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세상은 어디까지 구현됐을까

약 10년 전부터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갑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고, 온라인 결제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픈 마켓 G마켓에 따르면 해당 사이트에서 판매된 카드지갑과 머니클립의 비중은 지난 2010년 10%에서 2014년에서 27%로 급상승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간편 결제 시스템의 등장은 현금 없는 시대를 더욱 앞당기고 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은 ‘현금 없는 사회’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요. 

 

승연 기자의 체험기

 

▶▶ 7713 버스는 '현금 없는 클린버스'로 운영되고 있다. 버스 입구에는 교통카드 단말기만 찾아볼 수 있다.
▶▶ 7713 버스는 '현금 없는 클린버스'로 운영되고 있다. 버스 입구에는 교통카드 단말기만 찾아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에서 시범 운행하는 ‘현금 없는 클린버스’

지난 2021년 6월부터 오는 6월까지 서울특별시는 일부 시내버스 구간에 ‘현금 없는 클린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신촌캠 앞을 지나가는 7713번 버스 또한 시범운행 대상입니다. 버스를 타자, 현금통이 없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현금통이 있어야 하는 입구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교통카드 전용버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현금통이 없어 버스 안 통행이 더욱 편리하게 느껴졌습니다.

 

▶▶ 신촌역 주변의 한 호떡 판매상에 계좌 이체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신촌역 인근 대부분의 포장마차는 현금 결제 외에도 계좌 이체가 가능했다.
▶▶ 신촌역 주변의 한 호떡 판매상에 계좌 이체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신촌역 인근 대부분의 포장마차는 현금 결제 외에도 계좌 이체가 가능했다.
▶▶ 『빅이슈』 잡지를 카드 결제로 구매하는 모습. 판매처가 신용카드 단말기를 보유하고 있어 카드로 잡지를 구매할 수 있다.
▶▶ 『빅이슈』 잡지를 카드 결제로 구매하는 모습. 판매처가 신용카드 단말기를 보유하고 있어 카드로 잡지를 구매할 수 있다.

 

*길거리 판매상

현금 결제만 가능하던 길거리 판매상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겨울이 되면 붕어빵을 사 먹기 위해 현금을 챙기곤 했습니다. 과거에는 주머니에 현금이 없으면 길거리 포장마차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지만, 계좌 이체로 결제가 가능한 곳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촌역 주변의 한 호떡 판매상에는 계좌 이체가 가능하다는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호떡을 파는 아주머니께서는 “젊은 층은 거의 계좌 이체를 한다”며 계좌 이체 비율이 약 30% 정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길가에서 판매하는 『빅이슈』 잡지 역시 지난 2015년부터 카드 결제가 가능해졌습니다. 카드로 잡지를 구매하며 카드 결제 비율을 여쭤보자, 현금과 카드의 결제 비율이 각각 절반이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이마트24와 미니스톱을 방문해 거스름돈을 은행 계좌로 받을 수 있는 거스름돈 계좌입금 서비스를 요청했다. 그러나 근무자가 해당 서비스를 숙지하고 있지 않아 현금으로 거스름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이마트24와 미니스톱을 방문해 거스름돈을 은행 계좌로 받을 수 있는 거스름돈 계좌입금 서비스를 요청했다. 그러나 근무자가 해당 서비스를 숙지하고 있지 않아 현금으로 거스름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스름돈 계좌입금 서비스

거스름돈 계좌입금 서비스는 지난 2017년부터 한국은행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업무협약을 맺은 업체에서 현금 또는 상품권으로 계산을 한 후, 거스름돈을 현금 대신 은행 계좌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모바일 현금카드 앱을 설치하고, 가맹점인 이마트24와 미니스톱에 방문했습니다. 기자는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물건을 계산한 후, 거스름돈을 앱에 적립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두 가맹점의 근무자 모두 이 서비스를 처음 접한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서비스를 여러 차례 시도해봤으나 계좌 입금 서비스는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기자는 거스름돈을 현금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서비스가 보편화된다면 현금을 들고 다니기 번거로워하는 이들이 해당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 연대점에서 현금으로 결제한 뒤 받은 거스름돈 500원. 현금 없는 매장이지만 카드 미사용 고객을 위해 일정량의 현금을 준비하고 있었다.
▶▶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 연대점에서 현금으로 결제한 뒤 받은 거스름돈 500원. 현금 없는 매장이지만 카드 미사용 고객을 위해 일정량의 현금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현금 없는 매장’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2018년부터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중 한 곳인 연대점을 방문해 근무자에게 현금을 건넸습니다. 근무자는 해당 지점은 현금 없는 매장이라고 안내하며, 기자에게 카드 결제가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카드는 없다고 답하자, 근무자는 현금 수납함에서 현금을 꺼내 거슬러줬습니다. 현금 없는 매장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금을 사용하는 고객을 위해 어느 정도의 현금을 준비해놓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현금 없는 사회

 

현금 없는 사회로의 움직임은 수치로도 확인 가능합니다. 한국은행의 「2018년 경제주체별 현금사용형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가계가 지갑과 주머니에 소지하고 있는 평균 현금 금액은 약 7만 8천 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난 2015년 11만 6천 원이었던 것과 비교했을 때, 큰 폭으로 감소한 수치입니다. 한국은행의 「2019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 서비스 이용행태」에서는 신용카드가 한 해 가장 많이 이용한 지급수단으로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현금 사용을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2017년부터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블록체인 기반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의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민간이 아닌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통화이며, 현금의 가치가 전자 시스템 안에 저장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월에 열린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디지털 위안화가 사용되기도 했으며, 미국 정부 역시 지난 2020년부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입니다.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어떤 장점을 누릴 수 있을까요. 대다수 국민이 가장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장점은 편리함입니다. 지난 2016년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6%는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는 ‘불편함’이 62%로 가장 많았습니다. 무거운 현금 없이 무언가를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실물 화폐의 폐지는 효율적인 경제 운영에 도움이 됩니다.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화폐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경제 거래에서의 투명성도 강화될 수 있습니다. 지하경제나 자금세탁 등의 문제는 흐름이 추적되지 않는 실물 화폐와 큰 연관이 있습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김광석 경제연구실장은 “현금 없는 사회를 통해 음성화된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화폐 발행 비용 감소 역시 긍정적인 효과입니다. 한국의 연간 동전 발행 비용은 1천억 원이 넘지만, 동전 회수율은 13%, 지폐 환수율은 60% 정도에 그칩니다. 지난 2019년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찌그러지거나 부식돼 폐기한 동전은 24억 원에 달합니다. 현금을 위해 현금을 낭비하는 비율이 감소한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현금이 없어지면서
안전과 배려까지 없어지지 않기 위해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이후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추세는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현금을 직접 주고받으며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혹은 외출 횟수가 감소했다는 이유로 온라인 결제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화폐만으로도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이 코로나19를 통해 확인된 셈입니다. 이처럼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러나 이를 의도적으로 빠르게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합니다.

인터넷 통신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로 꼽힙니다. 디지털 금융 범죄 혹은 자연재해로 디지털 결제 방식에 위협이 가해지는 경우, 그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KT의 인터넷 통신망이 1시간가량 먹통이 됐던 사태가 그 예시입니다. 음식점에서의 카드 결제, 주식 거래, 비대면 수업 등 통신망을 이용한 서비스가 모두 마비되면서 일상생활이 불가해졌죠. 이처럼 현금 없는 사회는 인터넷 통신망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 이태규 선임연구위원은 “보안 수준이 곧 디지털화의 수준을 결정한다”며 디지털 화폐로의 안전한 전환을 위해서는 보안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경제의 중앙집권화가 촉진되면서 민간 금융기관이 위축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디지털 화폐는 민간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에게 바로 전달될 수 있기에, 민간 금융기관의 힘이 약화하고 중앙은행의 힘이 강화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임종인 석좌교수는 “민간 금융기관이 축소된다면 일자리 수가 감소하거나 금융 취약계층의 경제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금 없는 사회를 빠르게 추진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소외 계층을 사회에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소외 계층은 디지털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디지털 화폐로의 성급한 전환은 이들의 소외 현상을 심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디지털 화폐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노약자뿐만 아니라 카드 사용에 제약이 있는 청소년들의 경제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는 또 다른 경제 양극화를 불러일으키리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김 실장은 “이미 기업, 자산, 소득의 규모 등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나는 경제 양극화에 또 다른 사례가 추가될 수 있다”고 전합니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계층들은 디지털 경제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반면, 디지털 소외 계층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돈을 자유롭게 유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에는 이들을 위한 별도의 준비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먼저 디지털 세상에 적응할 수 있게끔 돕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최소한 디지털 소외 계층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정도의 적응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이들을 위한 특별 시스템을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임 석좌교수는 “디지털 화폐를 거래하는 방식이 다양해질수록 디지털 취약 계층의 경제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카드 결제 방식은 비교적 익숙하므로 디지털 화폐를 카드에 저장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은 모두의 편의를 위한 것이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도록 체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현금 없는 사회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신중한 접근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함으로써 누구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글 이승연 기자
maple0810@yonsei.ac.kr

사진 김대한 기자
3.18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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