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주 교수(우리대학교 문과대학)
유현주 교수(우리대학교 문과대학)

 

새 학기가 시작됐다. 새로운 학기를 맞아 춘추도 새로운 기자들을 맞이했고, 새로운 편집부가 꾸려졌으며, 편집인을 포함해 새로운 주간 선생님들도 여기에 합류하게 됐다.

요즘 세대에게 예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 됐지만, 춘추와 새로 인연을 맺게 되는 선생님들은 먼저 자신의 춘추시대를 떠올리면서 첫인사를 하고는 한다. 춘추는 그만큼 강렬하게 학생이라는 정체성과 가장 많이 결부돼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학생의, 학생을 위한 학생언론. 그런 의미에서 춘추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게 자동으로 소환되는 몇 가지 예전 기억들을 언급하면서 이 칼럼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른 아침 길고 분주한 신촌 거리를 벗어나, 마치 다른 세상으로의 입구 같던 교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신문 종이. 그리고 여기에서 나던 진한 잉크 냄새. 접혀져 일부만 보이는 강렬한 고딕체의 헤드라인. 무엇보다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가능한 학생언론이 있는 학교의 일원이라는 새삼 벅찬 기분 같은 것들 말이다.

한참 세상을 관찰하며 가치관을 키워나가던 바로 그때 춘추가 있었다. 우리는 말하자면 모두 춘추키드였다. 운이 좋게도 봉준호 감독이 그렸던 만평 <연돌이와 세순이>를 직접 보았던 세대였다. 지금은 전설로 구전되는, 대학 내 퀴어 커뮤니티의 존재를 국내 최초로 알렸던 <컴 투게더> 광고도 실시간 보았던 세대이기도 했다. 춘추는 격변하던 시대에 함께 고민하고 또 함께 성장했던, 마치 선배이자 동기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우리는 춘추와 함께 시대의 여러 변화를 목격했다. 대학 내 우세했던 크고 견고한 정치 담론들이 여러 가지 색의 문화 담론으로 다채롭게 분화되어 유연하게 흘러가게 된 것을 보았다. 또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길을 찾아 나가면서, 소외된 여러 존재에 대한 관심과 지속가능한 환경 및 삶에 대한 모색이라는 새로운 주제들이 계속해서 발굴되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동안 대학언론은 스스로도 격변하는 환경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대량 인쇄물에서 전자적 네트워크로 사회의 주도 매체가 변화했고, 그에 따라 대학 내 공론의 장도 다변화됐다. 제작 환경이 급격히 바뀌고, 기사의 전달과 수용도 이전의 전통적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게 됐다. 여기에서 또한 지난 2년이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 상황에서 학교의 거의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졌고, 춘추의 지면도 물성을 가진 종이로는 독자들에게 도달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위기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된다. 비대면 제작과정이나 전달 및 수용에 있어서의 온라인 전환은 어떤 면에서는 기존의 방식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는 새로운 경험이 축적됐다.

지금의 춘추는 물론 종이 신문으로도 발행되지만 동시에 모든 기사는 인터넷 홈페이지(chunchu.yonsei.ac.kr)를 통해서도 제공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 계정을 오픈하고 팔로어를 받고 있으며, 학내 포털인 런어스(LearnUs)와도 협업하는 등 플랫폼의 다각화도 시도하고 있다. 기사 형식에 있어서도 인포그래픽스나 카드뉴스 등 시각자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포맷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에 크게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춘추는 자신의 길을 계속 찾아가고 있다. 많은 과제가 남아 있지만, 현재라는 잔해가 폐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미래로 향해 가는 새로운 가능성의 기회가 돼 줄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이 종이신문을 펼쳐 들고 있을지, 아니면 크고 작은 모니터 창 너머 이 글을 읽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춘추의 독자로서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시대를 함께 관찰하며 함께 성장할 당신을 기다린다.

 

천사는 미래를 등지고 있지만, 폭풍은 천사를 간단없이 미래의 방향으로 떠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앞에서 잔해의 더미들은 하늘까지 솟구쳐 쌓인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폭풍이다.”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테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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