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과 공실 뒤, 우리 도시에 남겨진 흉을 메우려면

어느 때보다 신촌 상권에 지난한 한기가 돈다. 지난 2020년 1월 신촌 상권에 겨울이 찾아온 뒤, 봄은 오지 않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해 발길이 끊긴 탓이다. 2022년 2월, 신촌 거리에는 임대 표지가 즐비하다. 무엇이 이 거리를 공허하게 만들었나.

 

▶▶ 신촌 지역 소상공인은  ▲코로나 19로 인해 감소한 매출 ▲높은 임대료 ▲임차인 보호책의 부재로 상권에서 내몰리고 있다.
▶▶ 신촌 지역 소상공인은 ▲코로나 19로 인해 감소한 매출 ▲높은 임대료 ▲임차인 보호책의 부재로 상권에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임대 표지, 젠트리피케이션

 

상인들은 2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가 야속하다. 지난 2021년 5월 우리신문에서 신촌 상권의 위기를 보도했을 때보다 나아진 것은 없다. <관련기사 1872호 1면 ‘코로나19와의 1년, 신촌 상권은 여전히 힘겹다’> 신촌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집합 금지와 영업시간 제한이 계속되니 매출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돼지고기 전문점 ‘고향’을 운영하는 이만형(53)씨도 “코로나19 기간 계속해서 매출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잦아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울분을 일부의 불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매출 통계 수치는 상권의 위기를 드러낸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서비스’(아래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신촌동 호프-간이주점의 평균 매출은 코로나19 발발 이전인 지난 2019년 4분기 약 5천400만 원에서 2021년 3분기 약 1천400만 원까지 하락했다. 화장품 소매점 또한 2019년 4분기 약 6천400만 원에서 2021년 3분기 기준 약 1천400만 원까지 하락했다. 

1년 넘게 붙어있는 ‘임대’ 표지 역시 상권의 위기를 보여준다. 상권에서 나가는 사람은 있지만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3분기 신촌 상권에서 폐업한 점포는 148곳에 달한다. 한국부동산원에서 고지하는 ‘상업용부동산임대동향’(아래 임대동향)에 따르면 신촌 지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19년 4분기 0%에서 2021년 4분기 16.21%를 기록했다. 동일 기간 서울시 평균 공실률은 6.69%로 신촌의 공실률과 비교했을 때 약 10%p 낮다. 오랫동안 빈 점포가 늘어나며 신촌 상권은 어느 때보다 드센 위기를 겪고 있다.

신촌이 ‘젊은 공간’이라는 특색을 잃었을 때부터 위기가 시작됐다. 신촌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A씨는 “신촌은 사람들이 더이상 주도적으로 찾는 공간이 아니기에 유입되는 인구가 적지만 ‘대학가’라는 특성 덕분에 고정 인구를 확보하며 유지돼왔다”며 “코로나19의 유행으로 (고정 인구인) 대학생이 줄어들자 폐업하는 가게가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촌 지역 문화예술 웹진 「잔치」 이찬희 에디터는 “신촌 상권에서의 체험이 단조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개성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신촌과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꼽힌다.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저소득층 주거지에 새로운 중상위 소득 계층이 유입되며 높은 주거비 수준을 형성하고, 지역 구성원과 주거환경이 새로운 계층에 의해 변해가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신촌은 상업형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던 곳이다. 지난 2016년 서울연구원에서 발행한 『서울도시연구』 제17권 제4호의 「상업용도 변화 측면에서 본 서울시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속도 연구」는 ‘상업형 젠트리피케이션은 근린의 소상점들이 고급 레스토랑이나 부티크로 변하는 현상’을 의미하며 ‘임대료와 방문객의 증가 등을 통해 지역성을 변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신촌은 지금도 젠트리피케이션과 씨름 중일까. 국토연구원 최명식 부연구위원은 “신촌은 지난 2015년까지를 정점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미 발생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이에 젠트리피케이션 너머 소상공인의 ‘내몰림’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균관대 글로벌리더학부 김상태 교수는 “임차인의 권리와 생존권에 대한 충분한 보호조치가 부족해 임차인이 부당하게 일터와 생계의 기반에서 쫓겨나는 일이 발생한다”며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상권 내몰림’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버티고
못 버티면 망한다

 

내몰림의 핵심은 임대료에 있다. 최 부연구위원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지역의 부동산 지가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자본이 몰리며 다시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고, 더 큰 규모의 업체들이 공간을 점령한다”고 말했다. 

내몰리는 소상공인 대부분이 임대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임차인인 탓이다. 지난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발표한 「2020년 소상공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사업장 점유는 임차 형태가 약 80%다. 매달 월세를 지불하는 임차 상인 또한 69.1%로 전체의 2/3 이상을 차지한다. 북부연구센터 이정훈 선임연구위원은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임차료가 상승했다고 영업장을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공간에 뿌리내린 고객 간의 관계, 브랜드 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공실률에도 한번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승한 임대료는 여전하다. 임대동향의 ‘임대료 평균 수치’에 따르면 신촌 지역 중대형 상가의 경우 지난 2019년 4분기와 2021년 4분기 모두 약 5만 7천 원/m2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규모 상가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 약 3만 9천 원/m2에서 2021년 4분기 약 5만 2천 원/m2로 상승세를 보였다. A씨는 “건물주는 굳이 임대료를 낮추지 않고 공실을 유지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 허자연 부연구위원 또한 “애초에 원하는 수익률에 임대료를 맞추는 건물주도 있다”고 덧붙였다. 

누구도 쉽사리 높은 임대료에 반기를 들지 않고, 들 수도 없다. 신촌에서 퓨전 일식집을 운영하는 이권승(56)씨는 “거리두기 정책의 시행으로 임차인의 영업할 권리는 제한받지만, 임대인의 재산권은 제한받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착한 임대인’ 세액공제 정책 등, 정부에서 진행한 임대 관련 지원책은 효력이 없었다”며 “올해 우리 가게의 경우 임차료가 올랐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상가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이해관계를 갖는 공간이기에 임차인의 적절한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재산권을 우선시하는 관행과 인식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임차인의 권리가 부당하게 무시돼온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감소한 매출, 높은 임대료, 부족한 보호가 얽혀 위기를 심화한다. 당면한 위기를 버티지 못했을 때 유일한 출구는 ‘폐업’이다. 이권승씨는 “최근 임차료가 많이 밀렸다”고 말했다. 이만형씨도 “임차료를 내기 위해 낮 시간대에 가게 업무를 대신해 일용직 현장에 다닌다”며 “오전 4시에 일어나서 온종일 일하고, 오후 6시쯤 가게에 와 일을 돕고 나면 너무나도 지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버티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다”며 “항상 장사를 그만둘까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씨는 “자본금이 부족한 사람들은 권리금을 포기하면서라도 장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촌에서 ‘대명꼬기’를 운영 중인 김인숙(61)씨 또한 “본인 상가가 아니기에 임차료를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가게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지금, 신촌은 자본이 있는 자들만 버티는 공간으로 변했다. 

 

고달픈 겨울 버티고
모두의 봄이 오려면

 

▶▶ 신촌 상권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신촌의 지역성 확보 ▲공정한 분배 ▲토지의 공공성 복기 등의 해결책이 제시된다.
▶▶ 신촌 상권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신촌의 지역성 확보 ▲공정한 분배 ▲토지의 공공성 복기 등의 해결책이 제시된다.

 

장밋빛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까. 신촌 상권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신촌만의 ‘지역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상황에 가장 핵심적인 대안은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라며 “아이디어를 가진 소상공인이 도시에 진입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지역 재생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인, 주민, 상가 소유자 등 관련 이해관계자 모두가 성과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이기웅 교수 역시 “지역성은 목적이 아닌 자연스러운 지역 생활의 결과로서 구축돼야 한다”며 “상업적 목적에서 접근할 경우 대기업이 진입하는 등 젠트리피케이션이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성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임대와 임차의 구조를 바라볼 때, ‘공정한 분배’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이 교수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비대칭성이 너무 크다”며 “갑의 부당한 요구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는 을은 부당함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에 보호 수단으로 상권 내 임차인의 권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 교수는 “임차인 권리 강화는 임차인들의 생존권을 보호함과 동시에 안정적인 영업활동을 보장하므로 상권 활성화에 더욱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임차인 보호를 위해 지난 2018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아래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했다.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차인은 원할 시 10년간 상가임대차의 존속 기간을 보호받을 수 있다. 해당 법안은 2020년도에 추가 개정을 거치며 ‘코로나19 등 제1급 감염병에 의한 경제 사정의 변동’ 조항을 추가해 임차인이 월세 감액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했다, 

아직 법안의 실질적인 효력은 부족하다. 허 부연구위원은 “실제로 법이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다”며 “법안 개정 후에도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리거나 계약을 종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가임대차의 존속 기간 실현과 임대료 상승은 연관된다”며 “법안 준수 과정을 감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임대차 관행과 문화를 바꾸지 않는 이상 임차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임대차보호법은 완결되지 않는 하나의 과정”이라며 “계약 갱신권의 궁극적 폐지, 계약갱신요구 거부 사유의 정비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역성을 회복하려면 토지의 공공성을 복기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 자산화 모델’을 제시한다. 지역 자산화란 지역의 자산을 공유자산으로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칭한다. 최 부연구위원은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방안과 사례」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이후 대책으로 ‘시민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지역 자산을 소유해 주민이나 상인이 쫓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꼽았다. 지역 자산화에 관해 이 선임연구원은 “정부와 공동체가 자산을 형성한 후 상가자산을 공유하는 방법과 당사자의 범위를 임대인과 임차인만이 아닌 공동체와 상권 고객까지 넓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동체가 토지를 소유한다는 개념이 형성돼야 올바른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지대추구를 위한 사적 소유 너머, 모두의 상생을 꾀할 수 있는 재산권 인식에 주목해야 한다. 김 교수는 “상권을 공유지로 인식하고 서로 협력하게 될 때 지속 가능한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며 “상가 건물이라는 재산권은 공동의 공간에서 가치가 있으며, 주변 교통이나 시설 등 공공투자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산권’을 절대시하는 관점에서 ‘생존권’과 ‘공동체의 정의’를 고려하는 관점으로 변해야 진정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 또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공유재의 원칙에 근거해 토지 소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며 “토지의 공공성에 관한 폭넓은 교육과 사회운동을 통한 인식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라는 먹구름이 걷히고 난 뒤 신촌의 풍경은 어떨까. 신촌이 예전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선 누군가 비자발적으로 밀려나는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민주적인 도시 공간을 위해, 민주적인 사고와 상생을 상상한다.

 

글 박경민 기자
lightmiin@yonsei.ac.kr

최준성 기자
jschoi0609@yonsei.ac.kr

사진 서예원 기자
harry214yw@yonsei.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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