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립서적, 『노래가 되지 못한 것들』

 

노래는 우리 주변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직접 만질 수 있는 사물부터 머릿속 상상까지 그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일상의 모든 것들이 노래가 되지는 않는다.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상을 담은 글귀 중 일부는 대중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좋아서하는밴드’ 소속 싱어송라이터 안복진 작가는 노랫말 에세이집 『노래가 되지 못한 것들』을 통해 창작의 과정에서 결국 노래가 되지 못한, 다시 말해서 ‘끝’ 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시작’ 단계에 멈춘 글귀를 소개한다.

 

‘시작’ 단계에서 마주하는 경험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매 순간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일상에서 접하는 사소한 감정을 인지하고 기록하는 순간 노래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열린다. 노래를 만드는 안 작가는 무의식에 머물렀던 생각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내 글이라는 틀에 담는다.

「박수」는 안 작가가 공연을 마치고 관객이 손뼉을 치는 순간 자신이 느낀 바를 담은 기록이다. 「박수」는 관객의 박수가 공연자에게 어떻게 느껴지는가에 주목한다. 그녀는 박수가 나오기 전 2~3초의 정적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회상하며 아쉬움이나 행복감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그런 감정은 손뼉을 치는 관객을 보는 순간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기록 「스물」에서는 안 작가는 스무 살의 기억을 적어낸다. 그녀는 스무 살에 실기 입시 무대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하고, 블루스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피아노 앞에 살다시피 했다. 스무 살 시절은 이러한 기억을 토대로 ‘좋은지 몰라서 좋았던 시간들’이라 회고된다. 이 기록들은 짧다는 이유로 노래가 되지는 못했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진솔한 감정들이 서술돼있다.

노래 안에 글을 가둘 수 있게 된다면, 기록은 노래가 될 수 있다. 노래가 된 기록들은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반면 노래가 되지 못한 것은 글의 길이가 짧다. 대략 3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느냐가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슬픔을 들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모두 울어도 되는 날이 국경일로 제정되는 상상을 담은 기록 「모두 울어도 되는 날」은 노래가 됐다. 가상의 인물이 느끼는 슬픔과 아픔에 공감한다는 내용으로 채워진 노래다. 이 기록은 가상의 인물에게 말을 걸고, 그의 행동을 보고 드는 생각을 시간순으로 서술한 가사로 구성돼있다. 섬세한 감정 표현이 노래 안에 글을 가둘 수 있게끔 한다.

 

서로 닮은 노래와 기사

 

노래가 되기 전 정제되지 않은 기록들은 사람들에게 ‘끝’과 함께 ‘시작’을 전달한다. 노래뿐만 아니라 신문에 실리는 기사에도 끝이 되지 못한 시작들이 있다. 취재를 진행하다 보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마주하게 된다. 기사에 담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은 흐름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혹은 중립성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로 담기지 못한다. 취재원과의 기록이 모두 기사가 되리라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해진 분량을 지켜야 하고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기사는 정해진 시간에 기록을 녹여내야 하는 노래와 닮아있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묻는다면 지역 단위에서 활동하는 취재원들의 이야기를 꼽고 싶다.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취재원의 목소리는 전국 단위의 문제를 취재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들이 말해주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막연하게 느꼈던 거시적인 문제를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문제로 바꿔준다. 그러나 이를 지나치게 세세히 다루면 문제의 본질을 가릴 수 있다. 결국 나는 취재원들이 말해준 내용 중 특정 지역의 이야기를 기사에 담지 못했던 경험이 많다. 그럼에도 기사를 취재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 기사라는 틀에 취재원의 이야기가 담기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가치가 없음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노래가 되지 못한 글들은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해석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안 작가는 이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끝이 아닌 시작을 바라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끝이 우리에게 보이는 전부가 아니라는 점과 시작이 끝이 되기 위해선 치열한 정제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때로는 끝만으로 이뤄진 세상을 볼 뿐만 아니라 시작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결과뿐만 아니라 시작에 주목하고 싶다면, 결과가 만들어지기 전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과정을 생각해보자.

 

글 이승연 기자
maple0810@yonsei.ac.kr

<자료사진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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