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코미디 『돈 룩 업』

‘회색 코뿔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속적인 경고를 통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위험을 은유적으로 회색 코뿔소라 부른다. 사람들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파급력이 큰 위험을 간과하곤 한다. 영화 『돈 룩 업』은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회색 코뿔소를 마주하게 된 상황 속에서 다양한 군상들을 그려낸 블랙코미디다. 

 

Don’t Look Up
혜성이 오는 걸 보지 마!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와 담당 교수 민디 박사는 새로운 행성의 궤도를 계산하던 중 혜성 충돌로 지구가 6개월 후에 멸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들은 엄청난 위험을 알리기 위해 정치인, 언론, 다국적 기업 대표를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Don’t Look Up”을 외친다. 지구로 무섭게 다가오는 혜성을 올려다보지 말라고 하면서 이를 이용해 이익을 챙길 궁리만 한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은 채 이를 어떻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만 생각한다.

 

“지구 전체가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재밌으면 안 되는 거예요.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이라고요”

 

올리언 대통령에게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이 지구로 충돌한다는 소식은 ‘정치쇼’에 불과했다. 그녀는 혜성 충돌의 실질적인 위험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케이트와 민디는 혜성의 지구 충돌 가능성이 99.7%라고 강조했지만, 그녀는 100%는 아니라며 그저 상황을 지켜보자고만 할 뿐이다. 그러나 지지율이 떨어지자 그녀는 종말 위험을 중간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 그제야 그녀는 로켓을 쏴 혜성의 궤도를 변경하려는 대책을 세운다. ‘지구를 대 멸망의 위기에서 구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케이트와 민디는 대중들에게 직접 위기를 알리고자 인기 있는 아침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한다. 그러나 미디어는 오로지 시청률만을 위해 위기 상황을 가벼운 음모론으로 치부해버린다. 안일한 방송국의 태도에 케이트는 생방송 중간에 분노하며 나가버린다. 이 쇼로 인해 케이트의 경고는 그저 하나의 ‘밈’으로 여겨지고, 대중들에게 놀림거리로 소비된다. 미디어는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대중의 기호에 맞춘 진실의 희화화에 앞장선다. 심지어 다국적 기업 ‘배시’의 대표는 혜성의 궤도를 변경하기 위해 발사한 로켓을 다시 지구로 되돌아오게 한다. 혜성에 존재하는 약 35조 달러의 광물을 지구로 떨어뜨려 채굴하려는 목적이었다. 이에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광물의 가치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위험한 선동을 한다. ‘배시’의 대표는 검증되지 않은 불확실한 채굴 기술을 인류의 구원이라 포장하며 자본과 데이터로 세상을 조종한다. 정치권조차도 이를 지지하며 대중을 현혹한다. 

 

“본인들만의 정치 이념이 있으니, 이 말도 듣지 않겠죠.
저는 어느 쪽이 아니라, 그냥 진실을 말하고 있어요.
이 정도 최소한의 합의도 못 하면 어디가 망가진 거예요? 어떻게 고치죠?”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할 만큼 혜성이 가까워져도 사회는 싸우기 바쁘다. 각 계층이 소통하고 연대해 위기를 맞서도 부족한 와중에 사회는 편을 가르고 혐오를 일삼는다. 민디와 케이트의 ‘혜성을 보자(Look Up)’파와 대통령 지지자들의 ‘하늘을 보지 마(Don’t Look Up)’파는 각자의 구호를 외치며 충돌한다. 대중은 정치적 이념과 주장에 따라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을 선택한다. 결국 지구를 구하기 위한 노력 대신 정치적 싸움만이 이어진다.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

 

지구의 종말을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모습에 왜 이리도 기시감이 들까. 영화 포스터에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라는 문구가 어딘가 섬뜩하다. 혜성 충돌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기후 위기를 마주한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과학자들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관해 수차례 경고해왔다. 지난 2021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 실무그룹 보고서」에서 20년 안에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높아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5도 상승이면 폭염, 호우, 홍수와 같은 초 극단적 기후 위기가 일상화된다. 기후변화 진행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고, 인류가 대응할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다급하고 간절한 경고는 우리에게 닿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인, 기업, 미디어는 이를 악용하거나 무시하며 기후 위기를 회색 코뿔소로 둔갑시키고 있다. 정치권은 기후 위기 대응에 따른 경제 성장세 약화만을 걱정하며 기후 위기를 외면한다. 대선 토론에서 ‘기후 위기’가 실종된 의제라는 점이 그 방증이다. 30여 개의 환경단체에서 기후 위기 문제를 토론 주제로 상정해달라는 의견을 냈으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면접 조사에서 4번째로 많이 추천된 의제가 바로 기후 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한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고, 후보들도 기후 문제를 거의 논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친환경을 포함한 ESG 경영**을 앞세운다. 그러나 이는 당장의 생색내기, 마케팅 수단에 불과해 보인다. ESG 평가 결과는 국내외 투자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한 중요한 지표다. 일부 기업들은 이를 위한 ESG 경영을 표방 할 뿐이다. 기업들의 행보가 녹색경영을 그저 홍보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그린워싱****이라 비판받는 이유다. 위기가 이윤으로 호도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디어는 돈이 되지 않는 환경 뉴스보단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쏟아내기 바쁘다. 그럴수록 대중이 환경 뉴스에 관심을 가지기는 더 어려워진다. 오르지 않는 클릭 수와 시청률 속에서 환경 뉴스는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종말을 조금이라도 연기할 수 있는 약간의 노력조차 누구도 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생각해보면 우린 정말로 부족한 게 없었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민디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지구는 혜성의 광물을 욕심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마주한 우리는 무엇이 부족하고 탐나서 이 위기를 직시하지 못했는지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에도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이 지구의 종말을 가속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젠 하늘을 올려봐야 할 때다. 기후 위기를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 하기보단 전 지구적인 위기를 직시하고 서로 소통하기 위한 ‘Look up’이 필요하다.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 때 관심을 가지고 올려다봐야 한다. ‘Can’t Look Up’이 머지않았기 때문에.

 

민디 교수 역을 맡은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과학적 진실을 듣지 못하고 귀 기울이지 않는 현대 문화를 비유한 영화"라는 한 줄 평을 남겼다. 현대 문화 속 회색 코뿔소들이 다가오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글 홍지혜 기자
gh4784@yonsei.ac.kr

<자료사진 네이버영화>

 

* ESG 경영: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말. 기업의 지속적 성장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음.
** 그린워싱: 실제로는 기업의 행동이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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