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고 슬프기만 한 비장애 형제’는 없다

 

비장애 형제는 장애 당사자의 형제자매다. 비장애 형제의 삶은 종종 장애 형제를 돌보는 삶, 고난과 슬픔을 버티는 삶으로 그려진다. 누군가는 비장애 형제의 치열한 삶을 연민으로 바라보고, 마음을 울리는 ‘그들’의 일화에 감동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들’의 삶이 너무도 어렵고 힘겹다고 느낀다. 그러나 ‘우리’와 ‘그들’의 구분, 이타적인 연민조차 ‘비장애 형제이기에 불행할 것’이라는 빈약한 편견에 근거한다. 슬픔과 기쁨, 혹은 그저 그런 순간들이 교차하며 모두의 인생이 만들어지듯 비장애 형제의 삶도 늘 고통스럽고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비장애 형제라는 공통점이 있어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이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가정, 주변 환경, 시대에 따라 살아온 흔적도, 살아갈 미래도 다양하다. 이 기사는 그 많은 삶에서 공통의 필요를 포착하기 위한 시도다. 비장애 형제에게 연민을 갖고 ‘돕고자 하는’ 사람을 포함해 모두가 변해야 한다는 요구이자, 편견이 남긴 생채기를 흉터로 꽃 피우는 사회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다.

이 기사에서 기자는 비장애 형제를 호명함으로써 단일한 모습으로 정의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장애 형제를 둘러싼 선입견에서 벗어날 때 존재하는 무수한 다양성을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그 누구도 어떤 삶을 슬프거나 억압받는 삶으로 단정할 수 없기에 비장애 형제의 이야기를 가공하는 것 역시 최소화했다. 기사에서 비추는 모습들은 수많은 삶 중 몇몇의 인생이며 모든 비장애 형제의 굴곡을 대변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에 가닿을 때 비장애 형제는 사회가 지금까지 가둬온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가 어떤 자격으로 삶의 무게를 평가할 수 있을까요.” 유인비 작가는 얼마 전 책 『평범한 대화』를 출간했다. 작가, 특수교사,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의 누나… 그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다. 어떤 말로 소개되든 그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변함없다. 사회가 규정하는 ‘장애’와 ‘평범’에서 기꺼이 벗어나는 것이다. “평범은 그저 다수가 경험한 것들의 평균에 불과해요. 평범함에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사람과 사회,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내 동생은 지적 장애인입니다”

 

“평범함과 특별함은 환절기의 일교차와 같다. 아침과 밤에는 마치 다른 계절인 양 낯설지만 낮이 되어 평균기온을 되찾으면 그 계절을 느낄 수 있다. 새벽의 서늘함도 한낮의 포근함도 모두 하루라는 삶의 일부다. 모두가 새벽의 온도와 한낮의 온도를 품고 살아간다. 어느 시간엔 평범함 속에서, 또 어느 시간엔 특별함 속에서. 다양한 색깔의 단풍처럼 곳곳에 일교차의 흔적을 아름답게 남기면서 말이다.” (유인비, 『평범한 대화』)

유 작가는 동생의 최측근이다. 대학 시절과 임용고시 준비생이었던 때를 제외하면 늘 동생과 함께였다. 동생은 백일 무렵 작은 발작을 일으켰다. 대개 시간이 지나며 발작이 잦아들기 마련임에도 동생은 작은 발작이 오래 지속됐고,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지적 장애를 갖게 됐다. 유 작가의 부모님은 동생의 장애에 대해 숨기지 않았다. 덕분에 유 작가는 어린 나이부터 자연스럽게 동생의 장애를 받아들였다.

유 작가의 동생은 단어와 단어를 조합해 말한다. 장기 기억력은 비장애인과 비슷하지만 단기 기억력이 낮아 대답이 정확할 때도, 흐릴 때도 있다. 이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이따금 알기 어렵다. “배! 배! 하면 배가 아픈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알 수가 없죠. 상황과 표정을 보면서 파악해야 합니다. 다리에 피가 흐를 때는 어디에서 어떻게 다쳤는지 설명을 하지 못하니 가족들이 추측하거나 집안을 살피며 경위를 파악해요.” 그러나 유 작가는 이런 의사소통을 통해 동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동생의 표정과 동작, 시선에 집중한 덕분이다. “동생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죠. 제 동생은 사람 얼굴과 이름 외우는 것을 가족 중에 제일 잘해요. 외부 활동도 좋아하고 사람을 많이 좋아합니다.”

유 작가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는 동생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동생이 장애가 있어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정말 아무렇지 않게 동생과 놀았죠.” 그러나 주변 시선이 적나라하게 동생과 가족, 자신을 향하기 시작할 때 즈음 차별을 느꼈다. “또래들이 저를 향해 동생이 장애인이라고 놀리거나, 동생에게 얼굴은 멀쩡한데 애가 모자라다, 불쌍하다 등 연민을 가장한 말을 던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동네 어른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입 밖으로 그런 말을 꺼냈을지 모르지만 저는 아직도 그 말이 생각나거든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처럼 보이는 차별은 동생과 유 작가의 생애 전반에서 지속돼왔다. 유년기와 학령기에는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차별로 나타났다면 성인이 될수록 차별은 은밀해졌다. “어렸을 때는 대놓고 차별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죠. 자신이 차별주의자가 아닌 듯 말해요. 차별이 아니라면서 동생 앞으로 장애인 연금이 나온다고 하면 좋겠다고 해요. 특수교사라는 제 직업을 듣고 ‘참 좋은 일을 한다’고 했던 사람이 자기 가족으로 장애인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도 하죠.” 누군가에겐 사소할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도 있었다. “ARS 고객센터에서 본인 확인을 하려면 주민등록번호나 전화번호를 말해야 하는데 동생은 그걸 암기하기도, 말하기도 어렵거든요. 희망하는 학교를 위해서 통학 거리나 시설을 비교해보기는커녕 특수학교가 없어 멀리까지 가야 하기도 해요. 모두 어쩔 수 없는 선택지로 보이지만 차별이죠.”

실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63.6%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건양대 초등특수교육과 전혜인 교수는 “장애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간과하는 것이 차별의 근간”이라며 “노화로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고 먼 친척이나 가족 중에 장애인이 아예 없는 경우도 드물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장애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 말했다.

유 작가는 차별을 마주할 때면 화가 나도 개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 말을 한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그 말을 하는 개인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사람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을 뿐이죠. 정말 장애와 비장애 형제에 대해 몰라서 그렇게 말한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비장애 형제’ 고정관념 깨기

 

유 작가와 동생은 여타 남매와 똑같다. 커가며 사소한 갈등을 겪었고 그만큼 더 각별해졌다. “호기심 많은 동생이 제 방에 들어와서 물건을 망가뜨리기도, 다른 곳에 놔두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 저는 숙제나 물건을 종종 잃어버렸죠. 하지만 으레 겪는 갈등을 거치며 저는 동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됐어요.”

독립한 지금도 유 작가는 매일 오후 8시에 동생과 통화한다.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본가에 가서 동생과 저녁을 먹고, 누워서 TV를 보며 소소한 시간을 보낸다. 유 작가는 동생과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한다. “남동생은 내면이 아직도 어린아이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아들 같기도 하죠. 그렇지만 여느 남매가 느끼는 그 감정들을 저희도 느껴요, 왜, 누나들이 남동생에 대해 으레 애증의 감정을 느낀다고 하잖아요. 동생이 밉기도 하고 성가실 때도 있지만 기저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부모님보다 잔소리도 덜하고 동생 편을 많이 들어주니, 동생은 가족 중에 저를 가장 좋아해요.”

하지만 사회가 유 작가와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남매를 바라볼 때와 달랐다. 주변 어른들은 유 작가에게 ‘네가 잘해야 한다’, ‘딸이라도 멀쩡해서 다행이다’, ‘누나가 그래도 착하네’라는 말을 자주 건넸다. 어렸을 때는 자신을 향한 칭찬인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저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를 착한 누나로만 보고 우리 남매는 평범하지 않다고 본 거예요. 동생에게 장애가 있을 뿐인데. 우리는 여타 남매와 다르지 않은데….”

‘착한 형제’로 보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한편, 비장애 형제가 늘 슬프고 억압돼있을 거라 단정하는 시선들도 있다. 책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를 쓴 류승연 작가는 딸의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건넨 말을 잊지 못한다. “딸이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친구 옷에 사인펜을 묻힌 거예요. 담임 선생님은 제 딸이 비장애 형제이기 때문에 억압돼있고 화가 많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부모의 관심이 온통 동생에게 가 있으니 거기서 쌓인 화를 학교에서 푸는 것 같다고요. 그저 아이들이 커가면서 할 수 있는 장난인데 제 딸이 비장애 형제이기 때문에 내면의 감정이 억압돼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많은 비장애 형제가 마음 속에 ‘깊은 슬픔’을 갖지만, 이 슬픔은 장애 형제 때문이 아니다. 깊은 슬픔은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장애 형제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사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란 감각에서 비롯된다. 비장애 형제는 행복과 슬픔을 모두 거치며 성장한다. 늘 괴롭고 슬픈 것이 아니란 의미다. 비장애 형제를 특정 틀에 가두는 시선은 이런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류 작가는 “깊은 슬픔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섣불리 비장애 형제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오히려 비장애 형제를 평생 돌봐야 할 짐이 있는 존재로 비추고 배제와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비장애 형제를 둘러싼 많은 논의는 비장애 형제의 어려움을 호명하며 진행돼왔다. 중요한 건 그 어려움이 개인마다, 가정마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감정기 명예교수(경남대·장애인복지학)는 “가족관계, 부모의 대처 방식 등에 따라 비장애 형제가 겪는 어려움이 달라진다”며 “그간 연구에 따르면 비장애 형제는 장애 형제를 돌보며 신체적인 부담을 갖기도 하고, 정서적으로는 불안, 자신감 결여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장애의 세부적인 유형과 특성에 주목했다. “장애의 세부적인 유형과 장애 특성, 장애 정도 등에 따라 본인과 가족이 경험하는 어려움이 달라집니다. 발달장애인의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겪는 어려움이 많은 편입니다. 부모가 장애 자녀에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경우 비장애 자녀들은 소외감과 분노를 느끼기도, 부모님이 힘드니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착한 자녀’가 되려는 부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해 비장애 형제가 갖는 어려움만을 부각해 온 논의가 역할을 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교수는 “사회적 관심이 부족했던 시점에 비장애 형제의 어려움을 부각해 관심을 이끌어 낸 논의가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 비장애 형제에게 고정관념을 씌우는 위험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 역시 사실”이라며 “실상 많은 가정과 비장애 형제가 이 모습을 벗어나 있고, 장애 형제를 둔 덕분에 비장애 형제의 리더십이 성장하는 등 강점들도 많기에 비장애 형제를 대상화해 일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곁을 내주고 많이 볼수록 변화는 가까워진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유 작가는 가정에서 걱정거리가 되지 않도록 뭐든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학교에서 공부를 곧잘 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다. “부모님의 물리적인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적이니까요. 동생을 위해서라도 두 명의 몫을 스스로 해내야겠다고 다짐했죠.” 부모님이 ‘너 때문에 내가 산다’라고 건네는 말이 부담과 중압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 책임감마저 발판 삼아 잘 살아왔다. 그러나 비장애 형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유 작가는 비장애 형제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받아본 적이 없다. 복지관에서 진행하던 가족 캠프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일회적이고 단기적이었다. 지난 2014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간한 「비장애 형제자매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각 시도별 장애인 복지관에서 자체 운영하는 비장애 형제 프로그램은 연 1~4회 일회성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62%로 집계됐다. 현재까지도 비장애 형제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는 미비하다. 감 교수는 “장애아 가족 양육지원사업의 휴식 지원 프로그램 등 정부 지원 아래 이뤄지는 몇몇 사업이 있지만 비장애 형제를 지원 대상으로 특정한 프로그램이 아닐뿐더러 비장애 형제의 복합적인 욕구를 충족하기에 미흡하다”며 “민간 사업의 경우에도 장애인가족지원센터와 복지관이 개발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비장애 형제의 문제를 핵심사업으로 삼는 전문 기관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장애 형제가 필요로 한다면 상시 지원받을 수 있는 생애주기별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유 작가는 말했다. “유아기나 학령기에는 형제의 장애가 무엇인지, 장애를 어떻게 대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면 제공해주고, 보호자가 부재할 경우 유아기와 학령기 비장애 형제를 돌보는 체계도 마련돼야 하고요.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장애 형제의 미래 계획, 재정 관리 등을 적절히 지원하는 프로그램 등이 있어야 합니다.”

자조(self-help) 모임 형성도 하나의 지원방안이다.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 정희경 센터장은 “장애를 처음 받아들이는 과정을 누구도 당사자만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부모가 동료 상담을 하듯 비장애 형제에게도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 역시 “아동기부터 성인기까지 자신뿐 아니라 비장애 형제가 세상에 많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양한 비장애 형제가 만나 고민을 털어놓고 어울리는 모임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비장애 형제가 경험하는 사회적 선입견이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사회의 ‘총체적 변화’가 요구된다. 류 작가는 장애 가정과 사회의 인식 변화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가정은 사회가 보기에 ‘장애인 가정’다운 삶을 살기도 해요. 그러나 결국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 전반의 장애 인식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비장애 형제에게 중압감을 부여하는 가정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가정도 존재하는 거죠.” 장애를 타자화하고 장애에 가치를 부여해온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류 작가는 “장애는 너무 무겁고 부정적인 인식과 통합돼 있다”며 “장애는 그저 하나의 상태일 뿐이며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비장애 형제, 장애 가정, 장애를 차별하는 인식을 파고 들어가면 ‘타자화’란 뿌리가 나온다. 누군가를 하나의 대상으로 분류하고 타자화하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류 작가는 “비장애와 장애의 공존 방안을 묻는 경우가 많은데 그 질문부터가 장애인을 타자화하는 것”이라며 “장애를 둘러싼 차별은 타인에 대한 혐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장애 혐오뿐 아니라 자신과 다른 이를 타자화하고 혐오하는 인식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와 비장애,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없애는 것부터 이해와 변화가 시작된다. 류 작가는 “그저 서로를 위해 곁과 시간을 내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장애인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본인이 가진 편견을 깰 수 있도록 인식이 전환되는 경험의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회를 늘리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장애가 더 가시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 교수는 말했다. “의식적으로 교과서나 동화책, TV 방송 등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 장애 가정이 보이면 좋겠습니다. 장애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장애를 거부하는 것이 사라지는 사회로 나아가면 좋겠죠.”

 

유 작가는 말했다. “저는 '흉터를 꽃 피운다'는 표현이 좋아요. 최선을 다해 꿋꿋하게 살아낸 제 삶의 징표니까요. 제가 지나온 길의 경험과 감정을 적고, 글을 읽은 누군가가 찰나의 통찰과 위로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는 편견과 차별을 견디며 생긴 생채기를 서서히 흉터로 꽃 피우고 있다. 이 흉터는 과거의 흔적을 가졌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기억이다. 사회의 무수한 상처를 흉터로 바꾸는 변화가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그 변화는 한 사람의 몫도, 비장애 형제와 장애 당사자의 몫도 아니다. 변화의 자리에 ‘우리 모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글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사진제공 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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