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우 보도부장(보건행정·18)
안태우 보도부장(보건행정·18)

 

1839년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은 실연과 악화된 건강상태로 고통에 빠져있었다. 쇼팽은 친구의 동생 마리아와 약혼까지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파혼했다. 이후 쇼팽은 마리아와 주고받은 편지를 ‘나의 비애’라는 제목을 붙여 보관했다.

쇼팽의 음악 중에 한 곡만 뽑으라면 나는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을 가장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3악장 ‘장송행진곡’은 A-B-A 형식으로 끊임없이 단조와 장조가 반복된다. A의 느리고 어두운 악장은 B로 넘어가 아름다우면서 공허한 아르페지오로 다시 A의 죽음을 상기하며 곡은 마무리된다. 이 곡을 가장 좋아하는 까닭은 곡의 분위기가 삶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등학생이었던 가을 어느 날 아버지는 원주로 출장을 가는 겸 공부에 지친 나를 데려갔다. 잠깐 들렸던 원주캠 교정은 어느 소설에 나오는 멋진 공원처럼 느껴졌다. 노천극장에 누워 아버지는 손으로 별자리를 그리기도 했다. 산책하는 내내 감탄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창문을 계속 비비며 서울에서 보기 어려웠던 수많은 별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우리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스무살 초엽은 비루했다. 친구들은 나름의 이유로 힘든 시기를 보내며 나에게 의지했다. 집안 어른의 죽음은 가깝고 익숙해졌다. 강박처럼 힘들고 부족해도 완벽하게 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처음 맡은 일들의 마무리는 언제나 실수투성이였다. 연애 초반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보며 괴로워했다. 삶을 돌아볼 때마다 능숙히 해내지 못했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처음으로 결정 내리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삶에 자리를 잡았다. 답을 찾으려고 속절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몸을 맡겨 교정을 방황하고 영하 15도를 헤치며 밤새 걸었다. 어두운 새벽에는 술에 취해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사랑을 고백했던 윤동주 시비 동산에서 하염없이 밤을 지새웠다. 캄캄한 밤하늘에 차갑게 빛나는 별들을 관찰하며 정답을 묻고 싶었다. 한없이 침전할 때 교정에서 바라본 별들은 마치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밤새 침묵을 지켰다.

사람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다. 이리저리 깨진 마음을 바라보기 위해 이것저것 활동했다. 대학에서 보낸 4년이 지나고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는 선택으로 우리신문사에 입사했다. 밤하늘의 별이 나를 꿈꾸게 했듯, 글 쓰는 일도 나를 꿈꾸게 했다. 멋진 기사는 쓰지 못했지만, 필요한 기사를 쓰길 바라며 그동안 배우고 느낀 것을 토대로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글들을 지면과 웹사이트에 한 칸 한 칸 쌓았다.

보도부에서 활동하며 고마운 이들을 많이 만났다. 덕분에 사람을 대하면서 진심이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배웠다. 지난 3학기를 돌아본다.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은 대개 직함을 걸고 만나게 된다. 때문에 학내 구성원이라는 공통분모에도 학교관계자, 학생대표자 등으로 개개인들은 범주화되기 쉽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들로부터 각기 다르고 다양한 사연이 나왔다. 학교본부와 학생 간 첨예한 갈등을 겪는 와중 의견을 묻기 위해 학교관계자를 만났다. 질문하는 내내 무례한 질문은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그때 뜻밖에 취재원은 외려 나를 독려했다. “학교의 공기로서 노고가 많습니다”

밤늦게 취재원과 인터뷰하고 돌아오는 길에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별을 봤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은 학과에서도, 학생사회에서도, 우리신문사에서도 나름대로 삶을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참하더라도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때 삶은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슬픈 마음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것은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름답다. 비루하지만 서로는 서로가 빛이 난다는 사실을 알기에. 상대는 몰라도 나는 볼 수 있기에. 나는 몰라도 그 사실을 마음에 두고 살아갈 수 있기에. 대학 생활의 마지막 한 해를 보낸다.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면서.

 

내가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반 고흐(Van Gogh), 1888년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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