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한 기자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게 진정한 기자일까? 아니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로 기사를 작성하는 게 진정한 기자일까? 나는 이러한 기자도 기자지만 진정한 기자는 사회 구성원 중 가장 힘이 없는 서민과 함께하는 기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 전까지 병사와 전문하사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국군장병들의 생활여건이 많이 개선되더라도 여전히 사회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보안과 군사적 직무가 우선이지만 개선 가능한 사안이 있음에도 군내에는 부조리와 불합리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군인으로 복무하며 언론의 힘을 볼 수 있던 계기가 있었다. 최근 ‘육군훈련소 대신 말해드립니다’(아래 육대전) 라는 SNS 페이지를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육대전은 장병들이 서로의 사연을 올려 공감을 얻는 페이지다. 그러나 근래 들어서 불합리함을 토로하는 장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예시로 ‘부실급식’이 있다. 그전까지 급식은 군 내에서 조명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병사가 육대전에 부실급식에 대해 토로하며 여론이 조성됐다. 그러나 병사 혼자만의 용기만으로 이뤄낸 것일까? 이를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군내 부실급식의 빠른 개선에 언론의 역할이 컸다. 결국 한 병사의 용기있는 고발은 언론을 통해 군 전체의 개선으로 이어졌다.

공론화의 힘은 이처럼 크다. 학내에서는 「연세춘추」가 그 기능을 해왔다. 1885호의 군 e-러닝 지원확대를 다룬 기사, 1886호와 1887호에 걸쳐 정보 비대칭에 놓이기 쉬운 학생들의 주거권을 다루고 평균 월셋값을 시각화한 시도들이 그 예다. 「연세춘추」의 시선은 학내뿐만 아니라 사회로도 이어졌다. 1887호 경비원 처우와 음악 산업의 불평등, 1888호 공영장례 등을 작성하기 위해 「연세춘추」 기자들은 학내외에서 외면받기 쉬운 개개인들 사이로 종횡무진했다. 앞으로도 학생들 옆에서 학생들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도태되는 사람이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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