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영화, 『Call Me by Your Name』

 

호칭에는 관계의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연인 간 호칭은 애정의 깊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령 한국에서는 연인을 부를 때 ‘그 사람 자신’을 의미하는 2인칭 명사 ‘자기’를 사용한다. 자신을 칭하는 단어로 상대를 부르며 서로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는 것이다.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엘리오와 올리버는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달콤한 단어로 서로를 칭한다. 이들의 호칭에는 상대를 향한 첫사랑의 감정이 녹아있다.

 

1983년 여름, 북부 이탈리아의 조용한 별장.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17세 소년 엘리오에게 낯선 손님이 찾아온다. 고고학 교수인 그의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미국인 청년 올리버다. 올리버는 6주간 별장에 머물며 엘리오의 가족과 일상을 나눈다. 훈훈한 외모와 특유의 친화력을 자랑하는 올리버는 마을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많은 사람과 가까워진다. 반면 내향적인 성격의 엘리오는 홀로 책을 읽거나 음악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둘은 함께 지내면서도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못한다. 올리버를 바라보는 엘리오의 감정은 종잡을 수 없이 들쑥날쑥하다. 엘리오에게 올리버는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묘한 질투심의 대상이다. 엘리오는 내향적인 자신과 다르게 누구에게나 당당한 올리버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여자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올리버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살갑게 다가가다가도, 쌀쌀맞은 태도를 보인다. 올리버는 이유 없이 자신에게만 무례한 엘리오에게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별다른 대사는 없지만, 이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 조심스러운 몸짓 하나하나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엿보인다.

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선 엘리오에게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찾아온 불안정한 사랑의 감정은 낯설기만 하다.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도 엘리오의 마음에는 올리버가 가득하다. 올리버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엘리오의 감정은 동요한다. 대사도 많지 않고, 특별한 나레이션도 없지만 조금씩 번져가는 엘리오의 마음은 숨길 수 없다.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마음에 잠들지 못하는 밤, 엘리오에게 미지근했던 1983년의 여름은 잊을 수 없는 뜨거운 첫사랑의 순간이 된다.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6주가 지나고, 헤어짐을 앞둔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칭하며 사랑을 전한다. 첫사랑 영화의 명작이라 불리는 『Call Me by Your Name』은 다른 사랑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인의 문턱을 넘으려는 소년이 첫사랑을 발견하고, 그 어느 때보다 서툴면서도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첫사랑을 놓친 뒤 실연에 아파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Call Me by Your Name』은 여타의 퀴어 영화와는 달리 이들의 사랑을 자극적인 관계만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뜨거운 여름을 느낄 수 있는 음악과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통해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이들의 내밀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구아다니노 감독의 미묘한 디테일도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다. 『Call Me by Your Name』의 원작 소설은 1983년이 아닌 1987년을 배경으로 한다. 이와 관련해 구아다니노 감독은 “레이건이나 대처 시대보다는 아직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은 1983년이 때 묻지 않은 소년의 순수한 사랑을 그리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별 후 모닥불을 바라보며 첫사랑의 아픔을 느끼는 엘리오의 모습이 담긴 엔딩 장면에도 감독의 디테일이 숨어 있다. 올리버와의 마지막 전화 이후 엘리오는 애달프고 먹먹한 감정에 빠진 채 모닥불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때, 엘리오의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 순간 엘리오는 첫사랑의 끝을 실감한다. 자신의 연인을 ‘엘리오’라 부르고, 자신의 연인에게 ‘올리버’라 불리던 환상 속 추억은 사라졌다. 엘리오는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며 이별의 현실을 자각한다. 첫사랑의 끝을 받아들이는 엘리오의 눈빛이 담긴 약 3분간의 엔딩크레딧 장면은 첫사랑의 추억을 곱씹어보게 한다.

 

첫사랑의 감정을 그린 이 영화는 미숙하고 서툰 감정을 미화하지도, 첫사랑의 아픔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불렀던 아름다운 사랑의 찰나를 남길 뿐이다. 그리고 찬란했던 성장의 기억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임을 전한다. 아직은 추운 겨울, 『Call Me by Your Name』과 함께 미리 여름의 온도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글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자료사진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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