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속 청년의 모습을 살펴보다

지난 4월 11일,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 서비스업체 ‘웹젠’의 노동조합이 파업을 결의했다. 웹젠이 최대 매출을 기록했음에도 정당한 보상을 개발자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속 성장하고 있는 게임업계 이면에는 잠들지 못한 청년들의 무수한 밤이 있다. 게임을 즐기던 청년들은 이제 게임을 만드는 생산자로서 게임업계 노동자들을 위한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게임업계에서 이들은 어떤 상황을 겪고 있을까. 

 

게임을 즐기는 청년?
게임을 만드는 청년!

 

게임과 청년이라는 두 단어는 다양한 측면에서 함께 언급된다. 게임업계에서 청년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간한 보고서 「2020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게임 제작 및 배급업에서 29세 이하 종사자의 비율은 약 25%였으며, 39세 이하 종사자의 비율은 약 77%로 나타났다. 이처럼 게임 산업은 청년층이 선호하는 고용 시장으로 자리 잡았으며, 게임과 청년은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많은 연관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년 일자리 절벽의 시대에서 직원으로 대부분 2030 세대를 채용하는 게임 산업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분야”라며 게임업계에 대한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 현 청년 세대는 게임을 직접 경험해온 세대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 이용관 연구위원은 “약 25년 전 게임 산업이 발전하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게임업계를 상대적으로 친숙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게임을 경험재로 접한 기억이 청년들이 게임 생산시장에 진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독립 게임 개발사 김종화 대표는 “현재 청년 세대는 10대일 때 가장 많은 시간을 게임과 함께 보냈다”며 “주변 지인들을 보면 자신이 재밌게 했던 게임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욕구로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게임 산업만의 특성이 청년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점도 이유로 지목된다. 게임 산업은 정보 통신 산업과 문화 콘텐츠 산업이 결합해 만들어진 산업이다. 한국게임학회 김영진 부회장은 “게임은 상호소통 콘텐츠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을 활용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청년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청년은 복합 문화 콘텐츠를 능숙하게 다뤘던 경험이 있기에 게임업계에 진입하는 데 수월하다. 

유연한 근무 시간과 차별화된 사내 복지 역시 청년들이 게임업계를 선호하는 이유다. 과거 게임업계에 종사했던 박모(38)씨는 게임업계에 종사하게 된 이유로 “정장을 입지 않고 책상에 게임 모형이 올려진 자유로운 분위기”를 꼽았다. 게임을 즐겼던 경험과 청년층이 선호하는 조직 문화가 맞물리며 많은 청년이 게임업계로 뛰어들고 있다.

 

좋아하는 게임 만들기 위해 입사했지만
잠 못 자고, 노동 불안 겪는 청년들

 

청년들은 즐겁게 게임을 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갖고 업계에 취업하지만, 기대와는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유연한 근무 시간이라는 조건에는 ‘크런치 모드’라는 이면이 존재한다. 크런치 모드란 신작 출시 전 야근과 주말 근무를 불사하며 고강도의 마무리 작업을 하는 근무 체제를 의미한다. 지난 2017년 게임 회사에서 일하던 20대 개발자의 돌연사가 산업재해로 인정되면서 크런치 모드는 게임업계 내 노동환경에 대한 중심 문제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게임업계에 종사할 때 3개월 내내 크런치 모드로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며 “오전 7시에 퇴근해 오후에 출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게임 출시를 앞둔 한 달간 집에서 잔 날보다 회사에서 잔 날이 더 많았다”고 덧붙였다. 늘어난 근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부재하다는 점도 문제다. 박씨는 “휴식이 약속되지도 않았고, 보너스는 정확히 딱 20만 원 받았다”며 “보상을 제대로 받지 않아도 넘어가는 분위기를 회사에서 조성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8년, 주 52시간제의 도입으로 크런치 모드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크런치 모드 경험률은 15.4%로 2019년 60.6%에 비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소형 게임사에서는 크런치 모드가 여전히 빈번하다. 5인 미만 회사 소속 종사자들의 경우 2021년 기준 48.3%가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중소형 게임사에서는 여전히 크런치 모드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청년들이 겪는 노동 불안정성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김 부회장은 “게임업계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정보통신 기술과 해당 시기 대중의 선호도가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격전장”이라며 “게임업계는 노동 불안정성이 최고조인 분야 중 하나”라 전했다. 일례로 국내 게임업계는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무산되면 소속 직원들을 권고사직시키거나, 다른 팀으로 전환 배치해왔다. 대기발령 상태에서 다른 프로젝트로 전환 배치되지 못할 경우, 권고사직으로 인지돼 사실상 퇴사 압박과 함께 정규직이어도 단기 계약직 신세가 된다. 김 대표는 “게임업계는 개발자로 뚜렷한 성공작을 내지 못할 경우 업계를 떠나는 시기가 타 업계에 비해 빠르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은 자유로운 이직이라는 장점을 보고 입사했지만, 현실은 업계 악습인 권고사직과 전환 배치 등의 노동 불안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청년들의 문화로 꽃피운 게임업계,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최근 게임업계는 호재를 맞이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콘텐츠 산업 경제적 파급효과」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 산업은 지난 2019년에 취업 유발 인원* 24만 4천334명을 기록했다. 이는 2019년 콘텐츠 산업 전체 취업 유발 인원의 35%에 달하는 높은 수치다. 고용 유발 인원** 또한 지난 2019년 17만 9천624만 명으로 전체 콘텐츠 산업 중 가장 높았다. 게임 산업은 취업 및 고용 유발 효과를 일으켜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왔다.

그럼에도 게임업계가 더 큰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우선 크런치 모드가 만연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연구위원은 “업무량이 항상 많은 게임업계의 특성이나, 시스템 오류와 같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 등이 크런치 모드를 야기한다”고 말한다. 업계 특성상 크런치 모드 자체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크런치 모드가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박씨는 “경영진이 완전히 바뀌거나 인수합병 등의 큰 변화가 있을 때 보여주기만을 위해 밤샌 적이 있다”고 전했다. 크런치 모드를 최소화하며 법으로 보장된 노동시간을 보장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더불어 크런치 모드와 같은 추가적 노동에 대한 보상이 명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연구위원은 “명확한 금전적·비금전적 보상 없이 노동시간만 늘어나는 경우, 게임업계의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감소한다”고 전했다. 노동시간만 늘어난다면 직업 매력도가 낮아져 고급 인력의 유입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이 가능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김 부회장은 “이제는 게임 재직자의 재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청년 구직자가 제대로 된 실무 능력을 기르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한다. 급변하는 게임업계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교육 인프라 확충과 교육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게임업계는 청년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움직인다. 청년에게 적합한 작업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청년뿐 아니라 게임업계의 미래도 밝힐 수 있는 길이다. 제대로 된 환경이 구축돼 청년들이 앞으로도 게임업계 혁신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이승연 기자
maple0810@yonsei.ac.kr
홍지혜 기자
gh4784@yonsei.ac.kr

 

* 취업 유발 인원: 해당 산업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직접 취업자 수와 파급 효과를 통한 타 부분의 간접 유발 취업자 수를 합한 인원
** 고용 유발 인원: 취업자 중 피고용자 유발만을 계산한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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