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수 매거진부장(정외
이연수 매거진부장(정외·19)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2박 3일 일정의 통일 캠프에 참여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였으며, 통일이 주제였다. 어디서 주최했는지, 캠프에 참여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들과 보낼 3일에 들떠 흔쾌히 참가 신청을 했다. 조각난 기억을 모아보면, 디아스포라에 대해 강연을 들었던 것 같고, 평화를 주제로 벽화를 그렸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임진각으로 이동한 기억도 난다. 여러 활동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북한 이탈 주민과의 만남이다.

캠프에서의 모든 활동은 조별로 이뤄졌다. 북한 이탈 주민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한 조당 한 명의 북한 이탈 주민이 배정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조에 배정된 탈북민은 캠프 참가자들 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20대처럼 보였다. 어린 내 생각과 달리 외적으로 우리와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앉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자리가 익숙한 듯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로 탈북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활발한 소통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들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서브에서 끝나버린 탁구 경기의 관중석처럼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난 10월, 이주 배경 청년 기획을 취재하면서 탈북민 청년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청년 단체의 대표님을 만났다. 그는 북한 이탈 주민을 ‘개인’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적인 관계 맺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기 단체에서 기획했던 프로그램은 탈북민 청년과 함께 통일 관련 영화를 보거나, 해당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들이었다. 그러나 이에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제까지 통일, 북한만 얘기해야 하냐는 불만이었다. 호기심 어린 시선, 통일과 북한을 주제로만 소통하는 방식은 이들을 계속해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정체성에 머물게 했다. 이후 단체는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탈북이라는 주제에서 멀어져 함께 문화생활을 하며 일상을 공유했다.

다시 나의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으로 돌아가 보자. 무엇을 질문해야 했을까. 어쩌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상황과 강박이 대화를 가로막고 있었지 않나. 어디에 사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대학생이라면 어떤 공부를 하는지와 같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틀 속에서만 개인을 바라보니 원활한 교류가 이뤄질 수 없었다. 우리는 보다 더 자연스러운 소통의 기회가 필요하다.

독자는 기자의 시선에서 취재원을 마주한다. 기자의 유연한 시선으로부터 자연스러운 소통이 시작될 수 있다.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마친 후 나는 그동안 취재원들과 어떻게 소통해왔는지, 기사에서 이들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돌아보게 됐다. 기사의 주제가 명확히 있기에 취재원의 특정 정체성에만 집중하는 이야기가 오고 갈 수밖에 없었다. 소수자로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가시화하고 이에 따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기사 또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개인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는 기사를 통해 독자 또한 특정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소통을 이어갈 수 있다.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역할을 우리신문사가 했으면 한다. 『The Y』를 통해서 다양한 청년의 이야기가 공유될 수 있길 바란다. 이제는 동인이자 독자로서 기자들의 유연한 시선을 통해 다양한 개인들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하고,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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