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훤(글창융국문·21)
김지훤(글창융국문·21)

 

지난 3월 25일, 1889호 제작의 출근을 앞둔 우리신문사는 다수 기자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으로 인한 휴간을 급하게 결정했다. 이에 동료 기자님들께서 휴간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주셨다. 취재원·독자와의 약속, 기사의 시의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이런 의견 교환 속에 기자란 어떤 것인지 많은 고민이 들었다. 우리신문사의 구성원으로서, 기자로서 나는 과연 그 직책에 맞는 행위를 해왔던가에 대한 의문도 스스로 제기해봤다.

신문 제작은 어찌보면 자의적 해석으로 구성된다. 기사를 완성하는 것에 있어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담고자 노력하지만, 발제부터 취재까지의 과정에서 기자의 방향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을 토대로 한 취재는 일명 ‘답정너’가 되기 일쑤다. 편협한 시각으로 정해진 답을 찾는 취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취재원이 좋은 말을 아무리 많이 해줘도 정해진 방향성 위주로 멘트는 편집된다. 1~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하고도 겨우 한 문장 정도만 인용할 때도 존재했다. 힘들게 시간을 내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해준 취재원에게 죄송한 마음에 발행된 신문을 전달하는 것을 차일피일하다 결국 보내지 않기도 했다. 취재원과의 신뢰를 깨뜨렸던 행위였다. 그 순간 난 너무나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던 나의 기자 시절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때로, 아니 나는 아주 자주 기자로서의 나의 사명감을 망각하곤 했다. 사진영상부의 취재는 말 그대로 `발로 뛰는 취재'로, 타 부서의 사진요청에 의해 시작된 취재는 이동시간보다 훨씬 짧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나의 취재는 주로 간단한 사진 촬영 정도가 전부였다. 사진기자일지라도 사진의 캡션을 작성하기 위해선 그 기사의 정보를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수많은 기사의 참여자였던 나는 그 모든 기사를 글기자처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때도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공부를 진행하지도 않았다.

연세춘추 기자 생활은 어떤 게 좋은 기사인지에 대해서 나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신문엔 안타깝거나 공분을 사는 사건 사고들이 많이 보도된다. 이러한 보도는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진행하다가도 사건과 관계된 이들에게 원치 않는 2차 피해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신문사에서 발행했던 치매 환자 관련 기사는 ‘치매극복의 날’을 맞아 기획했던 기사였다. 그리고 우리 부서는 치매 환자의 촬영을 자제하기 위해, 그들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그들과 동행하는 사회 프로그램 등에 초점을 둔 기사로 발행했다. 이는 사건을 바라보는 기자의 시선에 따라 기사의 결이 긍정적인 효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기사는 일명 ‘냄비근성’처럼 단순히 화제에 휩쓸렸다가 식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 보도에 책임을 다하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내가 작성한 기사의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내용은 기성언론의 보도를 통해 주목받은 바 있다. 이들을 위한 ‘출생통보제’가 입법이 준비되고 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취재원은 말했다. 기자는 기사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계속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학내 언론사인 우리신문사에서도 기자는 이러한 취재와 기사 작성을 지속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하지 않고, 급급하게 나에게 주어진 급한 업무를 처리하던 나를 반성한다. 앞으로의 남은 임기에서라도 회고를 통한 부족했던 나의 일면을 채우고자 한다.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치열하게 많은 취재원 및 동인과 함께했던 우리신문사에서의 나의 마지막 임기가 다가오고 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곧 그 미래는 과거의 어느 한순간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우리신문사에서의 추억은 기록된 과거로 나를 대표하는 또 다른 상징성으로, 이후에도 계속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우리신문사의 경험을 통해 숫자 ‘1’이 되고 싶다. 숫자 ‘1’은 숫자 ‘9’에서의 ‘아홉수’가 완전의 상징, ‘0’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로 여겨진다. 그리고 ‘1’은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난 항상 무엇이든 초심처럼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는 ‘1’의 존재가 될 것이다. 남은 임기도 그렇게 잘 마무리한 후 여기서 배운 다양한 지식을 앞으로 펼쳐질 세상에서 잘 활용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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