀 빛담아이와 함께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경균이는 친구들에게 완화의료가 왜 필요한지 설명해주고 싶다고 했다. 완화의료팀과의 동행은 경균이에게 힘이 나는경험으로 남아 있다. “완화의료팀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정말 기쁘고 즐거웠어요. 같이 보드게임도 하고 깜짝 파티도 하고.”

경균이 어머니에게도 완화의료팀과의 만남은 큰 위로가 됐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면회가 어려울 땐 완화의료팀이 저를 대신해 영상 통화도 하고 경균이를 여러모로 돌봐주셨어요. 경균이의 치료 과정을 함께해주신 완화의료팀에게 늘 감사해요. 이런 경험을 다른 환아와 가족들과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권승연 교수는 빛담아이의 유일한 의사 선생님이다. 권 교수는 빛담아이가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가족이라고 말했다. “정말 많은 아이들이 제 가슴에 있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아이가 좋아했던 건데하고 떠오르기도 하고, 밥을 먹다가 그 아이는 이 음식을 좋아했지하고 문득 생각이 나요.” 지난 12일 연세암병원 소아청소년암센터에서 90분가량 권 교수, 경균이, 경균이 어머니를 차례로 인터뷰했다. 아픔을 희망으로 읽으며 서로를 끈끈한 가족이라 표현하는 이들로부터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해 들었다.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 A to Z

 

▶▶ 무균실에서 치료 받던 중 경균이는 빛담아이 놀이 치료사와 함께 스피커폰으로 빙고 놀이를 했다. 빛담아이 제공
▶▶ 무균실에서 치료 받던 중 경균이는 빛담아이 놀이 치료사와 함께 스피커폰으로 빙고 놀이를 했다. 빛담아이 제공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갖고 살아가는 소아청소년과 그 가족이 겪는 신체적·심리사회적·영적 고통을 완화하고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실시되는 의료서비스다. 해외에서 서비스가 처음 시행될 적엔 말기 암 환자와 임종을 앞둔 소아를 대상으로 했으나, 다양한 중증 질환을 앓는 아이들과 그 가족으로 지원 대상이 점차 확대됐다.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두 개념 사이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권 교수는 완화의료가 중증 질환 진단부터 치료까지 삶을 이어가는 모든 과정에 동반되는 돌봄이라면, 호스피스는 임종과 사별 과정에서 제공되는 돌봄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특히 소아청소년 완화의료의 경우 기존 치료를 병행하며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필수 의료 서비스 중 하나로 간주한다. 권 교수는 “2000년대 미국의 유수 병원에 완화의료팀이 신설된 이후 대다수의 병원에서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제공하고 있다많은 국가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돌봄인 데 반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의 불모지인 국내에 이를 들여오는 과정은 매우 지난했다. 아동 청소년 완화의료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완화의료 놀이치료팀 전문 수련과정을 개설하는 등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정착시키려는 시도가 다방면에서 이어졌다. 지난 2018년에 들어서야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이 소아청소년 완화의료 시범사업’(아래 시범사업) 기관으로 선정되며 국가 차원의 지원이 시작됐다. 현재 국내에서 10개 기관이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치료를 받거나 의료 장비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20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중증질환 산정특례가 적용된 만 24세 이하 환자는 93555명이다. 2012년 수치인 75101명에 비춰볼 때 8년 사이 2만 명 정도가 늘어난 셈이다.

늘어나는 서비스 수요에 맞춰 빛담아이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료가 많이 발전한 덕분에 예전엔 치료가 어려웠던 난치성 질환을 많이 치료하고 있어요.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생존하게 된 아이들이 오랜 기간 치료받으면서 느끼는 고통이 중요해졌죠. 얼마나 고통을 느끼는지가 아이들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거든요.” 빛담아이가 아이들의 조금 더 즐거운 현재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빛담아이, 생명의 빛을 나누는 전인(全人) 돌봄

 

빛담아이는 생명의 빛을 가득 담은 아이라는 뜻이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환아들이 질환으로 힘들고 지치더라도 기쁨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빛담아이에는 의사, 간호사, 놀이·음악·미술 치료사가 함께한다. 빛담아이를 총괄하는 권 교수는 아이들의 통증을 완화하는 약물 조절을 담당한다. 질병 경과를 아이와 부모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고, 앞으로의 치료 과정을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 경균이가 빙고 놀이를 마친 후 뿌듯하게 웃어보이고 있다. 빛담아이 제공
▶▶ 경균이가 빙고 놀이를 마친 후 뿌듯하게 웃어보이고 있다. 빛담아이 제공

 

환자들의 질환과 그 정도는 저마다 천차만별이다. 주로 소아암, 중증 심장질환, 중증 호흡기계 질환, 장기 이식이 필요한 만성질환을 가진 환아와 그 가족이 빛담아이를 찾는다. 빛담아이에서는 신체적·심리사회적·영적 고통에 대한 전인 돌봄을 제공하고 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신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정서적 프로그램은 놀이, 미술, 음악치료와 상담 등으로 구성된다. 권 교수는 놀이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언어라 할 만큼 발달 과정에 중요하다프로그램을 맡은 선생님들은 질병 경과를 잘 이해하고 의료진과 소통하며 아이들의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픈 아이뿐 아니라 부모와 형제자매에게도 영적 고통을 덜기 위한 심리 상담이 제공된다. 부모는 아픈 아이를 돌보며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환아의 형제자매는 아픈 아이에 비해 부모의 돌봄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아이와 사별한 이들은 사별 이후를 직시하기까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빛담아이에서 사별 상담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이유다.

아이와 부모는 빛담아이와 함께할 때 서로의 변화를 목격하곤 한다. 병원을 무서워하던 아이들이 놀이치료를 받으러 씩씩하게 병원에 오고, 자녀를 돌보며 심신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부모가 상담을 통해 제법 큰 위로를 받는다. 이러한 변화는 완화의료팀이 서로를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권 교수는 서로 소소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기꺼이 힘이 돼 주는 선배환아와 가족들이 정말 많다완화의료팀은 이들의 경험을 다른 가족에게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의사, 간호사, 미술·놀이·음악 치료사로 구성된 세브란스 완화의료팀 '빛담아이'는 환아와 그 가족의 ▲신체 ▲정서 ▲영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의사, 간호사, 미술·놀이·음악 치료사로 구성된 세브란스 완화의료팀 '빛담아이'는 환아와 그 가족의 ▲신체 ▲정서 ▲영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환아와 부모가 건네는 위로는 의료진의 일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권 교수는 빛담아이가 일방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이 아니라 함께하며 나누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의료진으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들 때마다 환아와 가족이 전하는 위로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운 재활치료 중에도 사랑해요라고 힘내서 말해주는 아이들, ‘선생님들 걱정된다며 주머니에 귤을 하나씩 넣어주는 부모님들을 보며 그는 큰 힘을 얻는다.

 

“Umbrella of Care” 더 안전한 우산을 위해

 

▶▶ 무균실에 있는 동안 빛담아이와 함께 한 생일 파티는 경균이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빛담아이 제공
▶▶ 무균실에 있는 동안 빛담아이와 함께 한 생일 파티는 경균이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빛담아이 제공

 

권 교수는 완화의료를 설명하는 여러 표현 중 ‘Umbrella of Care’란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삶과 질병에서 오는 고통은 비처럼 피할 수 없어요. 모든 비를 다 막을 순 없더라도 우산을 쓰면 당장의 비를 피할 순 있죠. 그런 점에서 완화의료는 고통 속 우산과도 같은 존재라 생각해요.”

이 우산을 펼쳐 환아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국내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현장에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권 교수는 지금 인원으로는 모든 아이의 상태를 진단 초기부터 따라가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시범사업에 따르면 완화의료팀 필수인력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각각 1명에 그친다. 의사 1, 간호사 2, 미술·놀이 치료사 각각 2, 음악 치료사 1명이 활동 중인 빛담아이만 보더라도 3명이 현장을 모두 돌보는 건 버거워 보인다.

아이와 그 가족의 삶에 가닿는 제도 개선도 절실하다. 희귀·중증난치성질환으로 치료받는 환자의 요양급여 본인부담률을 10%에 맞추도록 제도화했으나, 현재 환아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는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질환을 가진 아이와 그 가족의 삶을 지원하는 것을 사회적 의무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질환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권 교수는 말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의료 장비, 휠체어, 목욕 장비가 정말 다양한데 이런 치료 장비 지원이 더 있었으면 해요. 부모에 대한 관심도 필요합니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간병과 육아를 병행하는 분이 많기 때문에 경제적인 지원의 폭이 넓어졌으면 해요.”

일상에서든 병원에서든 환아를 안쓰럽거나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건 환아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큰 힘이 된다. 권 교수는 사람들은 때때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이들에게 연민을 보낸다우리 사회가 환아를 따뜻하게 바라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둘러싼 인식의 틈에 희망이 들어서야 한다고 권 교수는 강조했다.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희망이 없어 보여도 당사자들은 희망을 품고 있고, 그렇기에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보거든요. 완치율과 치료율이 낮은 것과 상관없이 아이는 부모에게 늘 희망의 대상이잖아요. 그 희망을 함께 공유하고 지지해 줄 우리 사회 구성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환아와 그 가족의 어려움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따뜻한 관심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우리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가운데 환아와 가족이 더 안전하게 치료받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경균이는 말했다. “아파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힘들고 아픈 친구들이 완화의료팀을 만나 한 시간이라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글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사진 김대한 기자
3.18h@yonsei.ac.kr

<사진제공 빛담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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