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권 공방 이면의 장애 담론을 비틀다

 

치열했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대선 사전투표율은 역대 최고 수치인 36.93%로 집계됐습니다. 기록적으로 많은 국민이 사전 투표장으로 향하던 지난 4일, 서울 종로구에서는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대응팀’(아래 대응팀)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국가가 장애인의 참정권을 ‘완전히’ 보장할 방안을 고민해 다음 투표에는 기자회견 없이 모두 바로 투표소로 갈 수 있길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263만 장애인 유권자의 선거권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입니다. 헌법 제24조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모든 국민이 선거권을 가진다고 명시합니다. 「공직선거법」 제6조는 이를 구체화해, 국가가 선거권 행사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죠. 특히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선거인에게 필요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조항이 마련돼 있습니다.

장애인 선거권은 선거철마다 나오는 해묵은 과제입니다. 같은 국민임에도 장애인이 한 표를 행사하기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지난 1월 18일 국가를 상대로 한 차별 구제소송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들은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투표권은 장애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기본권”이라 외쳤습니다. 

장애인 단체들은 꾸준히 ▲발달장애인 참정권 ▲수어 통역 ▲시각장애인 공보물 미비 등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며 개선을 요구하는 중입니다. 지난 2016년 발달장애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명을 동반해 투표를 보조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2020년 총선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 선거사무지침이 변경되며 해당 내용이 삭제돼 현장에서 투표를 보조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있었죠. 장애인 단체는 그 뒤 2년간의 법정 소송 끝에 투표 보조 권리를 다시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발달장애인들은 또 한 번의 고비를 마주했습니다. 대응팀은 지난 2021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0년간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 제작을 외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2021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사진과 소속정당 상징 그림 등을 표시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입법조사처는 ‘이미지 선거가 될 수 있다’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습니다. 장애인 단체들이 선거의 문턱을 낮춰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두가 쉽게 선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법안은 계류됐고 20대 대선에 입후보한 14명 중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쉬운 공보물을 배포한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장애인 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접수하고 공직선거법 개정 토론회 등에 참여하며 외친 ‘쉬운 공보물’은 이번에도 외면당한 셈입니다.

선거토론 방송 등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다중 수어 통역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권위는 지난 2018년 선거방송 화면송출 시 2인 이상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2월 21일 열린 1차 대선 토론회에 한 명의 수어 통역사가 등장하며 장애인 단체들의 공분을 샀죠. 박미애 수어 통역사는 『표창원의 뉴스 하이킥』과의 인터뷰에서 “한 사람이 후보자와 사회자를 포함한 다섯 명을 통역하다 보니 장애인은 후보자 분별이 어렵고 대화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2월 25일과 3월 2일 열린 2·3차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최초로 일대일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2022대선장애인연대’는 ‘선거토론 속 수어 통역,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는 성명에서 “발화자별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기로 한 대선 토론 생중계 확정을 환영한다”면서도 “단발성으로 그칠 게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모든 선거에서 발화자별 수어 통역사 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각장애인 유권자를 위해 지난 2000년 점자형 선거공보가 의무화되고, 2020년에는 묵자*를 점역할 때 분량이 늘어나는 것을 고려해 시각장애인 점자 공보물 매수를 묵자의 2배까지 확대하도록 법안이 개정됐지만, 점자 선거공보물이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거공보 현황」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든 형태의 선거공보를 제출한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 통일한국당 이경희 후보 3명에 불과했습니다.

점자 선거공보물의 개선 작업은 더딥니다. 「공직선거법」 제65조에 따라 후보들이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올린 공보 파일은 시각장애인이 화면 낭독 프로그램을 통해 텍스트로 변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장애인 단체들은 ‘현재 자료 형식을 각 후보가 임의로 정해 올리고 있어 프로그램을 쓰더라도 오류가 발생한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이와 같은 요구에 대해 “점자형 선거공보를 우편으로 발송하고 있다”며 “후보들이 올리는 파일에 대해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인권위는 중앙선관위의 주장을 인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2020년 3월 3일 인권위는 “후보자들에게 정보를 텍스트로 제출하도록 적극적으로 안내할 수 있음에도 시각장애인의 선거권 요구에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한 중앙선관위의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시각장애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중앙선관위가 선거공보물 개선 등에 기울여야 할 책무를 재확인한 셈입니다. 장애인 단체들은 이에 더해 쉬운 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 제작도 어렵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실제 스코틀랜드, 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0여 개 국가에서는 투표용지에 후보자 사진을 함께 실어 인쇄합니다. 스웨덴은 각 정당이 정책 공약집 자체를 쉽게 구성해 배부하고, 영국 주요 정당은 발달 장애를 지닌 유권자 등을 위해 그림과 쉬운 언어로 구성된 정책 요약집을 발간하고 있죠.

장애인 선거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은 시혜적 복지 논리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비판이 이어집니다.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 앞 기자회견에서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한국에서는 보편적인 그림 투표용지 대신 장애인을 위한 특수투표용지를 도입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별도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며 “특정 대상자를 위해 예산을 ‘들인다’는 논의는 장애인의 투표를 시혜적으로 보게 하고, 예산 문제에 부딪혀 통과되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고 지적했죠. 한국산업정보연구소가 발간한 「장애인 인권으로 본 장애인 인식개선」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주로 시혜적 입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또는 사회적 환경 간의 관계를 설정’해왔습니다. 장애인 선거권을 선택 사항으로 바라보는 관념의 기저에는 장애인을 관심과 돌봄의 대상으로 정의하는 담론이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김원영 작가는 ‘헌법은 개인이 고유한 저자성**을 갖기에 존엄하고, 그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자유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명시한다’면서도 ‘장애인이 정작 권리 보호의 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존엄의 핵심인 저자성을 침탈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고유성과 저자성을 깎아내려 사회가 정의하는 ‘장애인’으로 인정받아야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선거권 보장을 외친지 이십여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장애인의 선거권이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처럼 남아있는 현실은 더 큰 모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장애인 선거권을 내밀히 파고들어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김도현 작가는 『장애학의 도전』에서 연립(聯立)의 개념을 제시합니다. ‘자립과 의존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설 때 드러나는 가치가 바로 함께 어울려 섬, 즉 연립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홀로서기도 낙인화된 의존도 아닌, 함께 서기로서의 연립생활로 나아가야 한다.’ 

선거권 역시 연립의 관점에서 올바로 이해할 때 시혜적 차원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연립의 시선에서 장애인 선거권 보장은 함께 서기 위해 사회적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입니다. 가령 발달장애인의 선거권 논의에서는 자기 결정 역량이 자주 등장합니다. 발달장애인의 자기 결정 역량이 비장애인에 비해 낮아 선거권 행사가 어렵다는 시각과 낮은 역량을 곧 권리 불능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시선이 충돌하죠. 그러나 자기 결정 역량은 제공되는 서비스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합니다. 그렇기에 국가는 비장애인이 선거 홍보물과 서비스로 역량을 키우듯, 장애인에게도 자기 결정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선거제도와 사회적 조건을 제공할 의무를 집니다. 장애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할지에 대한 담론이 아닌, 선거권을 기본값으로 두고 자기 결정 역량이 부족하다면 키울 수 있는 담론을 이어가는 것. 그리하여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연립이 견지하는 자세입니다.

 

『짐을 끄는 짐승들』에서 수나우라 테일러는 장애 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존엄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지능, 신체적 자립 등과 같은 특정한 것들이 아니다. 이 분야에 몸담은 우리들 대부분은 누구에게나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장애인 선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그동안 '비장애'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본 우리의 익숙한 시선을 돌아보게 합니다. 배려, 선의가 익숙한 기존 장애 담론에서 장애인 선거권은 보장 여부가 불투명한 '선택 사항'일 뿐입니다. 모두를 위한 선거권이 보장돼야 한다면, 그 '모두'의 자리 최전선에 장애인이 있어야 합니다. '장애인'을 중심에 놓는 선거권 논의가 모두의 필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합의의 시작점이 되길 기대합니다.

 

 

글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그림 민예원

 

* 묵자: 인쇄된 글자
** 저자성: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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