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 편집국장(철학/정외·18)
이현진 편집국장(철학/정외·18)

 

어릴 적 나는 지구를 구하고 싶었다. 계기는 우연히 본 텔레비전 뉴스였다. 2012년 언저리에 큰 운석이 지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소식이 귓속에 꽂혔다. 운석 충돌하니 머릿속에 인류 멸종, 지구 멸망, 이런 무시무시한 것들이 떠올랐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참혹한 장면들이. 더럭 겁이 난 나는 그날, 운석 충돌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습게도 나는 어머니가 구독해주신 어린이 과학 잡지도 맨 뒤쪽 십자말풀이만 풀고선 거들떠보지 않고 치워버리는 꼬마였다. 그러나 마음을 먹은 뒤 한동안은 잡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얼마간은. 이후 다른 아이들처럼 내 진로 희망도 숱하게 바뀌었다. 과학자를 거쳐 의료인, 외교관까지. 공통점 하나 보이지 않는 나열의 공통분모는, 나름의 사명이 담긴 결정이라는 데 있다. 내게 과학자와 의료인, 외교관은 우리나라와 인류, 나아가 지구를 구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운석 충돌로 지구 멸망을 앞두던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불공정, 청년 실업, 성차별 등. 어딜 봐도 암울한 미래를 점치는 단어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해가 갈수록 이런 것들이 귀에 밟힐 수밖에 없었다. 미래를 결정할 때 내 주된 척도였던 ‘가치’의 문제가 어느새 의식주 본위로 치환됐다는 걸 느꼈지만, 좌절할 겨를도 없었다. 삶은 나날이 얄팍해져 갔다. 이걸 재고 또 저걸 재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또 해야 할 일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만 바라고, 꿈꿨다.

우리신문사에 입사한 건 나름의 희망찬 도전이었다.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를 봤을 때, 희미해졌던 어린 날의 바람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꿈이. 비록 내게는 거대한 사회를 움직일 만한 힘이 없으리라 여겨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는 포기했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신문사에서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연세춘추에 입사한 뒤 2년 반을 머물렀다. 활동을 마무리할 때가 되니, 부기자 시절에 한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날은 홍대의 카페에서 취재원을 만났다. 인터뷰를 마칠 때가 돼 준비해둔 마지막 질문을 했다. “요즘 청년들은 새로운 시도를 두렵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대표님이 여러 도전을 하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때 취재원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역으로 남겼다.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나는 도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는 물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순간 당황한 나는 “그건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네요”하고 얼버무리며 인터뷰를 끝냈다.

간단한 질문에도 말문이 막힌 이유는 무엇일까. 도전이라는 단어를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왔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나는 그날의 짤막한 대화를 오래도록 묵묵히 되새겼다. 무언가를 놓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도전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줄곧 내 한계를 재기만 했지만, 이젠 멈추기로 했다. 그보다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도전하고 싶은지 고민했다.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이 읽고, 접했다. 읽은 글귀 중 유독 마음에 남은 구절이 있다. ‘나를 위해 쓰려고 하면 나 자신은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고.’ 『아침의 피아노』 40페이지의 문장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엉엉 울었다. 잊고 있던 지난날의 꿈들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과학자가 돼 지구 멸망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고 싶었고, 책에서 희귀 난치병으로 힘겨워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고는 혁신적인 치료법을 개발해 모든 질병을 없애는 의료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내 학점, 현실적인 역량 등 따위에 메여 ‘먹고살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게 가장 쉬울지만 고민하는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고민의 끝에 우리신문사에서 배운 것. 그것은 희망이다. 1년 반 동안 보도부에서, 남은 1학기는 편집국장으로서 수많은 학내외 삶의 현장들을 직접 그리고 간접적으로 보고, 들었다. 특히 내가 기자로 활동하던 때는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시기였지만, 어떤 역경에도 수많은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리고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숭고한 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지구를 구할 영웅이 될 운명은 타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 놓인 내 삶의 반경, 그 속 사람들을 보호할 만한 힘은 충분히 갈고 닦을 수 있지 않을까. 혼자가 어렵다면 나와 함께할 다른 사람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우리신문사에서 봤다. 희망으로 충만한 채 나는 연세춘추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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