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관객을 이어주는 독립 큐레이터 조주리를 만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는가. ‘전시는 난해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많지만, 비단 작품에 담긴 특별한 의미에 감탄하는 것만이 전시를 즐기는 방법은 아니다. 동시대 작가들과 교류하며 현대 시각예술을 다루는 독립 큐레이터 조주리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독립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조주리다. 현대 미술과 동시대 작가들의 시각문화를 주로 전시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때에 따라 전시기획뿐만 아니라 시각문화 연구와 비평을 겸하기도 한다.

 

Q. 독립 큐레이터는 어떤 일을 하는가.

A. 큐레이터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학술 연구와 기획 실무가 큐레이터 업무의 주된 두 축이다. 대다수의 큐레이터는 미술사와 동시대 문화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한다. 최근에는 연구자보다 기획 실무자로서의 역량이 더 강조되는 추세다.

독립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특정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채 프리랜서로서 전시를 기획한다. 늘 혼자서 전시의 모든 영역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전시를 기획하는 데 있어 개인의 관심사가 우선순위기는 하나, 외부 프로젝트와 협업하는 경우도 많다.

 

Q. 독립 큐레이터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뚜렷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연, 타고난 성격, 국내 미술 시장의 불안한 고용 환경 모두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10여 년 전 회사에 다니다 프리랜서로 일하겠다는 다짐으로 퇴사했다. 사실 10년 가까이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할 생각은 없었지만, 운 좋게도 꾸준한 일거리와 정책적 지원 덕에 일을 계속하게 됐다. 전시기획뿐 아니라 연구, 출판, 작가와의 협업 등 여러 일을 경험하는 과정이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에 프리랜서로 독립해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작업하기를 택하게 됐다.

 

Q. 어떤 과정을 통해 전시가 완성되는가.

A. 전시의 성격에 따라 준비 과정이 달라지기에 뚜렷한 정답은 없다. 예컨대 살아있는 작가의 개인전과 돌아가신 분의 회고전을 준비하는 방식이 다르고, 지역성을 강조해야 하는 전시와 국제적 경향성을 강조해야 하는 국제 비엔날레를 위해 필요한 조사 내용도 각각 다르다. 같은 성격의 전시더라도 누가 기획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나는 관심 분야나 과거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공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경험으로 발전시킨다. 이 과정에서 함께 전시를 준비하는 큐레이터, 작가, 기관 등과 수많은 소통을 거치게 된다. 갈등하는 지점도 많다. 그렇기에 전시 기획은 전시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예산과 소통의 한계 속에서도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Q. 전시 방법론을 다루는 기획을 진행했다. 방법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첫 전시부터 가장 최근의 전시까지 그간 해온 모든 작업이 방법론에 관한 일종의 자문자답 과정이라 설명할 수 있다. 전시는 왜 해야 하는 것인가. 관람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가. 관성적인 전시 방식의 변화는 유의미한 변화일까. 그간 기획해온 전시들의 표면적인 주제는 각기 달랐지만, 그 기저에는 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던 셈이다.

 

Q. 한국과 대만의 근현대사를 조명한 전시 동백꽃 밀푀유를 진행했다. 어떤 전시였고,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A. 동백꽃 밀푀유식민과 제국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여러 가지 심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전시다. 한국과 대만의 근현대사를 담아낸 작품들을 주로 소개했다. 화려하지만 손쉽게 휘발되는 전시가 아닌, 종합적인 지식생산 프로그램으로서의 전시가 될 수 있도록 무던히 애를 썼다. 두 해에 걸친 준비 과정이 유달리 쉽지 않았고, 개최 가능성도 불투명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관객들의 호응이 좋았다. 전시의 내용, 기획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뿌듯함, 그 속에서 얻을 수 있었던 배움 모두 기억에 남는다.

 

Q. 작가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풍이 달라지듯 독립 큐레이터도 전시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기리라 생각한다. 과거와 지금 본인의 큐레이팅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A. 모든 것에 대해 전반적인 확신이 옅어지고 있다. 예술의 무용함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 10년은 이전에 축적해왔던 경험을 모방하고 회의하며 해체해보는 시간이었다. 나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 분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과정이 즐거웠고, 좋은 성과도 따라왔다. 지금은 일종의 리셋의 시기인 듯하다. 전시기획에 대한 강박과 고민을 덜어내고 일상을 풍요롭게 꾸려갈 방법에 대해서도 자주 고민한다.

지난 2020년에 큐레토리얼* 페스티벌을 진행하며 기획행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우수성과 독자성이 뛰어난 기획이 인정받는 경우는 많지만, 어떤 면에서 차별화된 작업인지 규명하려면 미세한 변별점을 찾아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러한 정교한 판단을 요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보다 직관적이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획을 하고 싶다.

 

Q. 큐레이터로서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관객에게 어떻게 들려주고자 하는가.

A. 대중의 폭이 너무나 넓기 때문에 관객의 특성을 하나로 정의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예술이라는 새로운 언어에 관심을 갖고 다가오시는 분들을 먼저 맞이하려 한다. 전시는 난해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전시문화를 즐기는 관람객이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다. 행사가 끝나면 전시의 물리적인 형태는 사라지지만, 관객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오랫동안 남는다. 작업의 창작자인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전시 이전과 이후의 작업을 폭넓게 살펴보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큐레이터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Q. 관객들이 전시를 더욱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한다면.

A. 막연히 미술이나 전시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시장의 형태 자체가 다변화되고 있기에 전시는 단순히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텍스트와 공간 디자인, 음성 등 다양한 요소들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전시장이다. 본인의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전시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저 이색적인 경험에 머물러도 좋고, 그러한 경험이 여러 번 쌓여 본인의 삶에 유의미한 순간으로 남아도 좋다.

 

한 시간여 만에 관람을 마치곤 했던 전시의 뒤편에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오랜 고민과 소통의 과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전시장에 방문하게 된다면 사물과 공간 너머의 요소에 귀 기울여 보자.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이야기를 새롭게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큐레토리얼: 미술관의 학예연구 조직이나 학예연구사에 관한 모든 것을 통칭하는 형용사. 현대미술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며 대두된 담론이다.

 

 

글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사진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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