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현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
강상현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어쨌든 이번 대선에서 유력 후보자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2022년 대한민국의 유권자인 국민이 선택한 결과다. 대통령책임제니까 대통령이 최종 책임을 지게 되겠지만, 대통령을 뽑은 국민의 책임도 막중하다. 그런데 국민의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었기를 바라면서도 그렇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이번 대선이 갖는 몇 가지 특징 때문이다.

우선 이번 선거 과정에서는 미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주로 과거만 보였다. 그것도 좋은 과거가 아닌 나쁜 과거가 판을 쳤다. 특히 유력 후보자들과 관련해 후보자 개인은 물론, 후보자 가족에 대해 좋은 점, 훌륭한 점보다는 온통 문제점과 의혹에 대한 비난과 함께, 흠집투성이라는 비판이 난무했다. 이 나라를 이끌어 갈 훌륭한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데 후보자와 후보자 가족의 과거와 관련된 나쁜 점, 못난 점만 부각됐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유세 과정이나 TV토론 과정에서 정책과 비전에 관한 얘기들이 나왔지만, 그런 건 이내 상대방에 대한 거친 비난 공세와 끝없는 공방에 묻혀 버렸다. 한마디로 나쁜 과거에 매몰된 이전투구였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누가 더 좋은 후보자인가를 가리는 선거가 아니라, 누가 덜 나쁜 후보자인가를 가리는 선거처럼 돼 버렸다. 후보의 미래 정책과 비전이 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후보자나 그 가족의 과거 비리와 의혹에 대한 평가가 선택의 기준이 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유권자는 어떤 후보자가 정말 좋아서 그에게 투표한 것이 아니라, 다른 후보자가 싫어서 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그래선지 이번 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오명을 줄곧 달고 다녔다. 결과적으로 많은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나쁘거나 덜 싫은 후보자를 선택한 셈이 됐다. 그 기준 역시 미래보다는 과거에 있었다. 더욱 마음에 들고 미더운 사람을 뽑아야 할 대선에서 덜 나쁜 사람, 덜 미운 사람을 경쟁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선거였으니 유권자로서도 참 곤혹스러운 선거였다고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는 유력 후보자들의 정책 비전이나 공약들이 유권자에게 제대로 제시되고 인식된 미래 지향적 선거도 아니었다. 과거 반성적이거나 과거 부정적인 경향이 매우 강했다. 유력 후보자들 모두 과거의 잘된 정책이나 과거의 업적을 강조하기는커녕 과거의 실책이나 과오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 주로 집중했다. 야당 후보자 입장에서야 정부여당의 과거 정책을 비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과거의 실정(失政)에 대한 날선 비판과 함께 “정권교체” 주장을 하는 것이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여당 후보자마저도 정부여당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로 고개를 자주 숙였고, 그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오히려 정부와의 “차별화” 혹은 “정치교체”라는 아리송한 개념으로 유권자에게 연일 읍소해야만 했다. 창과 방패가 돼야할 여야 간 선거 경쟁이 둘 다 창이 돼 싸우는 꼴이 됐다. 둘 다 과거를 찌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거나 그런 과거를 바꾸겠다고 외쳤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 입장에서는 나중에 많은 부분 양자간의 정책적 차별점을 인식하기도 어려워졌다. 유력 후보자들 모두 부동산 문제 해결하겠다고 외쳤고, 새로운 청년 일자리 창출하겠다고 역설했으며, 코로나로 피해본 자영업자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유세나 토론 중에 나왔던 단편적인 발언이나 말 실수가 큰 정책이나 가치관의 차이인 듯 침소봉대되기 일쑤였다. 그런 과정에서 미래는 보이지 않고, 미래가 들어설 자리는 좁아졌다.

그런 와중에도 유력 후보자 양 진영은 두꺼운 선거 정책 공약집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은 5대 비전과 20대 핵심 추진과제를 담은 거의 200페이지에 가까운 공약집을 내놓았고, 그밖에 지역별 공약과 시/도별 공약, 소확행 공약들도 대거 내놓았다. 국민의힘도 450페이지에 이르는 10대 비전·실천과제 및 17개 시도 맞춤형 공약과 함께 세대·대상별 맞춤공약까지 내놨다. 모두가 화려한 청사진들이지만, 유권자의 눈에는 잘 띄지 않았다. 부지런한 유권자가 각 당 홈페이지에 들어가야 겨우 찾을 정도였다. 마침 국민의힘 홈페이지에는 정책공약집을 ‘판매’한다는 보도자료가 있었다. 당선자를 냈으니 이제라도 하나 사봐야겠다.   

모든 걸 다 해결할 듯 떠벌린 그간의 유세와 연설들을 되새겨 볼 때가 됐기 때문이다.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수많은 ‘맞춤형’ 공약들을 담고 있는 공약집을 오히려 이제부터 챙겨 읽어 보아야 할 것 같다. 앞으로 5년 동안 하나씩 체크하며 따져봐야겠다. ‘덜 나쁘고 덜 싫다고’ 유권자들이 뽑은 새 대통령도 현 정부의 실정을 맹비난하며 마치 모든 것의 해결사인양 큰소리 많이 치지 않았던가. 당선을 축하하면서도, 여러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앞으로가 문제기 때문이다.

 

*기고자의 의견일 뿐 우리신문사 입장과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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