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은 우리의 욕망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상징적 공간이다.
높은 교육열과 학벌주의 너머 새로운 교육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매년 11월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날’이다. 시험장 앞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학부모들로 북적이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수험생들의 꿈을 응원한다. 성인이 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이날 하루를 위해 우리는 초중고 12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쏟아붓는다. 

수능은 대학 입시를 둘러싼 열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학생들은 입시가 끝날 때까지 빡빡한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고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매달린다. 모두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길 원한다. 대학 졸업 이후 따라붙는 ‘명문대 프리미엄’의 영향력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학벌로 인생의 성패가 결정되는 사회에서 ‘대치동 밀착 보고서’는 ‘회복’을 이야기한다. 실패에 너그러워져야 하고, 성공의 길이 다양해져야 한다.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대치동은 겉보기엔 여느 동네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대입을 둘러싼 사람들의 뒤섞인 욕망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열기는 대입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경쟁과 불평등의 배경에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경험하는 과도한 교육열이 있다.

이번 기획이 대치동을 통해 학벌주의의 명확한 원인을 짚거나 선명한 해법을 제시하진 않았다. 학벌주의의 구성물은 그만큼 다층적이다. ‘학벌주의자’ 개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대치동에서 발견한 욕망을 냉소하지 않고 냉정하게 직시할 때, 우리는 학벌주의의 원인을 논하고 귀중한 해법을 포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치동 밀착 보고서’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시도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요? 학벌이 좋아야 하니까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음을 재촉하는 18살 지훈이와 윤서에게 요즘 드는 걱정을 물었다. ‘대학’이라는 큰 고개를 넘어야 한단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잖아요.”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은 종일 바쁜 걸음을 옮겼다. 오후 4시가 되자 학원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 수업을 가는 학생들과 함께 학원가에는 하나둘 조명이 들어왔다. 평일 오후의 대치동 학원가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은 교육으로 태동한 공간이다. 1970년대 교육부의 ‘도심 고교 강남 이전 계획’에 따라 경기고, 서울고, 휘문고, 세화여고 등 명문 고교가 강남으로 부지를 이전했다. ‘강남 8학군’이 형성되면서 크고 작은 학원가가 잇따라 들어섰다. 대치동은 ‘선호 학군’과 ‘선호 학원’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곳으로 발돋움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9년 학원 등록 현황’에 따르면 1천57곳의 학원이 대치동을 근거지로 두고 있다. 강남구 학원 2천279곳 중 절반에 가까운 46.4%가 대치동에 몰려 있는 셈이다.

 

▶▶대치동 학원가가 학생과 학부모로 북적였다.
▶▶대치동 학원가가 학생과 학부모로 북적였다.

 

최고의 대입 결과를 바라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치동으로 모여든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15살 서진이는 학원에 다니기 위해 방학 내내 송파구에서 대치동을 오간다고 했다. “집 주변에 대치동만큼 좋은 학원이 없어요. 보통 오후 10시쯤 수업이 끝나야 집에 가는데, 안 좋은 대학을 가서 앞으로 선택의 폭이 줄어들까 봐 걱정이 좀 돼요.” 대치동에서 30년간 살고 있으며 고등학교 3학년 딸을 둔 학부모 김모씨는 아이가 최선을 다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아이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대학 이름 때문에 기회조차 얻지 못하면 안 되니까요.”

기자는 학생들을 따라 ㄹ학원으로 들어갔다. 고1‧2‧3, N수 대상 강의 홍보물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과목 소개와 함께 크게 부착된 강사들의 이력과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강사로 오래 버틴 경력이 있고, 작년에는 서울대 의대 4명 보냈거든.” N수 수학 특강에 들어온 강사는 그간 자신이 어떤 학원에서 일했고, 몇 명을 좋은 대학에 보냈는지 소상하게 늘어놓았다. 이곳에서는 특정 학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수업이 열리기도 한다. 전문화된 교육 서비스는 대치동 학원가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세종과학고에 다니는 19살 성민이(가명)는 “내신 시험을 대비하는 수업이 대치동에서만 열리다 보니 여기까지 학원을 다니러 온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학원을 오갈 때 학부모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ㄱ카페는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을 서로에게 털어놓고, 이를 해소해 줄 학원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었다. “그 수업은 몇 명 안 빠져서 쉽게 못 들어가. 학원 선생들이 심사해서 반을 정해줘.” “그 수업 들으면 웬만해서 (시험 문제) 다 맞히거든.” 대형 학원들이 위치한 사거리의 ㄴ카페에는 앉을 자리가 부족했다. 테이블 한쪽에서 대여섯 살 여자아이와 어머니가 함께 문제를 풀고 있었다. 아이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머니는 집중하라는 듯 빨간 색연필로 종이를 연신 두드렸다. 저녁 시간이 되자 종이 자료로 묵직한 가방을 멘 모녀가 카페에 들어섰다. 이들은 주문한 음료를 마시지 않고 학원의 입시 상담 프로그램을 받을지 고민하다가 자리를 떠났다.

 

▶▶오후 7시 도로변에 학원 차량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오후 10시 도로변에 학원 차량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학원 오후 일정이 시작되는 7시. ㄹ학원 신학기 설명회에 온 학부모들의 시선은 2022학년도 수능 난이도와 재수생 비율표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올해도 재수생, 반수생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는 입시전문담임의 설명에 앞자리 학부모는 펜을 집어 들었다. 나눠준 자료에는 ‘대학 레벨’ ‘최상의 경쟁’이라는 문구가 종종 등장했다. 학원 수업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버스 정류장은 학생들로 붐볐다. 오후 10시부터 20분간 운영되는 학생 수송 차량 임시 정류장에도 긴 줄이 늘어섰다. 캐리어를 들고 아이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부모들이 더러 보였다. 좋은 성적을 향한 열기는 대치동에서 밤늦게까지 수그러들지 않았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이들은 시험 하나로 인생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좋은 대학을 향한 열망을 설명하는 논리를 미국의 법학자 조지프 피시킨(Joseph Fishkin)이 책 『병목사회』에서 제공한다. 열여섯 살이 되면 누구나 시합에 참가해 전사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가상의 나라가 있다. 전사의 수는 정해져 있다. 전사가 되면 모든 위신과 사치품을 가지는 반면, 전사 이외의 재능은 쓸모가 없다. 아이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전사 시험이라는 좁은 통로를 통과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피시킨은 이를 ‘전사 사회’ 혹은 ‘중요한 시험 사회(Big Test Society)’라 부른다.

대입 준비는 ‘중요한 시험 사회’의 상징이다. 대입 문턱을 넘어 더 좋은 학벌을 얻으려는 모두의 욕망이 줄 세워지는 세상에서, 대치동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 여기에는 교육 문제를 둘러싼 저마다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대치동에서 읽어낸 교육열, 학벌주의

“한국 사회에서 교육열은 단순히 교육 기회를 얻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고등 교육의 기회를 얻은 이들 가운데서도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명문대 학벌에 대한 열망이다.” (조장훈, 『대치동』)

대치동의 높은 교육열 기저에는 학벌을 얻으려는 욕망이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온 15살 예서는 “동네에 좋은 학원이 많지 않다 보니 대치동에서 영어 수업을 듣는다”며 “회사에서 학력과 학벌을 많이 보는 만큼 상위권 대학을 가야 취업에 유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경주에서 대치동 학원으로 보낸다는 학부모 이모씨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우려면 명문대 진학이 중요하다”며 “유명한 강사와 학원을 찾으려는 학부모들이 구조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대치동만의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입이 인생의 방향을 상당 부분 결정한다는 믿음은 여러 통계에서 사실로 드러난다. 지난 2021년 대법원이 임명동의한 신임법관 156명 중 65.4%(102명)는 SKY 학부 출신이다. 같은 해 월간현대경영에서 발표한 ‘2021 올해의 100대 기업 CEO 프로필’에 따르면 조사대상 CEO 115명 중 SKY 학부 출신은 55.6%(64명)에 달했다. 좋은 대학이 좋은 일자리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쌓아 올린 성채는 여전히 현실에서 견고해 보인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대입에서 성공하면 4년간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출신 대학 자체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유리한 스펙으로 작용한다”며 “10대 후반에 달성한 성취가 장년기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있기에 대입에 일생을 건다는 식의 태도가 가능한 것”이라 설명했다.

 

▶▶오후 4시 방문한 대치동 학원가 빌딩에 스터디 카페와 학원이 층층이 들어서 있다.
▶▶오후 4시 방문한 대치동 학원가 빌딩에 스터디 카페와 학원이 층층이 들어서 있다.

 

학벌주의는 학벌을 향한 열망을 부추긴다. 학교 ‘간판’에 따라 불평등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대치동』을 쓴 조장훈 작가는 “학벌은 대기업 정규직과 전문직이라 불리는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첫 번째 관문이자, 차별적인 노동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동한다”며 “학벌 취득은 더이상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에 가깝다”고 말했다.

학벌주의가 능력주의와 닿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때 능력주의는 학벌주의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오늘의교육』 채효정 편집위원장은 “신분이나 특권이 아닌 각자의 능력과 노력으로 사회적 지위와 권한을 분배하자는 게 능력주의라지만, 이러한 담론은 능력과 노력 뒤에 있는 불평등한 자본이나 권력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학벌주의를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연구원 엄수정 교육자치연구팀장은 “능력이 있으면 그에 따른 차등적인 미래가 보장된다는 능력주의적 약속이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에서 정작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데, ‘학벌 프리미엄’은 능력주의를 향한 열망을 키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벌주의와 대입 경쟁을 능력주의라는 틀에 한정해선 안 된다는 접근도 있다. 서구의 능력주의가 후천적인 노력에 대한 평가를 보정하거나 능력이 변화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반면, 한국의 학벌주의는 한 번의 시험으로 너무나 많은 기회와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다. 조 작가는 말했다. “학벌주의는 능력주의와는 또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벌을 가진 이들이 일도 잘하고 취업도 잘하고 사회적 관계도 잘 맺는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일종의 ‘우생학적인 낙인찍기’예요.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서로 밀고 끌어주는 연고주의에 기반한 개념입니다.”

 

▶▶대치동 학원가 간판에 불이 켜져 있다.
▶▶대치동 학원가 간판에 불이 켜져 있다.

 

능력주의가 세련된 방식의 근대적인 지배 원리라면, 학벌주의는 원시적으로 작동하는 전근대적인 지배 원리라고 조 작가는 말한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능력주의를 욕망하는 건 능력주의가 진짜 대안이 될 거라고 믿어서가 아닙니다. 이건 ‘능력의 공정한 평가를 가로막는 학벌주의라는 집단주의적 폭력과 우생학적 주홍글씨를 없애 달라’는 비명으로 봐야 합니다. 이들의 욕망을 뒤로하고 단순히 능력주의가 잘못됐다고 말하면 젊은 세대는 현실 인식 자체를 부정당하는 동시에 학벌주의를 함께 비판하고 논의할 공간이 좁아지게 됩니다.”

대치동에서 학벌주의를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다시 ‘욕망’으로 돌아가 보자. 학벌주의 비판은 교육 문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판단과 욕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학벌주의가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대입에 몰두한다. 대치동의 높은 교육열은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는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를 위해 노력하고 성취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다. 대치동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조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이들의 욕망이 항상 옳은 건 아닙니다. 편향된 이데올로기나 오류를 동반한 신념에 의해 촉발된 욕망일 수 있죠. 하지만 이런 욕망을 들여다봐야 현실적인 변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대치동은 학벌을 향한 우리 사회의 욕망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합니다.”

 

▶▶1995년과 2014년 대치동 내 학원의 분포. 출처: 2017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대치동 사교육 1번지’
▶▶1995년과 2014년 대치동 내 학원의 분포. 출처: 2017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대치동 사교육 1번지’

 

■ 불평등, 욕망에 냉정해야 하는 이유

대치동의 교육열은 부동산 문제와 엮여 있다. 학부모들이 대치동에 모이는 이유는 이곳이 학원가와 명문 학군이 모인 ‘사교육 1번지’여서다. 이들은 세분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원가를 따라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대치동에서 13년간 중개사로 일해 온 좋은공인중개사사무소 이상수 대표는 “전‧월세의 경우 주거지가 학원가와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집값이 결정된다”며 “겨울방학 전에 학군 배정을 받기 위해 원래 살던 집에 세를 놓고 대치동 일대에 전세로 입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치동 집값이 들썩이면 전국 집값이 술렁인다. 교육열로 부상한 대치동이 전국의 집값을 이끄는 셈이다.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2021 한국도시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구의 14%가 매년 이사를 한다. 한 해에 710만 명이 이삿짐을 싸고 푼다. 대치동에 모이는 사람들이 이 수치를 견인한다고 조 작가는 말했다. “2000년대 이후 대치동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100배에서 190배가량 수익을 올렸다는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가령 경기도 외곽에 있는 자가에 전세를 두고 대치동에 전세로 들어왔는데, 집값이 오르니 다시 자가 전세가를 올려요. 이때 대치동에 입주한 사람들은 20년 전과 똑같은 구조로 시세 차익을 남기고, 전국은 부동산 투기로 번지는 연쇄 작용이 발생하는 겁니다.”

 

▶▶대치동 아파트 세대 수의 증가 추세 및 순증감 세대 수. 출처: 2017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대치동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아파트 세대 수의 증가 추세 및 순증감 세대 수. 출처: 2017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대치동 사교육 1번지’

 

학벌 프리미엄이 막강한 사회에서 절제되지 않은 욕망은 불평등 문제와 맞물려 돌아간다. 채 편집위원장은 “학벌주의는 차별과 불평등을 확산시키는 병폐 현상으로 나타난다”며 “이는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라는 표현이 드러내듯 사람을 등급 매기고 이에 따라 사회적 인정을 선택적으로 부여하는 혐오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학벌주의와 함께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 작가는 말했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차별을 경험합니다. 임금이 잘 오르지도 않고 상여금도 없습니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고요. 이들이 차별적인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벌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학벌주의 자체가 차별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개개인에게 과도한 교육열과 학벌주의의 책임을 따져 묻기란 어렵다. 다만 그 개별적인 욕망이 절제되지 않고 타인을 돌아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추구된다면 합의된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학벌주의 비판은 욕망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차갑게 직시하는 과정을 동반한다. 엄 팀장은 말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왜 학벌주의를 추구하게 됐는지, 왜 그런 욕망을 가지게 됐는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정도는 함께 짚어보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 생각합니다.”

 

■ 새로운 교육 모델은 가능하다

‘중요한 시험 사회’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욕망을 갖고 있다.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경쟁의 한복판에서 원하는 지위와 권한을 얻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희소한 자원을 얻기 위한 통로는 너무나도 좁다. 이때 시험이 ‘병목’ 역할을 한다. 병목을 통과해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대치동은 시험 하나로 생애주기가 결정 난다는 감각을 공유하는, ‘병목사회’의 축소판이다. 학벌주의는 이러한 병목을 강화한다. 조 작가는 “학위나 학벌 없이도 얻을 수 있는 사회적인 지위나 좋은 일자리의 범위가 넓어져야 하는데, 학벌주의가 강력하게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병목을 통과할 수 있는 기회를 공정하게 달라’는 요구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어떠한 입시제도도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이상적인 입시제도가 설계되고 시행되더라도, 과도한 교육열이 존재하는 한 제도적 빈틈을 찾아 학벌을 얻기 위한 모두의 고군분투기가 펼쳐진다.

 

▶▶밤늦게 학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밤늦게 학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제도 중심의 해법이 학벌주의를 완화하지 못한다면 교육의 내용을 바꾸는 데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학생들의 고유하고 다원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을 모색해보자는 주문이다. 엄 팀장은 “과거보다 사회가 훨씬 복잡해졌음에도 중고등학교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교육의 이름으로 다양한 교육적 가치를 가시화하려는 실천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개인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해소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부산대 교육학과 BK21 박지원 연구원은 말했다. 그는 “교육의 본질을 되물으려면 교육열, 학벌주의, 능력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이기심으로 여기거나 섣불리 비난하지 않고 이 욕망에 담긴 배움과 성장에 대한 근원적 욕구를 읽어내야 한다”며 “좋은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교육적 욕망에 잠재된 긍정적 힘을 끌어내는 게 공교육의 역할”이라 덧붙였다.

조 작가는 “다양한 사회의 모습에 걸맞게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수준별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더 다양한 학생들을 뽑을 수 있도록 입시 자체가 다양해져야 하고, 공교육이라는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사교육의 상담 인력과 정보 공유 시스템을 흡수하는 게 공교육 개혁의 포인트가 돼야 한다”고 짚었다.

교육의 목적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교육 개혁을 위해 설계한 내용이 본래 의도와 다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채 편집위원장은 “교육 과정을 바꾸거나 정시와 수시 간 비율을 조절해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시험으로 취득한 등급과 자격이 특정 개인의 배타적인 소유권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교육의 기본권, 교육의 공공성 자체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로를 밟고 올라서는 교육이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채워줄 수 있는 교육의 의미가 회복돼야 한다고 시민단체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연혜원 상임활동가는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교육이라 하면 ‘입시제도’를 떠올리지 ‘배움’ 자체를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수능을 비롯한 시험은 뒤를 돌아볼 수 없는 달리기 같은 건데, 이러한 경쟁을 토대로 사회 전반의 많은 요소들을 평가하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데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의 현재와 그 중심부의 욕망을 상징하는 대치동 위에서 우리는 교육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대치동을 파고들면 들수록 ‘교육의 가치’라는 굵직한 줄기가 드러난다. 엄 팀장은 말했다. “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욕망의 흐름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교육이 이제는 필요해요. 동시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 살 수 있을지 다양하게 생각해보는, ‘비판과 상상이 함께 이뤄지는 교육’을 고민해야 합니다.”

 

글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사진 안영채 기자
2021240262@yonsei.ac.kr

<자료사진 2017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대치동 사교육 1번지', https://museum.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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