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 이뤄져야

기후위기가 본격화되면서 탄소중립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급격한 산업전환이 예고되는 가운데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탄소중립 이면에 소외되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은 이뤄질 수 있을까.

 

 

탄소중립과 산업전환,
노동전환과 일자리 위기

 

지난 2015년 12월 개최된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파리기후변화협정(아래 파리협정)이 채택됐다. 197개국이 합의한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2℃보다 낮게 유지하고, 나아가 1.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21년 5월 ‘2050탄소중립위원회’를 발족하고, 2021년 9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아래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행동에 나섰다. ‘2050탄소중립위원회’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약 40%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NDC)를 설정하며 목표를 구체화했다. 이후 3월 25일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되면서 ‘2050탄소중립위원회’는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아래 탄중위)로 새롭게 개편했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구준모 기획실장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광범위한 합의 역시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높은 강도의 산업 변화가 필요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강금봉 전문위원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기존의 체제를 급격히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NDC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4.17%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이는 유럽(1.98%), 미국(2.81%), 영국(2.81%), 일본(3.56%) 등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높은 수치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약에 의하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의 신규 등록이 금지된다. 케임브리지 이코노메트릭스가 지난 3월 발표한 「한국 탈내연기관 정책의 경제 환경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35년에 내연기관차 판매가 중단될 경우 2050년까지 GDP는 약 0.26% 증가하고, 석유 수입량은 약 40% 줄어들 전망이다. 서비스와 제조업 부문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되면서, 기존 자동차 및 화석연료 산업의 축소로 사라지는 일자리 수를 상쇄하고도 최대 5만 7천 개의 일자리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일부 산업의 쇠퇴는 불가피하다. 석탄 화력발전과 내연기관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NDC는 석탄 화력발전의 에너지 비중을 지속해서 낮춰 2050년에는 이를 완전히 퇴출하거나 일부 LNG 발전소만 운영하도록 명시했다. 내연기관차의 퇴출 역시 유력하다. 강 전문위원은 “철강, 석유화학 등 6개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전체 산업 배출량의 79%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 기획실장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에서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지난 2021년 7월 발표한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아래 노동전환 지원방안)에 따르면 내연기관차 산업과 석탄 화력발전 산업에서 일자리 감소가 예상된다. 민주노총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 양동규 부위원장은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1/3 정도의 일자리가 축소될 전망”이라며 “석탄 화력발전을 중단하고 LNG 발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대규모로 축소된다”고 말했다. 구 기획실장은 “다른 산업에서 생겨나는 일자리가 이러한 변화로 일자리를 위협 받는 사람들에게 직접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탄소중립에 가려진
‘정의로운 전환’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앞두고 산업별 희비가 엇갈리는 한편,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충남연구원 여형범 연구위원이 작성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제언」(아래 전환 제언)에 따르면, 정의로운 전환은 지난 1980년대 ‘오염산업규제로 인한 비용을 노동자들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정하게 나누어 부담하자’는 미국 노동 운동에서 시작했다. 이후 정의로운 전환은 환경 정책에 따른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 지역사회 등이 겪는 피해와 사회적인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의미로 발전했다.

파리협정은 ‘노동의 정의로운 전환과 좋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다. 이에 유럽연합,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은 정의로운 전환을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기본법에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규정을 포함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지정 ▲사업전환 지원 ▲자산손실 위험의 최소화 ▲국민 참여 보장 및 협동조합 활성화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 설립 등의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환 제언은 ‘탄소중립기본법이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을 충분히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의로운 전환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위원회, 사무국, 계획, 기금 등의 내용도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구 기획실장은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등의 정책은 고용 위기 특별지구와 같은 기존 정책을 벤치마킹해 이름을 바꾼 수준”이라며 “노동자들이나 시민들이 설계 및 계획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전환을 다루는 탄중위 구성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탄중위 산하 공정전환 분과위원회에는 10명의 민간위원이 참여한다. 이 중 노동계 인사는 한국노총 위원장 한 명뿐이다. 구 기획실장은 “탄중위에 한국노총이 노동계 대표로 참여하고 있지만, 농민이나 빈민 등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의 참여는 배제됐다”며 “현재 제대로 된 협의체가 존재한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양 부위원장은 “탄중위의 의사결정 과정은 ‘보여주기식’이었기에 민주노총의 불참은 타당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파편화된 업계 구조가 정의로운 전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연기관차 산업의 경우 완성차를 생산하는 7개 사를 중심으로 매우 많은 부품 협력사가 존재한다. 금속노조 오기형 조사통계부장은 “완성차 회사의 경우 정년퇴직 예정자가 많고 자본이 풍부해 어느 정도 인력 조정이 이뤄질 수 있지만, 자본이 적고 젊은 사람들로 이뤄진 부품 협력사의 경우 위기감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이에 양 부위원장은 “완성차와 부품사 노조가 함께 참여하는 산별노조 차원의 대응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력발전 산업 역시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공공 부문이 5개 사로 분리돼있어 에너지 전환 과정이 비효율적이고 노동자가 소외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전노조 제용순 위원장은 “발전 5사가 나뉘어 있어 재생에너지 영역에서 대규모 투자가 힘들고 인력 활용과 전환의 폭이 좁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혹은 협력사 노동자에게 더 큰 피해가 간다는 지적도 있다. 제 위원장은 “정규직은 40%, 협력사 비정규직은 70%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노동전환 지원방안은 노동자 개인이 고용 불안을 감당하지 않도록 직무 전환과 재배치를 지원하고 사전에 이·전직을 준비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포함했다. 그러나 오 조사통계부장은 “노동이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안전망을 마련하고 소득을 보장할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제 위원장 역시 “협력사 혹은 비정규직 단위에서 인력을 전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고용보장위원회 등을 설치해 재취업 기간에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환의 정의로움은
당사자의 목소리로부터

 

사회 구성원과 이해당사자의 폭넓은 공감대는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을 향한 출발점이다. 전환의 당사자인 노동자 사이에서도 탄소중립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확산하고 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국내 완성차 업계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기후위기 및 정의로운 전환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4.3%가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94.9%가 ‘기후변화 대응이 자동차 산업과 연관이 있다’고 대답했다.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 금지 정책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82.1%가 공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 조사통계부장은 “‘전환’ 자체의 필요성과 과정의 ‘정의로움’ 사이에서 노동자들의 입장이 모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공감을 토대로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포괄적인 협의체 구축이 필요하다. 강 전문위원은 “탄소중립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정의로운 전환에 목소리를 내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 영역을 넘어서는 포괄적인 논의가 요구된다. 양 부위원장은 “기후위기 대응은 특정 영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생산과 소비, 경제 구조와 생활 방식 모두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오 조사통계부장은 “협의체를 노동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며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다양한 관계부처가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 단위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 전문위원은 “화력발전과 자동차 산업 등이 결집한 일부 지역에 피해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지역 단위의 사회적 대화를 꾸려 중앙 단위 대화와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 위원장은 “지역 경제 문제를 다루는 지역 단위 협의체, 전체적인 인력 전환과 고용 문제를 다루는 중앙 협의체가 모두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협의체에 참여하는 주요 이해당사자의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노조의 주체적인 역할이 특히 강조된다. 오 조사통계부장은 “노사 공동 결정 등을 통해 노조가 기업의 계획 및 생산 결정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노조가 노동시간과 임금 조정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 부위원장은 “노조의 대응이 고용을 위한 투쟁을 넘어 탄소중립의 해법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전환에 열린 자세로 대응하는 정부의 역할도 요구된다. 구 기획실장은 “현재 정부 구성 협의체는 계획 자체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며 “노동자와 시민을 적극적인 참여의 대상으로 초대해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조와 위원회의 다양한 움직임이 예고된다. 민주노총은 지난 3월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를 설치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양 부위원장은 “산업전환이 전체 시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귀결되도록 할 것”이라 말했다. 금속노조는 산업전환과 관련한 대규모 활동을 기획 중이다. 오 조사통계부장은 “노사 공동 결정과 노동 중심 산업전환을 위한 20만 총파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위원회 역시 변화를 앞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이후, 새 정부의 기조에 따라 탄중위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향후 계획에 대해 강 전문위원은 “지역 단위 일자리 기구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노·사·정 및 탄중위와 함께 변화가 시급한 업종을 중심으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현실이다. 전환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전환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와 지역 시민을 위한 대책을 넘어, 이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모든 이해당사자가 동등하게 대화하는 협의체가 구축될 때 정의로운 전환을 향한 길은 시작될 것이다.

 

 

글 여근호 기자
khyeo1123@yonsei.ac.kr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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