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주인공이 존재하기는 할까? 가끔 의미 없이 이런 질문을 던져볼 때가 있다. 질문에 뒤따르는 답은 ‘알 수 없다’다. 싱겁기도 한 의문의 결말에서 내가 내린 또 다른 결론은 주인공을 알 수는 없지만, 주인공으로 생각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우리 사회가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사고를 용납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무력하고 파편화된 사회는 날로 분열해, 갈등을 거듭한 끝에 자신이 속하지 않은 모든 집단을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붕괴된 대학사회 역시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감이 형성되었던 학생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같은 학부생이라도 성별, 지역, 계층 등에 따라 심지어는 입학 유형에 따라 상대를 공격하고 비난하려 한다. 이렇게 파편화하고 날카로워진 개인들이 모여 건실한 유대감을 낸다는 것을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자연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방관할 수는 없다. 우리 역시 앞선 세대들이 그래왔듯, 사회를 만들고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학생사회라는 집단은 분명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세대라는 동시대적 집단과 같은 교육을 받는 기회의 집단의 교집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사회는 비록 그 연대감과 소속감의 정도는 각자 다를지라도, 마땅히 존속돼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그려나갈 사회를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함이자 우리의 시대를 다른 누군가의 조연으로 보내지 않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연세춘추」는 약해져 가는 소속감과 학생사회의 존재감을 일반 학생들에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연세춘추」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보다 널리 퍼뜨려줬으면 하는 점이다. 이 부탁이 학교 언론과 무슨 관련이 있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학생사회, 나아가 20대 우리대학교 학생의 시각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들과 당면한 이슈들을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주인공 의식을 고양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결국 나의 시각과 상황이 생각보다 중요함을, 내 입장이 충분히 반영돼야 할 당위성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때 「연세춘추」가 학생 개인에게 이러한 점을 꾸준히 일깨워준다면 앞서 언급한 세태들이 보다 완화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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