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선(국문/응통·19)
임종선(국문/응통·19)

 

정말이지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중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우리는 쉴 시간이 필요하며 생각보다는 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두 번째로 죽음 앞에 섰던 것은 2020년 10월 말. 학업 스트레스와 멈춰서지 못하는 고질적인 강박이 합쳐졌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 정체만 하는 나의 모습에 우울이 깊어졌고 이는 곧 극심한 공황으로 이어졌다. 하루에 두 번씩 꼭 공황을 겪었고, 매번 감정을 수습하는 데만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시험 기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때는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감당할 수 없었고, 죽음과 삶의 저울에서 삶이 훨씬 무겁게 매어졌었다. 자유, 자유가 필요했다. 자유의 방법으로 정말이지 어렵게 저울을 뒤집고는 살겠다는 선택을 했다. 억울했다. 이렇게 살아지는 대로 살다가 죽기에는 아까웠다. 한번쯤 살고 싶은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휴학을 했다. 말 그대로 생존 휴학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나를 조이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야만 했고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학교 상담센터에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부모님을 설득해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때 삶에서 휴식이 가진 큰 힘을 느꼈다.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 만나는 일도, 너무나도 즐겁게 해왔던 학업도 모두 놓아버리고. 처음으로 내가 진정 쉬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봤다. 뮤지컬을 보면서 눈물도 흘려봤고, 처음으로 혼자 호텔이라는 곳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어도 봤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평온한 삶을 약 1년간 살아남았다.

현재까지는 마지막으로 죽음 앞에 선 건 이번 2021년도 10월 초였다. 이유모를 일로 극심한 우울에 빠졌고 다 줄여놓았던 약을 4배로 늘렸다. 우울과 이런 신경증이 불치병으로 느껴졌고, 불치병 속에서 굳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신경정신의학적 용어로 재앙화라고 명명된 현상이었다.

다시 선택한 건 상담이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파악하면 살아야 할 가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건 나의 감각적인 능력이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 다른 사람들은 100프로로 겪는 경험을 나 혼자 150프로로 겪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루종일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내게 들어오니 피곤할 수밖에 없었고, 나를 돌볼 시간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돌보기 위해 해야할 일을 고민해보았다. 이번에 나의 돌파구가 돼준 것은 사진이다. 원래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고 싶었던 후지필름의 카메라를 마지막 남은 잔고를 털어 샀고, 사진 출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고 겪은 그 모든 정보와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진을 시작한 지 1달 만에 실력에 비해 많은 촬영 문의를 받기 시작했고 이로써 나는 내가 살 수 있는 가치를 찾아냈다. 내가 느낀 수많은 색채의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삶. 이것이 내가 진정 살고 싶었던 삶이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쉴 틈이 없도록 몰아가는 세상에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버티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겠지만. 이를 버텨낼 수 없다면, 죽음 앞에 설 만큼 고통스럽다면, 우리에겐 정말 일주일 아니 한 달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죽음 앞에 선다는 것이 결코 용기가 없는 일이 아니다. 누구보다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 만큼, 그 용기를 아주 조금만 틀어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 쉬면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쩌면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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