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케어’하지 못하는 영케어러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돌보느라 발버둥 쳤던 청년. 그리고 제 아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사회의 무관심 속 방치되던 이들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호명되기 시작했다. 돌봄은 언제까지 가족만의 부담이어야 하나. 간병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영케어러(Young Carer·젊은 부양자)의 삶을 들여다봤다.

 

돌봄 의무를 저버린 아들
이들을 방치한 사회

 

지난 81323세 청년 A씨는 본인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20209월 뇌출혈로 쓰러져 몸 대부분이 마비된 아버지의 간병을 도맡았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 아버지와 둘이 지냈던 A씨는 돌봄 독박을 감내해야 했다. 삼촌이 병원비를 지원해줬지만, 비싼 치료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병원비 부담으로 A씨 아버지는 올해 4월 퇴원했고, 부자(父子)는 이후에도 생활고에 시달렸다. 집으로 내몰린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월세는 연체됐고 휴대전화와 도시가스도 끊겼다. 아버지는 혼자서 거동할 수 없었고, 호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음식 섭취가 불가능했다. 극심한 돌봄 부담을 견디지 못한 A씨는 51일부터 아버지에 물과 음식 제공을 중단했고, 결국 아버지는 58일 사망한 채 발견됐다. 신고자는 A씨 본인이었다.

A씨의 사연이 전해진 이후 선처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잇달았다. 지난 6일 오후 6시 기준 약 6천 명이 A씨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10일 재판부는 A씨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다. 존속살해 혐의가 아닌 유기치사* 혐의를 적용해달라는 A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어린 나이에 돌봄 부담을 홀로 떠안아 미숙한 판단을 저질렀다는 점에서는 감형의 여지가 있지만, 돌봄이 필요한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고의적인 살인이었다고 판단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한균 연구위원은 양형 과정에서 딱한 사정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고의적인 살인 의도가 있었기에 법적으로 이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간병 살인 사건은 돌봄이 가족의 몫으로 남아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전문가들은 아들 혼자서만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A씨 가족을 비극으로 내몰았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간병 문제가 살인범을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국가나 사회가 돌봄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대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이진숙 교수 역시 우리 사회에서 복지는 아직도 가족 책임주의원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족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지금의 돌봄 형태는 유지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선 존속살해 혐의판결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의 저자 윤이재 작가는 현재의 돌봄 형태는 혼인과 출산, 혈연 등으로 맺어진 정상 가족만이 감당할 수 있다가족과 개인에게 책임을 맡기는 지금의 돌봄 형태는 계속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석재은 교수는 법원은 A씨가 돌봄 의무를 다하지 않고 아버지를 방치했기 때문에 존속살해라는 판결을 내렸다이는 시대적인 변화의 흐름을 보수적으로 읽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족과 개인에게만 이러한 짐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그보다는 사태를 방치한 사회 공동체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돌봄으로 고통받는 현재
이중 부담으로 미뤄지는 미래

 

간병 살인 사건은 영케어러가 겪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케어러는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 등을 가진 가족을 돌보는 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들어 돌봄 부담을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개념 정립이나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문진영 교수는 우리나라 복지 제도엔 친족 부양 우선의 원칙을 따르는 유습**이 있다며 그 원인을 지적했다. 이어 부양 혹은 돌봄 부담을 가족에게 맡기고, 가족이 부담하지 못할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선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돌봄 부담을 짊어지는 과정에서 정작 본인 인생의 중요 과업들은 미뤄진다. 이 교수는 영케어러는 교육, 취업 준비 등의 생애주기 과업과 돌봄을 병행하는 이중 부담을 진다인적·사회적 자본을 취득하고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낙오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교육이 필요한 어린 나이에 가족의 돌봄을 책임진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며 이들은 나이에 맞는 사회화를 거치지 못해 자신의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말했다.

돌봄 과정에서 정신적·물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윤 작가는 취업준비생이던 지난 2017년부터 가족과 함께 인지저하증***에 걸린 할머니를 간호했다. 취업 전까지 주간병인으로서 할머니의 돌봄을 도맡았으며, 취업 이후에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간병은 계속됐다. 윤 작가는 간병은 어려움과 죄책감의 연속이었다며 인지저하증에 걸린 할머니가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물리적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과 체력이 간병에 쓰였다. 윤 작가는 요리, 설거지, 청소 등 가사노동부터 할머니를 씻기고 입히는 일, 무료한 일상을 대화로 채워드리는 일, 욕창에 걸리지 않도록 자세를 바꿔드리는 일 모두 돌봄에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프레임은 영케어러에게 족쇄로 작용한다. 문 교수는 효자·효녀 이데올로기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미담이지만, 개인에게는 매우 가혹하다가족 내 아동의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영케어러들에게 가족 돌봄을 전담시키는 것은 더욱 부당하다고 말했다. 석 교수 역시 자신을 효자·효녀가 아닌 한 명의 시민으로 대우해달라는 영케어러의 요구는 마땅하다고 전했다. 이어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돌보기 위해 본인의 권리와 과업을 미뤄둔 상황이라며 그러한 희생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돌봄은 가족의 몫?
돌봄은 사회의 몫

 

전문가들은 국가가 나서서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사회 전체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석 교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영케어러의 인생 부담은 결국 사회가 지게 된다당사자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김성호 교수는 사회가 돌봄을 방치하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나 돌봄이 필요한 사회가 됐다가족의 문제를 사회에 떠넘긴 것이 아니라 사회가 변화하며 생긴 결과라 덧붙였다. 문 교수 역시 개인의 돌봄 문제를 책임지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영케어러 논의는 돌봄 국가책임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돌봄 체계는 사회적 영역으로 들어왔다그 안에서 취약한 이들을 더 눈 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영케어러 등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을 논의해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영케어러들을 가족 돌봄으로부터 해방하고 이들에게 합당한 교육과 가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돌봄 수행자들은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고, 돌봄 수혜자들은 전문 케어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 역시 영케어러에 대한 지원 방안의 공론화가 절박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석 교수는 사회가 전적으로 영케어러 가족의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영케어러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해외의 사례를 참조하면서도 우리의 사정에 맞는 영케어러 지원책을 고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영국, 일본, 호주에서는 법적으로 영케어러를 지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르다급변하는 사회 구조를 고려해 선도적이고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지난 1029청소년복지 지원법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에 따라 영케어러를 가족돌봄청소년으로 명명해 개념을 법적으로 정립하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간병 살인 사건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도 메워야 한다. 의료법 시행규칙386항은 종합병원에는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진 자 중에서 환자의 갱생·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한 상담 및 지도 업무를 담당하는 요원을 1명 이상을 둔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종합병원이 아니었기에 의료사회복지사를 두는 것이 의무가 아니었다. 석 교수는 병원에 의료사회복지사가 배치되지 않아 A씨를 복지 제도와 연결해주지 못했다지역 보건소, 주민센터 등과 연락하거나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복지 제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석 교수는 복지 제도가 필요한 사람을 중심으로 잘 엮여있지 않아 이들이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역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돌봄을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하에 지역사회 통합 돌봄정책이 시행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복지 인프라가 부족하고 인프라 간 연결체계가 미흡해 아직 정책의 성과가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더욱 통합적인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복지 사각지대나 긴급 위기 가구에 대한 지원 제도를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복지 공무원의 재량권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문 교수는 일선 사회복지 공무원의 경우, 제도 규정을 해석하는 데 자율성이 거의 없다다종다양하게 나타나는 개인의 처지를 경직된 규정으로 묶어 운영하다 보니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복지 공무원에 상당한 수준의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 교수는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신뢰가 없었기에 비극이 발생했다“A씨는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돈을 꾸러 다녔을 뿐 공적 제도에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돌봄은 모두의 문제이기에 사회 전체가 연대와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돌봄으로 향하는 출발점이자 도착점에 연대가 있을 때 불평등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 국가가 언제든 손 내밀어 준다는 믿음과 함께 사회 구성원이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진다면 비로소 비극은 멈출 것이다.

 

*유기치사: 형법275조에 의거,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 의무가 있는 자가 도움이 필요한 자의 보호를 포기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

**유습: 잘못된 버릇이나 습관

***인지저하증: ‘바보, 또는 멍청한 정신 상태를 의미하는 치매의 대체 용어

****장기요양급여: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노인에게 제공되는 신체·가사활동 지원 및 간병 서비스, 혹은 이에 갈음하여 지급되는 현금

 

 

글 정효원 기자
remiwon@yonsei.ac.kr
여근호 기자 
khyeo1123@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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