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고급문화의 성좌, 새로운 문화정체성 정립 필요해

김관우(경제·18)
김관우(경제·18)

 

지난 4월 9일, 국회를 향해 방탄소년단 병역특례를 조속히 결론을 내려 달라는 폭탄 발언이 나왔다. 찬반양론은 격렬하다. 제도 자체가 불공정하냐, 대중문화예술과 순수예술 간의 형평성 문제냐. 병역특례 제도와 대중문화예술 간의 줄다리기다.

제도부터 살펴보자. 병역특례는 예술·체육인이 대상이다. ‘국위선양’과 ‘문화창달’을 자격으로 예술요원은 순수예술 분야로 한정됐다. 기본적으로 ‘자격을 갖춘’ 예술·체육인이 경력 단절 없이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특혜를 준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일반 국민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주장은 공허하다.

고급문화는 하나의 성좌다. 논란의 맹점은 그동안 내재됐던 고급문화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됐다.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의 차이, 고상하고 숭고한 이미지와 저급하고 대중적인 이미지의 충돌이다. 대중문화는 모두가 향유하지만 순수예술의 권위는 굳건하다. 고급문화는 통곡의 벽이다.

그런데 고급문화는 무엇인가. 고급문화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세계는 자본주의가 지배한다. 수요가 기준이면 대중문화산업은 세계의 중심을 차지한다. 순수예술은 자연히 주변으로 밀려난다. K-POP을 필두로 한 한류가 대세다. K는 사회문화에 끊임없이 접착한다. 자본주의와 손잡고 순수예술의 경제성을 두고 온 나라에서 순수학문계열 학과가 통폐합되고 있다. 순수예술인의 경제적 딜레마는 깊어진다.

고급문화의 성좌는 무너지고 있다. 논란의 실타래는 얽히고 설킨다. ‘공정성’과 ‘형평성’, 기존의 척도로 바라보는 태도는 갯벌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다. 고급문화의 자리를 둔 치열한 계승 싸움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평론가들도 공정성이 문제라면 대중문화예술인이 배제되는 제도는 철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더 이상 중심과 주변의 논리로 풀기 어렵다. ‘BTS 병역특례 논란’은 새로운 문화 정체성 확립을 호출한다.

문화는 정치경제와 무엇이 다른가. 정치권력이나 경제적 부유는 중심과 주변이 명확하게 보인다. 그런데 문화에서는 정반대다. 고급문화의 경계는 흐리고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고급스럽다는 문화적 심미성은 개별자들의 안목에서 비롯된다. 세계는 정전화된 표준을 가리키지만 역사는 믿어왔던 모든 가치를 뒤바꾼다. 모든 시공간이 합쳐져 문화 시공간을 형성한다.

문화 정체성은 고유하다. 정체성은 도그마와 권력화된 이념화의 궤도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러시아 문학비평이론가 바흐친은 그 어떤 문화도 어떤 문화에 의해서 정의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등가성을 떠올려야 한다. 병역특례 논란의 맹점은 대중문화가 낫냐, 순수예술이 낫냐는 식의 유치한 가치 싸움이다. 대중과 순수예술, 문화의 등가성을 자각할 때서야 우리 주변을 이루는 개체들도 등가성을 가진다. 

대중문화예술은 그동안 ‘상업성의 이미지’에 가려져 왔다. BTS 병역특례가 적용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병역특례 시키지 마라’보다 ‘그동안 우리도 모르게 자동화된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반성’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서로를 갈라왔던 자신들이 누구인지 마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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