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섭 교수(우리대학교 교육과학대학)
장원섭 교수(우리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 샐린저(J. D. Salinger), 『호밀밭의 파수꾼』 중 

 

편집인을 맡아 지면으로 발간하는 연세춘추(아래 춘추) 마지막 호다. 지난 2년간 매주 마음졸이며 학생기자들이 써온 기사를 검토하고 신문을 만드는 일도 이제 끝이다. 드디어 주말이 주말다워지겠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벅찬 보람의 시간이었다. 나는 편집인으로서 ‘호밀밭의 파수꾼’ 노릇을 하고자 했다. 대학언론의 희망을 지키고 싶었다.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학생기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돌봐야 했다.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가 터졌다. 개강이 미뤄지고 비대면 수업이 이뤄졌다. 춘추도 어쩔 수 없이 비대면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신문의 발간 부수를 더 줄였다. 그래도 애써 취재하고 정성껏 쓴 기사를 전해야 했기에, 신입생 웰컴기프트에 춘추를 끼워 넣었고, 뉴스레터를 제작해 학내 전 구성원에게 이메일로 발송했다. 발간은 계속했지만, 기자들과 직접 만날 시간과 기회가 부족했던 게 무척 아쉬웠다. 지난 2년간 기자임명식, 발간 세미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행사를 취소했고, 매주 제작 작업도 2/3 정도를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그럼에도, 학생기자들은 재미는 포기하고 일만 해야 하는 비대면 취재와 제작을 잘 해냈다. 그 경험이 쌓여 앞으로는 대면과 비대면의 방식을 섞어 더욱 전향적으로 신문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재정난의 위기 속에 언론사 운영을 책임져야 했다. 대학언론사는 2013년 자율경비 선택납부 이후 재정적 어려움을 이어왔다. 10년 전에 비해 1/4에 불과한 재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쩌면 지난 2년 동안은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로 인해 활동이 적어져 자연스럽게 재정문제가 해소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지난 10여 년 동안 긴축에 긴축을 더하며 취재비 등을 절약해왔기 때문이다. 학생기자를 위한 장학금도 너무 적었다. 수고를 아끼지 않고 열정을 다 바치는 학생들을 지켜보며 매우 안타까웠다. 이제는 학교의 관심과 지원으로 재정난이 어느 정도 숨통을 틔었고, 장학금도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 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 재정문제 협의 과정에서 총장님을 비롯해 대학본부의 학생언론에 대한 깊은 애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너무 돈 걱정하지 말고 맘껏 취재하기 바란다. 

가장 중요하게는, 자유언론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했다. 나는 늘 시의성, 정확성, 균형성을 잊지 말도록 당부했다. 기자들이 잘 해냈지만, 학생기자의 한계로 인해 아주 가끔 아슬아슬한 기사도 있었다. 특히 학내 문제를 다룬 기사들은 매주 나를 조마조마하게 했다. 학생기자는 정론직필의 기사를 쓰고 편집할 권리를 갖는 기자인 동시에, 선생이 가르치고 보호해야 할 학생이기도 했다. 나는 학생들이 쓴 기사를 일일이 검토하며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의견을 줬다. 기자의 권리를 침해하려는 게 아니라 학생을 돌보려는 것이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건 물론이고 뛰다 넘어져 무릎이라도 상할까 염려했다. 나를 검열자가 아니라 더 신뢰성 있는 글쓰기를 돕는 선생으로 따른다고 믿기에 더욱 큰 책임감을 느꼈다.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진심이 통해 인간적인 신뢰를 쌓았다는 생각에 기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게 2년을 보내면서 나는 대학언론의 희망을 봤다. 춘추는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외된 소수자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했다. 새로운 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디지털 시대에도 대응하고 있다. 나는 춘추에서 젊은 정보와 감각을 얻었을 뿐 아니라 건강하고 당당한 글에 감탄하기도 했다. 

춘추는 우리대학교의 건설적 감시자이기도 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일지도 모른다. 교수님과 직원 선생님, 학생회가 아무리 애써 일하더라도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언론으로서 문제를 지적해 긴장시키는 것만으로도 학교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기자들도 그런 보람과 사명감으로 밤새워 기사를 쓴다. 그럼에도 늘 진퇴양난이다. 자칫 성심껏 봉사하는 학내 구성원을 좌절시키거나 연세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렇게 아슬아슬한 가운데 신문을 냈다. 때론 불안하고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기사 하나하나에 끝까지 스스로 책임지는 수고와 어려운 순간에도 현명하게 대처하는 걸 보며 학생들이 참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오래 전부터 대학언론의 위기라고들 말한다. 지난 86년간 ‘그대 가는 길이 역사’였듯, 나는 춘추가 앞으로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리라 확신한다. 나는 학생기자들이 서로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매우 민주적이면서도 철저히 훈련하는데 새삼 놀랐다. 무엇보다, 이 시대에 건전하게 고민하고 열정을 다해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참으로 건강한 청춘들을 볼 수 있었다. 나의 희망의 근거는 바로 이런 우리 학생기자들에 있다. 

백낙준, 최현배, 원일한, 김동길, 김형석, 남기심, 김우식... 소박한 액자 속에서 역대 편집인의 이름을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나 무거운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지난 2년간 ‘호밀밭의 파수꾼’ 역할에 힘들었지만, 파수꾼도 호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함께 무척 즐거웠다. 춘추에 고맙고, 밝은 앞날을 기대한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고, 여러분과 함께 머물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사정과 어떤 은밀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일과 여러분의 즐거움에 동참했습니다.” - 괴테(J. W. von Goethe),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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