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 힘겨운 운동선수들, 그들을 위한 사회

23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미래를 꿈꾸는, 인생의 찬란한 봄의 시간이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에게 23세는 막막한 미래를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다. 지난 2019년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운동선수의 평균 은퇴 연령은 23.6세. 대부분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꿈’으로 둬야 하는 그들을 바라본다.

 

 

경제적·신체적 벽에 가로막힌 은퇴 선수

 

화려한 등장, 수백억을 넘는 연봉, 팬들의 엄청난 환호성. 스타 선수가 누리는 것들이다. 그 이면엔 은퇴 선수들이 있다. 지난 2020년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은 「2019년도 은퇴 운동선수 실태조사」(아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퇴 선수들의 실업률은 41.9%다. 절반에 가까운 은퇴 선수들이 실업 상태인 셈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같은 시기 전국 실업률은 3.9%에 그쳤다.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오계택 소장은 “젊은 나이의 은퇴 선수들이 일하지 못한다는 점은 미래에 대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한 은퇴 선수 중 46.8%가 월 200만 원 이하의 소득을 얻고 있다. 통계청의 ‘2019년 3/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에 따르면 같은 시기 2분위 평균 소득은 298만 2천 원이다. 은퇴 선수들의 평균 소득은 2분위 평균 소득보다도 적은 것이다. 오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시급 9천160원이고,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191만 4천440원”이라며 “월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이면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최저임금으로 최저의 생계유지는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생활은 어렵다”며 “청년들은 미래를 위해 투자나 저금을 해야 하는데 그러한 활동은 불가능한 상황”이라 덧붙였다. 

운동선수들은 비운동선수보다 신체적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은퇴 선수 A(25)씨는 “자주 부딪히고 넘어지는 종목의 선수로 생활한 탓에 무릎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하성희 초빙연구원은 “은퇴한 선수들은 신체의 과도한 사용과 근골격계 부상 등으로 인해 건강 관련 삶의 질이 낮다”라며 “가벼운 부상을 입더라도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약 50%의 경우만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도 문제”라 말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재부상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하 연구원은 “20~30대 은퇴 선수는 머리에 지속적인 충격이 가해진 탓에 60대 성인과 비슷한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작은 충격의 누적이 상당한 후유증을 남긴다”고 전했다. 

 

은퇴를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
은퇴 이후를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국가 기관들에서는 은퇴 선수들을 지원하기 위해 은퇴선수진로지원센터(아래 진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진로센터는 은퇴 선수들에게 진로 상담, 취업·창업 기초교육, 직업훈련 등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진로센터의 ▲홍보 부족 ▲전문성 부재 문제들이 지적된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세 은퇴 선수 중 진로센터의 존재를 아는 선수의 비율은 13%에 그쳤으며, 대상을 전 연령대로 확장해도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진로센터를 이용하는 비율은 그보다 더 낮은 7%에 불과했다. 한양대 체육학과 김동학 교수는 “진로센터 사업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진로센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주위에 진로센터를 알거나 이용한다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신상현 교수는 “은퇴 선수 지원 사업 대부분이 홍보가 제대로 안 됐다”고 했다.

진로센터의 전문성 부족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 교수는 “대한체육회가 직접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외주 기관에 일을 전가하고 있어 사업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주로 1년 단위로 계약하다 보니 사업의 연속성을 지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운동선수를 위한 전문 컨설팅 업체를 뽑기보다 일반인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은퇴 선수에게 특화된 설계를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센터에 방문한 사람들은 실질적인 도움을 얻지 못하고, 입소문도 나지 않는다. 

은퇴를 말할 수 없는 사회는 선수들의 부담을 가중한다. 은퇴 이후의 삶에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한창 선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은퇴’라는 단어는 금기어”라며 “운동에 매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문화 때문에 선수가 코치나 부모에게 은퇴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 전했다. 은퇴 선수들이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기에 지금의 정책들이 무의미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신 교수는 “운동선수들은 놀라울 정도로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며 “운동선수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아이가 은퇴한 후에 어떻게 살게 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은퇴 선수 B(22)씨는 “운동할 때 미래가 막막하니 오히려 미래를 생각하지 않게 됐다”며 “미래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다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은퇴 후에도 빛나야 할 청춘을 위해

 

전문가들은 운동선수들이 은퇴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대한체육회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스포츠 토토 수익금, 복지기금 사업 등으로 운영된다”며 “운동선수들의 땀이 만든 인프라인 만큼 이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했다. 또한 오 소장은 “사기당하거나 범죄에 빠지는 등 은퇴 선수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해 이들에게 전문화된 경력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은퇴 선수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듀얼 커리어’ 제도가 있다. ‘듀얼 커리어’란 운동선수들에게 운동이라는 한 가지 길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올림픽에 출전해 화제가 되는 이른바 ‘투잡’ 선수들이 그 예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은행원 등으로 다양하다. 신 교수는 “지금은 학생 운동선수에게 ‘운동이나 열심히 해’ 하는 문화지만, 운동선수가 아닌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은퇴를 말할 수 있어야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듀얼 커리어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은퇴 선수를 포용하는 문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 교수는 “운동부 학생들이 주말에 그냥 쉬는 경우가 많은데,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의 활동을 통해 사회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결국 이런 것들이 듀얼 커리어”라 설명했다. 운동선수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프로와 다름없는 학생선수들의 훈련 일정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 교수는 “학생선수들의 삶의 방향성을 너무 좁히지 않아야 한다”고 전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은퇴 선수 당사자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는 은퇴 선수를 위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당사자는 배제된다. 신 교수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은퇴 선수가 아니니 실제 은퇴 선수가 겪는 어려움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한체육회의 임원 구성을 살펴보면 총 50명의 임원 중 운동선수 출신의 수는 비운동선수 출신의 수보다 적다. 신 교수는 “은퇴 선수와 함께 정책의 방향성을 정해야 지금의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은퇴 선수에게 도움 되는 정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은퇴 선수를 ‘실패자’로 보는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은퇴 선수들은 실패자가 아닌 ‘인생 2막’을 앞둔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비운동선수가 그렇듯, 운동선수들이 대학 진학 후 운동을 그만둔 것도 성공이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 역시 “대학 진학을 위해 운동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들에게 20살, 21살 은퇴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여러 이유로 인해 은퇴를 선택한 선수들을 실패자가 아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 청년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낙인이 찍혀서 일어서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김 교수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은퇴 선수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

 

신 교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만든다”고 전했다. 은퇴 선수들이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선 은퇴를 자연스레 말할 수 있는 문화와 더불어 이들의 진로를 지원하는 제도가 구축돼야 한다. 은퇴 선수들의 23살이 두려움의 시간이 되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

 

 

글 최준성 기자
jschoi0609@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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