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김용찬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메타버스’라는 유령이 우리 주변을 배회 중이다.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다. 아바타가 등장하는 온라인 환경이면 어떤 것이든 ‘메타버스’로 부르는 세상이 됐다. 가히 소동이라 불러야 할 정도다. ‘메타버스’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대면으로 하던 것을 비대면으로 전환하면 다 ‘메타버스’라고 누군가 이야기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메타버스’는 그 이상의 어떤 것, 즉 사회적 관계, 일 등을 다 포괄하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메타버스’를 국가주의적으로 접근한다. IT 강국이고 K 문화에 빛나는 대한민국이 ‘메타버스’도 주도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보다 정직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있는 거 같다”라고 말할 뿐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메타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일까? 신문들을 검색해보면 2020년 여름 이전에는 메타버스라는 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라는 말을 우리가 쓰기 시작한 것이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타버스를 소개하는 책들이 서점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20년 겨울이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반 정도 지난 요즘 서점에 가보면 메타버스 이름을 제목에 단 수 백 권의 책을 볼 수 있다.

메타버스 소동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아마도 사람들로 하여금 스크린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쏟게 한 코로나 팬데믹일 것이다. 2018년에 나온 『레디플레이원』 같은 영화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의 글로벌 IT 기업들이 지난 몇 년 동안 가상현실 플랫폼 구축을 이윤 확대의 새로운 동력으로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는 2021년에 페이스북이 모기업 이름을 메타로 바꾼 경우일 것이다. 마크 주커버그는 그해 주주 총회에서 “이제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기업”이라 천명하기도 했다. 사실 페이스북은 2014년에 VR 게이밍 장치를 판매하는 오쿨루스를 인수했고, 2019년에는 뇌신호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기능을 갖춘 팔찌를 개발한 스타트업 기업 CTRL-Labs를  인수하는 등 가상플랫폼 구축 방향으로 이미 움직여 왔다. 우리 사회 메타버스 소동의 실제 진원지는  사실상 이들 글로벌 IT 기업들일 것이다.

메타버스 현상을 나는 앞에서 일종의 소동이라고 불렀다. 왜 소동인가? 왜냐하면 그것이 ‘메타버스’라는 은유적 말을 둘러싸고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이해관계를 놓고, 아직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것에 대해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는 불확실성의 경쟁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기술, 막 도래하려는 기술, 여전히 그것이 무엇일지 누구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기술을 둘러싸고 벌이는 기대와 우려의 말소동이다. 즉 그것은 가상 미디어 환경의 변화 방향을 반영하는 징후이기도 하고, 그러한 변화를 스스로 주도하겠다는 여러 주체들의 욕구가 충돌하는 현상이기도 하고, 또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보이는 유행에 뒤질 수 없다는 심리 역학 등이 모두 함께 작용하는 현상이다.

메타버스에 대한 다양한 상상, 예측, 전망, 설명들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추릴 수 있다. 첫째 시나리오는 메타버스를 현실과 가상의 융합으로 보는 것이다. 디지털 시티, 스마트시티, 디지털트윈 등의 개념이 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 시나리오 안에서는 도시의 물리적 경험에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경험의 층을 덧씌우는 방식으로 메타버스를 구현한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플랫폼과 플랫폼을 연계하는 일종의 ‘메타 플랫폼’을 만드는 방식으로 나가는 것이다. 페이스북을 포함해서 요즘 흔히 메타버스 기업이라 불리는 게임 기업들이 이런 방식의 메타버스 세상을 꿈꾼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가능케하는 중요 기술 중 하나가 플랫폼을 넘나들더라도 디지털 재화의 가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NFT 기술이다.

어느 시나리오를 놓고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이 있다. 이 질문들은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인터넷 이후, 특히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이후부터 계속 우리가 던졌어야 하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한 것들이다. 메타버스라는 은유적 표현을 벗겨내고 그것의 사회적, 기술적 실체에 집중하면 메타버스란 말보다는 ‘확장된 가상 미디어 공간’ 정도의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확장된 가상 미디어 공간은 고글, 이어폰, 헬멧, 안경, 디스플레이 장치, 광학 장치, 네트워크, 클라우드, 감지기술, 데이터 분석 기술, 저장 기술 등의 장치들, 알고리즘, 스토리, 규칙, 규범, 메타버스 기업들과 정부, 그리고 현실의 정체성과 아바타의 정체성을 모두 장착한 개인들의 집합체다.

확장된 가상 미디어 공간을 제대로 구축해서 작동시키기 전에 우리가 답을 찾아야할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가상 미디어 공간의 거버넌스 문제, 공동체와 지역성의 문제, 다양성과 포용의 문제,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의 문제, 민주주의와 민주적 참여/협력, 공공성의 문제, 개인정보와 감시의 문제, 허위 정보의 문제, 개인간, 지역간, 국가간 불평등의 문제, 개인들이 자기 일상에서 창출하는 데이터  가치를 글로벌 기업이 가져가는 데이터 식민주의의 문제 등이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이들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 답들을 제대로 찾기도 전에 ‘메타버스’ 세상이 도래할 것인가? 그런 상태에서 메타버스 세상이 도래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1992년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메타버스, 아바타 등의 용어를 처음 소개했던 닐 스티븐슨이 2008년에 구글 본사에 와서 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나고 누군가 그에게 어떤 소셜미디어를 주로 쓰느냐고 물었다. 스티븐슨은 “나는 오프라인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소셜미디어는 쓰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메타버스의 작명자는 오히려 메타버스 밖에, 그 소동 밖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어쩌면 그 소동 밖으로 나가는 법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소동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가상 미디어 환경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중요한 사회적 질문들의 답을 찾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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