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고찰하다

직업군 앞에 청년이라는 단어가 붙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청년예술인은 그중 하나다. 청년예술인이 누구며,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기에 특별히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청년예술인,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가요?

 

청년예술인이 하나의 행정적 용어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진 맥락과 맞닿아 있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서른두 살의 나이에 생활고로 사망한 사건은 국내 예술계 종사자가 처한 열악한 환경을 가시화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정책기획팀 김수진 대리는 최씨의 사망 이후 예술인들이 기본적인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예술인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같은 해 11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됐다. 본 법안의 제정은 예술의 사회공공재적 가치를 국가적으로 인정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예술이라는 한 직업군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복지 증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이후 2015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전국 규모의 예술인 실태조사를 3년마다 실시하고 있다.

한편 예술인 가운데 청년층을 지원 대상으로 내세우게 된 것은 2010년대 후반으로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서울시는 포럼과 설문조사를 실시해 청년예술인의 창작 환경과 경제적 실태를 파악했다. 이후 2017년에는 서울청년예술단사업을 통해 청년예술단체에 지역 연계 활동 기회를 주선하고 사업비를 지원했다. 이외 지자체에서도 청년문화예술에 관한 정의와 내용을 조례에 포함하며 청년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 경기도와 부산, 제주, 대전, 대구를 포함한 국내 지자체 산하 문화재단에서 청년예술인의 창작지원·일자리창출·생태계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청년예술인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예술계 내부의 고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에서 청년예술인이 소외되는 양상이 이어지기도 한다.

 

생계와 창작을 위한 청년예술의 현주소

 

청년예술인 처우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이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연관이 깊다. 예술은 타 직업군에 비해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으며 개인별 소득 격차가 심하다. 명지대 예술학부 김시형 교수는 오롯이 예술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2017연극in의 설문에 따르면 연극인 875명의 연간 평균 총수입은 약 1319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 통계에 제시된 20대 직장인의 평균 연봉이 3천만 원에 가까운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문체부의 2015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발간한 한국예술경영학회의 논문 예술인의 소득 지위와 격차에 따르면 예술 직군 내의 소득 격차가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큰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연령에 따라 총소득 수준을 비교했을 때 35세 미만 예술인의 총소득이 1929만 원으로 가장 열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대학의 특수한 문제도 청년예술인의 교육환경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예술대학은 청년예술인을 양성하는 주요 교육기관이다. 지난 2019년 실시된 서울시 청년예술인 정책방향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67%가 예술대학을 졸업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많은 청년예술인은 예술대학을 거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기술적 훈련에 집중돼 있어 현장과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예술대학생네트워크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17개 주요 예술대학 내 현장형 수업 비율의 평균은 10%를 넘지 못했다. 예술 프로덕션 기업 ‘YD STATION’의 대표이자 가수로 활동 중인 이동훈(30)씨는 타 단과대학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창업하고, 원하는 기업에서의 근무 기회를 갖도록 지원하는 것에 비해 예술대학의 진로교육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서원대 문화예술교육센터 홍혜전 센터장은 예술적 완성도는 테크닉만으로 뒷받침될 수 없다학내 커리큘럼의 다양성이 보완돼야 청년예술인을 양성하기 위한 양질의 교육이 이뤄질 것이다라고 전했다.

높은 등록금도 예술대학의 문제로 꼽힌다. 지난 2017년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국 4년제 일반대학 187개교의 등록금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예체능 계열 등록금이 인문·사회 계열보다 183만 원 정도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경희대 작곡과 김민성(24)씨는 연습실의 수가 부족하고,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돼 있다며 시설 이용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열악한 시설과 교육과정에 비해 등록금이 높은 수준에 산정된다는 지적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열악한 교육환경은 주체적인 창작 활동 기회의 축소로 이어진다. 청년예술인은 주체적인 창작 활동의 기회를 필요로 한다. 자신만의 개성과 색깔을 발굴하고 유지하는 것은 예술 생태계에서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청년예술인의 주체적 창작 활동 여부는 추후 본인의 예술 작품의 질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다. 김 교수는 예술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가 사람들과 얼마나 공유될 수 있고, 작업 과정에서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예술평론가 김정현(37)씨는 창작 및 발표 경험이 부족한 청년예술인에게 결과물의 완성도나 성과에 대한 부담에 앞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청년예술인을 둘러싼 물음표,
예술의 역할을 논의할 때

 

청년예술인의 창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예술을 둘러싼 쟁점을 가시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청년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 예술문화 정책을 국가 정체성과 직결되는 것으로 전통적으로 국가의 영광과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예술인 복지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왔다. 1990년대부터 자리 잡아 온 엥테르미탕(intermittent)’ 제도는 예술 활동 기간을 고용 상태로 간주한다. 예술계 종사자들은 작품이 끝난 이후 일반 근로자처럼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예술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예술인의 노동자성에 대한 논의도 최근에 들어서야 활발해졌다. 지난 811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통과돼 오는 20229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김 대리는 최근 10년간 예술인복지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돼왔다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를 보장하는 발걸음으로서 의의를 갖는다고 전했다. 이러한 변화를 시작으로 청년예술인의 역할이 활발히 논의돼야 한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합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들은 예술인의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는 데 있어 이들의 역할을 인지하고 특수성을 살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청년예술인의 창작 환경과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숙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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