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인 지원 제도를 살펴보다

지난 2011, 단편 영화 격정, 소나타의 연출가인 고() 최고은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32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촉망받던 청년예술인의 사망을 계기로 예술인도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퍼졌고,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청년예술인을 위한 제도는 제대로 마련돼 있을까.

 

청년예술인 지원 제도의 현주소

 

청년예술인이 안정적으로 첫발을 내딛기 위해선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예술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지원은 청년예술인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예술인 복지법상 예술인으로 인정받으려면 특정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인 복지법시행령의 제21·2항은 공표된 저작물이 있거나 예술 활동으로 얻은 소득이 있는 사람을 예술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력이 부족한 청년예술인은 예술인 복지법이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각종 실태조사 및 지원 제도에서 배제된다. 결국 가장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하는 청년예술인이 법의 사각지대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레지던시에서도 경력이 부족한 청년예술인이 배제되며, 주체적인 활동 기회가 보장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레지던시는 예술인의 창작 여건 활성화를 위해 작업 공간을 지원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창동 레지던시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분포돼있다. 그러나 레지던시 역시 입주 과정에서 활동 경력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경력이 부족한 청년예술인은 해당 사업의 주요 수혜자가 되기 어렵다. 또한 다수의 레지던시가 작업 공간을 지원하는 대가로 레지던시 차원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에 기관이 기획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지원 대상자 명단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레지던시의 지원을 받으며 주체적인 예술 활동을 이어가기가 어려운 셈이다. 지난 2016년 청년허브 연구공모사업에서 진행된 예술인 지원의 사각지대 극복을 위한 대안적 창작공간 공급모델 연구에서는 레지던시가 소득이 불안정하고 작업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예술인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기보다는, 경력이 있는 중견 예술인을 유치해 공간을 제공하는 대가로 해당 기관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권리 보장을 위해 서면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한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 또한 청년예술인에게 또 하나의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그간 예술인들은 비정기적인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에 용역계약을 통해 고용됐다. 이에 근로계약을 기반으로 고용된 근로자와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웠다. 지난 202012월부터 시행된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는 서면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해 예술인들의 안정적인 노동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서면 계약서 작성이 쉽지 않다. 다양한 문화 분야를 연결해 예술인의 공론을 형성하는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의 정문식 상임이사는 청년예술인에게 계약서 작성 요구는 어쩌면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프로젝트 참여 기회가 많지 않은 청년예술인에게 근로 계약서 작성은 여전히 복잡하고 낯선 행정절차로 다가온다.

 

예술계가 변화해야, 청년예술인의 삶이 바뀝니다

 

청년예술인이 예술인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촘촘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나아가 청년예술인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예술계 전반의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특히 권력형 성폭력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 지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연예술분야 성인지 인권환경 실태조사 보고서 및 대응매뉴얼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자 중 선배 예술가의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교수나 강사의 비율이 두 번째로 높았다. 예술계의 미투 운동을 통해 권력형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지난 9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됐다. 예술인권리보장법에는 성평등한 예술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내용이 포함돼있어 청년예술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는 예술 표현의 자유 보장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의 보호와 증진 예술인 권리구제 기구 설치 구제 및 시정조치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예술계 전반의 상황 개선을 통해 청년예술인이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에 대한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긍정적 움직임이 확산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2015년에 발표된 청년 예술가 일자리 조사·연구 사업에 따르면, 3년 이내에 대학을 졸업한 청년예술인 619명 중 66.2%가 예술인 지원 제도를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현재도 관련 정책의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술계 대학에 재학 중인 김민성(24)씨와 이하린(25)씨는 모두 예술인 고용보험과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고 대표 또한 좋은 지원 정책이나 제도가 있어도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예술계의 발전을 위해 지원 사업의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 상임이사는 사업의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원 사업이 점점 더 정교하게 설계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원 사업이 고도화될수록 심사를 포함한 각종 절차가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창작 활동의 방향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고 대표는 정부가 진행하는 사업은 제약 조건이 상대적으로 많아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민간단체에 사업을 이양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단기적인 공적 지원을 축소하고, 민간 분야에서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정 상임이사는 공적 지원금이나 지원 사업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제약이 적은 환경에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지역 음악 업계가 음악 문화를 이끄는 것처럼 미술이나 다른 예술 분야도 민간단체가 각 분야의 문화를 이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단체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청년예술인들이 민간 분야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청년예술인은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이는 개인의 창작 활동에 제약을 걸 뿐만 아니라, 모두가 더 나은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제한한다. 앞으로 예술계를 이끌어 나갈 청년예술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제도 개선과 함께 예술계 전반의 총체적인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글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이승연 기자
maple081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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