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매거진부장(행정/문화인류·19)
김지원 매거진부장(행정/문화인류·19)

 

지난 4월 18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지 757일 만에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모든 조치가 전면 해제됐다.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이 해제되고, 사적 모임을 제한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지난 5월 2일에는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됐다. 2년여간 어디서든 착용해야 했던 마스크를 이제 실외에서는 벗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이들은 대역죄인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길거리에는 여전히 마스크를 벗고 있는 사람보다는 착용하고 있는 이들이 더 많다. 이에 ‘마스크 벗기 눈치싸움’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다.

사적모임 인원 제한 해제부터 마스크 실외 의무 착용 해제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포함한 2년간의 습관은 ‘해제’와 ‘자유’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게끔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함에 따라 정부는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확진자 동선 추적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소위 ‘K-방역’이라 명명됐으며, 코로나19에 감염된 이들을 ‘n번’째 확진자로 지칭하고, 이들의 동선 정보를 언론에 공식적으로 공개했다. 확진자 동선과 접촉자를 포함한 감염병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방역 조치는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부작용 역시 존재했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초기, 감염에 대한 공포는 확진자에 대한 비난과 억측으로 이어졌다. 온라인에는 확진자의 동선 정보에 따른 유언비어가 무분별하게 펴졌으며, 확진자는 신상털이와 악성 댓글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질병관리본부는 확진자의 실명과 거주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고 전했지만, 확진자의 신상 문의가 쇄도하자 일부 지자체가 확진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이름과 성씨를 공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감염보다도 확진자가 됐을 때 찍힐 낙인이 두렵다는 분위기가 커졌다.

감염자와 비감염자의 경계는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자와 안전하지 않은 자의 경계로 이어졌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백신패스’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역패스 제도를 실시했다. 백신을 2차까지 접종 완료한 이들에게만 특정 공간 출입과 사적 모임을 허용하는 제도다. 방역패스 제도가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백신 접종을 독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역패스 제도는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감염과 확진자에 관한 인식은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4차 대유행을 기점으로 전환됐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약 60만 명을 돌파하며, 코로나19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병이 됐다. ‘n번’으로 카운트했던 확진자의 순서와 동선 추적은 더 이상 무의미한 것이 됐다. 확진자의 자리는 이제 모두에게 열렸다. 지인들과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나누기도 했다. 당장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다. 나 역시 지인들과 가족에게까지 다가온 바이러스를 피할 수는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철저히 준수했고 백신 접종도 완료했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한지 약 2년 만에 나는 ‘n번째’ 확진자가 됐다.

나는 내가 정확히 한국의 몇 번째 확진자인지 모른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내 확진 사실에 비난을 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내 감염의 경험은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사건이나 거짓말쟁이로 불리며 징역 6개월의 실형을 받았던 학원 강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나는 내 사적인 동선 정보가 공개될까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사회에 민폐를 끼쳤다는 가해자로서의 낙인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통제가 가능할 것 같았던 바이러스가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병이 되면서 감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했기 때문이다.

일상의 회복을 앞두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확진자로서의 경험은 약 2년간의 코로나19의 기억을 되돌아보게 한다. 확진자 동선 추적부터 방역패스까지,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감염자와 비감염자,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자와 안전하지 않은 자를 나누려는 시도는 계속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의 부작용으로서 나타났던 낙인의 문제는 감염병을 대처하는 사회의 방식에 고민을 남긴다. 감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질병 확산의 가해와 피해의 경계는 어디인가. 감염이 삶의 조건으로서 자리 잡게 된 지금, 나는 ‘감염의 윤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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