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현 보도부장(아동가족/정외·19)
김서현 보도부장(아동가족/정외·19)

 

초등학생 때까지 내가 살던 곳은 속된 말로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심한 동네였다. 모종의 이유로 피해야 하는 표현인 줄 알지만, 일반화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도 알지만 그 동네를 한 어절로 함축하기엔 이만큼 들어맞는 말이 없다. 유년기 한 번쯤은 지나갈 크고 작은 아이들의 쌈박질에도 엄마들은 어김없이 학교에 등장해 교실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갔다. 상대 아이를 매섭게 불러세워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은 늘 이거다. “‘니’가 ‘우리’ 애 때렸니?”

우리가 아니면 남이다. 그 명쾌한 교리 아래 어른들은 충실했고, 어린이들은 마치 스펀지처럼 흡수력이 좋았기에 곧 익숙해졌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다 언젠가 같은 반에서 한마디 말도 섞어보지 못한 아이에게 왕따 가해자로 지목을 당했다. 반에서 친구 없이 혼자 다니는데, 그런 분위기를 내가 주도하는 것 같다고 담임 선생님께 말한 거다. 선생님은 주동자를 발본색원하기보다 한 명 한 명에게 먼저 물을 줄 아는 분이셨다. 내 눈물 섞인 항변을 듣고는 그 아이 어머니께 ‘서현이가 행동이나 목소리가 커서 오해했던 것 같다, 서로 잘 어울리게 더 신경 쓰겠다’고 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은 당사자 입장을 직접 듣고 싶으셨을 뿐인데, 어린 마음엔 억울한 나를 추궁한다고 느꼈나 보다.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이 상황을 또 눈물로 읍소했다. 엄마는 다 듣더니 말했다. 그 친구네 엄마 만나야겠다. 왜? 얘기를 들어봐야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들어. 이미 끝난 일인데 오지랖이라고. 엄마의 조치는 내가 이미 체득했던 우리 동네의 풍토와는 너무도 정반대의 액션이었다. 엄마는 정말로 수화기를 들고 그 애 어머니에게 전화해 아이들과 함께 만나자고 했다. 나는 입이 댓 발 튀어나와선 엄마 손에 이끌려 약속 장소인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엄마는 인사도 전에 대뜸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부터 숙였다.

엄마가 ‘우리’ 엄마로서 끊임없이 애정을 확인시켜 줄 때보다, 일순간 ‘남’에게 사과하던 엄마의 사랑이 훨씬 직관적으로 내게 새겨졌다. 기억은 휘발성이지만, 그 순간은 기억이 아닌 배움으로 남아 내 삶의 책갈피이자 단단한 지지대가 됐다. 엄마는 그 날 그 애 어머니의 속상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듣고 다독였다. 성인이 되고 한 번은 엄마에게 왜 그랬는지 물었다. 엄마는 당연하단 듯 “그들을 위한 게 결국 우릴 위하는 거였다”고 답했다.

문득 깨닫는다. 타인을 내집단의 울타리 밖으로 내몬다는 게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를. 그리고 그 울타리조차 실상 환각이라는 것을. 보도부에 있으면서 바라본 학생사회는, 내가 초등학생 때 목도한 정경과 꽤 겹쳐 보인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연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에 대한 연대 등 학생사회가 학교 차원에서의 각종 연대와 지지를 거부하는 가장 표면적이고 중추적인 이유는 ‘우리가 왜 그들의 일에 끼어들어야 하냐’는 거다. ‘그들’과 ‘우리’의 분기점이 어딘지 생각해본다. 참으로 흐릿하다. 같은 이유로 학내 청소용역업체에 대한 규탄 요청의 안도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부결되고,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설립은 학생사회의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사실상 불투명해졌다는 걸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각자가 가진 다중적인 정체성으로 상호 간 여러 겹 중첩된 현대인들에게 완벽한 타인이란 허깨비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의결기구들은 중립이라는 때깔 좋은 명분 아래 이들을 외면하고 거절해 버린다. 이때 중립은 더 이상 중립이 아니게 된다. 그걸 원하는 사람들끼리 단체나 지하조직을 만들어서 활동하라는 말도 심심찮게 봤다. 하지만 하나의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건 다른 의미를 가진다. 파급력에서도, 행동력에서도, 상징성에서도 ‘연세대 내 단체’와 ‘연세대’는 다르다. 역사에 족적을 남긴 학생운동들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가 나서서 만드는 사회는 곧 우리가 살아갈 사회가 된다.

대학은 사회의 미니어처다. 한 국가의 대학만 봐도 그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대학에서 무관심과 외면을 체화한 우리 세대가 만들 앞으로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제법 잔인하게도 목전까지 성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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