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조향사’ 정미순을 만나다

 

향을 통해 소중한 순간의 기억을 회상해본 경험이 있는가. 향은 우리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도록 만들며, 때로는 여러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향은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할까. 향과 관련된 활동을 펼쳐온 ‘국내 1세대 조향사’ 정미순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자기소개 부탁한다.

A. 20년 차 조향사이자 ‘지엔퍼퓸’의 대표인 정미순이다.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의 미아 조향학원에서 향수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현재 조향 아카데미와 조향 전문회사를 운영하며 향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Q. 조향사는 어떤 일을 하는가.

A. 조향사는 다양한 향료를 이용해 새로운 향을 설계하고, 조합하고, 제조한다. 향은 천연향과 합성향으로 나뉜다. 천연향은 꽃이나 허브 등 천연 원료에서 추출해 만든다. 대표적으로 장미, 재스민, 라벤더 향이 있다. 합성향은 석유에서 추출한 화학 원료를 합성해 만든 향이다. 합성 머스크향이 대표적이다. 제조된 향은 향수가 되거나, 다양한 제품에 입혀 사용된다. 식료품이나 화장품의 향을 만드는 것 또한 조향사의 일이다.

 

Q. 조향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어린 시절 우연히 에스티 로더의 책을 읽었다. 그는 화장품 업계의 대모로 알려졌지만, 조향사로 업계에 처음 발을 내디딘 인물이다. 그녀의 책을 읽고 조향사라는 직업을 꿈꾸게 됐다. 그가 화학을 공부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화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Q. 조향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실체를 가진 향으로 바꿔야 한다. 향을 구현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A. 의뢰인이 원하는 향을 만드는 과정과 내가 원하는 향을 만드는 과정은 다르다. 의뢰인이 특정한 향을 원할 경우, 의뢰인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먼저 대화를 나누며 향의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다음으로 향을 추출하고 시향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언어만으로는 의뢰인이 원하는 향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뢰인과의 충분한 대화와 시향을 통해 구체적인 향을 찾아 나간다.

내가 원하는 향을 만들 때는 향의 콘셉트가 가장 중요하다. 콘셉트는 향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콘셉트가 결정되면 그에 맞는 향을 여러 개 구상해 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예컨대 특정 소설을 콘셉트로 잡는 경우, 주인공의 이미지를 분석해 이에 맞는 향을 조합한다.

 

Q. 가장 좋아하는 향수로 패션 브랜드 맥앤로건의 향수를 꼽았다. 이를 만들 당시 특별히 고려한 요소가 있는가.

A. 향수는 패션의 일환이다. 맥앤로건 향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샤넬, 디올 향수와 마찬가지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를 위해 기획한 향수다. 패션은 한 사람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향도 마찬가지다. 좋은 향은 한 사람에 관한 이미지와 기억을 결정한다. 맥앤로건의 화이트 향수를 기획할 때도 해당 브랜드의 패션을 고려했다. 맥앤로건의 흰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를 모티브로 향수를 기획했다.

 

Q. 국내 최초로 조향 체험이 가능한 향수 스튜디오를 설립한 점이 흥미롭다.

A. 향수 스튜디오는 공방과 비슷한 개념의 공간이다. 친구 혹은 가족끼리 방문해 개인 맞춤 향수를 제작할 수 있으며, 회사에서 의뢰한 향을 개발하기도 한다. 프랑스에 방문했을 당시, 300년이 넘은 향수 회사 갈리마드에서 운영하는 향수 스튜디오를 처음 접했다. 한국에도 이를 들여오면 좋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갈리마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향수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갈리마드 시스템대로 운영하다가, 이후에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향수 스튜디오는 대중이 향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도록 매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Q. 후각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A. 후각은 시각만큼 자극이 강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힘이 강하다. 특히 향은 사람이 무언가를 결정하고 생각하는 과정에 많은 영향을 준다. 판매업에서도 이를 이용한 향기 마케팅을 한다. 특정 향기를 이용해 소비자들이 매장 안 물건을 구매하게끔 유도한다. 냄새가 일종의 자극제로 기능하는 셈이다. 향기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러쉬 매장이 있다. 러쉬 매장만의 독특하고 강렬한 향기는 소비자를 매장 안으로 유인한다.

 

Q. 20년간 대중들이 향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변해왔는가.

A. 국내 향수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부터 현재까지 조향사로 일해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큰 변화가 존재한다. 초기에는 향수 시장이 대중화돼 있지 않았다. 소규모로 형성된 시장마저도 유명 수입 브랜드의 향수가 주를 이뤘다. 유명 수입 브랜드의 제품만이 제대로 된 향수라는 선입견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입견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향수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많지 않았다.

최근에는 향수 선택 기준이 브랜드가 아닌 향 자체로 변화했다. 유명 수입 브랜드의 향수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향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었다. 향의 본질에 더욱 집중해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 향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디퓨저, 룸 스프레이, 향수, 향초 등 향을 즐기는 방식이 다양해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Q. 자신에게 잘 맞는 향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A. 자신에게 맞는 향을 만나면 특유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를 느끼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함께 향을 관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향은 항상 일정하지 않다. 계절, 날씨, 심지어는 기분에 따라서도 조금씩 변화한다. 한 번의 시향만으로 향을 선택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을 갖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Q. 현대 사회에서 향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가.

A. 향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개성이 중요한 시대인 만큼 향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향은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일 수도,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일 수도, 자신을 조금 더 돋보이게 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향을 잘 알고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찾길 바란다.

 

개성을 중시하는 오늘날, 향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나 자신을 매력적으로 드러낼 향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향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코끝을 매혹할, 멋진 향을 발견하길 기대한다.

 

 

글 이승연 기자
maple0810@yonsei.ac.kr

<사진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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