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부터 거리를 누비는 신문 노동자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신문업계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신문 구독률이 떨어질 때 그 위기는 배달 현장과 각 지국으로 떠밀린다. 지난 18일 서대문구에 위치한 ㄱ신문 홍은지국을 찾았다. 사각지대에 놓인 배달원과 지국장과의 동행기를 전한다.

■ 배달원 정수만(62)씨

[AM 12:30] 신문을 정리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배달할 신문의 속지를 끼워 넣고 신문사별로 분류했다. 한동안 신문을 넘기는 소리만 흘렀다. 어떤 소음도 껴들 자리가 없었다. 신문을 배달하는 정수만(62)씨는 일할 채비를 시작했다. 모두가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케 하는 정교한 분업 속으로 스며들었다. 정씨의 업무는 남은 신문 더미를 창고에 분리해두는 일이다. 이윽고 정씨는 신문을 챙겨 나와 유모차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손수레에 담았다. 

 

▶▶정씨가 신문이 담긴 수레를 끌고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정씨가 신문이 담긴 수레를 끌고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AM 12:40] 정씨를 따라갔다. 지국에서 그는 도보로 신문을 배달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왜 바퀴 달린 것을 타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잠깐 멈칫했다가 대답을 시작했다. “약 20년 전에 오토바이로 배달하다가 큰 사고가 났어요. 음주운전 차량 뺑소니였어요. 오른쪽 다리가 무릎 밑으로 다 으스러졌어요. 발과 무릎에 철심을 박았는데 발은 뺐고요. 그래도 다니는 중이에요” 그럼에도 그는 잰걸음으로 다녔다. 잽싸진 않지만 한 걸음씩 발을 디뎠다. “힘들진 않아요. 운동하는 것 같아요” 가파른 비탈길을 빠르게 내려갔다. 왼손으로는 묵직한 수레를 끌었다. 신문이 가득 담긴 수레는 언제든 넘어질 모양새였다. 그는 무릎과 발목이 아프지 않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대부분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정씨는 신문 배달의 ‘달인’이다. 지난 1988년 「국민일보」 창간 때부터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햇수로 24년째다. 지금 일하는 지국에서는 20년쯤, “참 좋으신 분”이라는 지국장과 함께 일한다. 밤에 일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술 먹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밤 11시에 나와서 일을 시작해요. 낮에는 잠을 자서 햇빛을 보는 일이 거의 없어요”라 답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AM 12:45]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갈 때쯤, 첫 배달지가 나왔다. 굽이진 홍은동의 주택가는 무거운 손수레를 끌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배회해야 했다. 툭 튀어나온 블록을 지날 때 수레가 덜컹거렸다. 배달지 앞에 도착하자 그는 신중한 속도로 “이 집은 ㅎ신문”이라며 신문을 꺼냈다. 주택가의 배달은 공동현관 앞에 놓는 곳과 집 앞까지 올라가 직접 놓는 곳으로 나뉜다. 배달지가 3층이면 3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주택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일일이 계단을 밟아야 한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만큼은 잰걸음이 살짝 느려졌다. 

 

▶▶주택가의 우편함에 신문을 배달하는 모습
▶▶주택가의 우편함에 신문을 배달하는 모습

 

[AM 1:00] 연이어 주택가에 신문을 돌렸다. 주택가는 오토바이가 들어가기 힘든 곳이 많았다. 그곳에 정씨와 그의 수레가 함께 나섰다. 30분째 돌자 정씨는 더욱 분주해졌다. 골목길 구석구석을 헤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두운 건물 속, 비슷하게 어두운 거리, 엇비슷한 건물 사이로 뜸한 배달지를 찾아야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큰 지도가 있다고 한다. 가는 경로와 배달지의 정보를 모두 외워 정확히 배송한다. 

“비나 눈이 오면 힘들어요” 힘든 건 없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신문지가 젖기 때문이다. “대부분 신문사는 종이가 젖지 않게 비닐을 덮어줘요. 그런데 ㅈ신문은 눈비가 오는 날에도 비닐을 덮지 않고 신문을 보급해서 힘들어요”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보다 가장 그를 괴롭히는 것은 따가운 추위였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요”라는 말과 함께 얇은 패딩과 목장갑이 눈에 들어왔다. 

[AM 1:15] 대로변으로 나왔다. 홍제역 버스정류장 인근이었다. 그에게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상가 점포 밑에 신문을 끼워넣는 모습
▶▶상가 점포 밑에 신문을 끼워넣는 모습

 

대로변의 배달 방식은 주택과 다르다. 대개 상가의 점포에 배달이 몰린다. 그는 닫힌 문 밑에 신문을 하나씩, 섬세하게 꽂아 넣었다. 꽂아 넣을 때 구겨지지 않을까, 걱정이 묻은 손길이었다. 혹시나 구겨진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네”라며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1분쯤 걷다가 한 곳, 또 걷다가 한 곳, 큰길임에도 배달지는 적었다. 신문을 구독하는 곳은 대부분 낡은 점포들이었다. “여긴 바둑장. ㅈ신문 봐요” “여긴 노래방. ㄱ신문을 봐요” “여긴 세무법인인데 경제지를 봐요”라 말했다. 정씨는 어느 점포에서 어떤 신문을 구독하는지 꼬박 설명했다. 그가 바둑장에 신문을 넣으러 가는 동안 노래방의 소음이 들렸다. 

“여긴 순복음교회. 이 목사님 아세요?” 처음으로 정씨가 질문을 던졌다. 배달을 쉬는 일요일에 그는 교회에 간다. 이후에도 그는 교회에 신문을 놓을 때마다 목사님들을 이야기했다. 유난히 교회와 관련한 질문에 답할 때 힘이 실린 모습이었다. 젊었을 때 어떤 일이 가장 하고 싶었냐 묻자 그는 “선교지에 가서 다리 썩어들어 가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아프리카 이런 데 있잖아요. 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 아이들”이라 답을 남겼다. 세 문장을 듣고 나니 그의 빠른 걸음걸이가 눈에 밟혔다.

 

▶▶어두운 주택가 골목길. 정씨 홀로 신문을 배달하는 모습
▶▶어두운 주택가 골목길. 정씨 홀로 신문을 배달하는 모습

 

[AM 1:32] 대로변을 모두 돌았다. 서대문세무서를 지나쳐 골목길에 다시 들어왔다. 어느새 신문을 담은 수레는 반쯤 비어있었다. 서울의 골목길은 오히려 더 어둑했다. 때문일까, 갑자기 그가 넘어졌다. 주차 방지용 턱에 걸린 것이다. 동시에 손수레 옆에 쌓여 있던 10부 남짓한 신문이 힘없이 쏟아졌다. “이런 데 장애물이 있어 넘어져요” 그는 옅은 탄식과 함께 일어서자마자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한숨도 쉬지 않은 채 계속해서 신문을 전달했다. 여전히 걸음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 

[AM 1:47] 처음으로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구석에 수레를 세웠다. 10장 언저리의 신문을 골고루 챙겼다. 현관으로 들어가자 “16층 올라가야 하네”라 말하며 엘리베이터 탑승 버튼을 연거푸 눌렀다. 16층에 도착한 그는 꼭대기에서 한 층씩 내려오며 신문을 돌린다. 한 동을 돌자 7분이 지났다. 그의 이마에 땀이 살짝 서렸다. 

[AM 1:54] 다시 주택가를 돌았다. 새벽의 추위는 시퍼렇게 매서웠다. 그는 왜 계속 신문을 배달할까, 대화를 나눴다. “용돈이라도 벌려고 해요”라 답하며 얼마를 받으시냐는 질문에는 “지국장님이 주시는 대로”라 답했다. 이 돈으로 생활이 되냐는 질문에 “아니오”라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이전의 어떤 대답보다 선명한 목소리였다. 이어 “어머니 병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요”라 말했다. 결혼하지 않고 여동생과 함께 사는 상황에 병원비까지 나간다고 한다. 한동안 정적이 맴돌았다. 

 

▶▶말이 없는 정씨의 뒷모습. 정씨는 신문을 싣고 2차 배달을 나섰다.
▶▶말이 없는 정씨의 뒷모습. 정씨는 신문을 싣고 2차 배달을 나섰다.

 

[AM 2:10] 그는 “오늘은 ㅈ신문이 늦게 와서 다시 지국에 들러야 해요”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에게 ‘2차’는 지국에 다시 들러 신문을 챙겨 같은 코스를 도는 것이다. 이 일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한 달 정도 쉬려해요. 병원에 다녀야 해요. 감기가 심하게 들어서 약도 먹고 주사도 맞았는데 낫질 않아요”라 말했다. 지국으로 돌아가는 길, 먼저 오토바이를 타고 2차를 도는 지국장을 마주쳤다. 짧은 인사 후 서로 다시 갈 길을 향했다. 

[AM 2:21] 지국 앞 오르막길을 올랐다. 오르막길에는 궁전 같은 신축 아파트가 늘어져 있었다. 정씨는 원래 이 아파트의 터에 살았다. 그는 “재개발 때문에 포방터 시장 쪽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더욱 가팔라 보였다. 여전히 “눈이나 비가 오면 너무 미끄러워요”라며 신실히 걸음을 디뎠다. 

[AM 2:30] 지국에 도착했다. ‘1차’가 끝난 것이다. 그는 짤막하게 “감사해요”라 말했다. 이어 곧바로 배송할 신문을 정리했다. 지국장의 보이지 않는 손놀림과 다르게 정씨의 손놀림은 느렸다. 천천히, 정확히, 그러나 소홀하지 않게 한 장씩 신문을 포갰다. 그는 배달할 신문을 집고 다시 2차를 나섰다. 여전히 걸음걸이는 빨랐다. 

 

■ 지국장 정용헌(56)씨

홍제역 뒤편으로 이어진 아파트 상가. 자정이 되면 ㄱ신문 홍은지국의 불이 켜진다. 신문이 독자에게 배달되기 전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이다. 정용헌(56)씨는 이곳에서 20년간 지국장으로 일했다. 신문 배달로 시작해 업계에 몸담은 지 30년째다. 정씨가 3평 남짓한 지국의 조명을 밝히자 입구에 새겨진 ‘구독 신청’ 전화번호와 종합 일간지들이 눈에 띄었다. 정씨는 배달 차량의 시동을 걸어 내리막길을 빠르게 지나쳤다.

 

▶▶새벽 12시 30분. 정씨가 중간 지점에서 다른 지국의 신문 보급량을 받아오고 있다.
▶▶새벽 12시 30분. 정씨가 중간 지점에서 다른 지국의 신문 보급량을 받아오고 있다.

 

지난 18일 정씨와 동행한 새벽길은 시작부터 빠듯했다. ㄷ신문 보급 시간이 예정보다 다소 늦어진 탓이다. 새벽 12시 30분이 넘어갈 즈음 정씨는 중간 지점에서 다른 지국의 보급량을 대신 받아왔다. ㄷ신문을 실은 트럭 한 대가 도착하자 정씨는 차 뒷좌석부터 차례로 신문을 채워 넣었다. 수십 묶음의 신문 더미를 실은 차는 곧장 지국으로 향했다. 제시간에 신문을 배달하려면 지체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지국에는 매일 10종의 종합 일간지와 경제지가 들어온다. 신문이 준비되면 속지를 끼우는 작업이 이어진다. 정씨는 허리까지 쌓인 ㄷ신문을 하나씩 벌려 속지를 끼워 넣었다. 저울로 무게를 맞춘 뒤 띠지로 신문을 엮어 주변 아파트 단지로 보낼 신문 묶음을 만들었다. 지국에서 담당하는 구역은 홍은1동과 홍제2‧3동 일부다. 50~60대로 보이는 배달원 서너 명은 긴 책상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신문 더미를 오토바이 바구니에 포개 쌓았다.

 

▶▶신문 속지를 끼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정씨는 주변 아파트 단지로 보낼 신문 묶음을 만들었다.
▶▶신문 속지를 끼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정씨는 주변 아파트 단지로 보낼 신문 묶음을 만들었다.

 

“부수가 절반도 넘게 줄었지” 지국의 사정은 예전만 못하다. 정씨는 4~5천 부를 상회했던 배달 부수가 2000년대 들어 2천 부 정도로 꺾였다고 말했다. “(구독자의) 대부분이 기업보단 일반 가정집이니까. 이젠 뭉텅이로 들어가는 다부수도 거의 없거든”

부수가 줄어든 만큼 일하는 사람도 함께 줄었다. 정씨 혼자서 경리와 총무를 도맡고 있다. 수작업과 배달, 정리까지 모두 정씨의 손을 거치는 셈이다. “예전엔 배달도 안 하고 새벽에도 안 나왔는데 요즘은 상황이 너무 열악하니까…” 속지를 끼우는 작업은 30분가량 이어졌다. 차 뒷좌석에 배달할 신문 더미를 싣고 나니 새벽 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차 뒷자석에 쌓인 신문 더미. 정씨는 주차장 한구석에 신문 더미를 내려놓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차 뒷자석에 쌓인 신문 더미. 정씨는 주차장 한구석에 신문 더미를 내려놓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정씨의 신문 배달은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 땐 아파트 단지를 돌며 신문 배달 아주머니들에게 미리 만들어놓은 신문 묶음을 전달한다. 2차 땐 정씨가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마다 신문을 꽂아 넣는다. 첫 배달지인 홍은동 ㅂ아파트에 들어서는 정씨의 목소리가 이른 새벽의 침묵을 깼다. “안녕하세요, 신문이요!” 정씨는 배달하는 아주머니들이 보이자 차창을 내려 인사를 나눴다. 반가운 눈치였다. “웬일이에요” “오랜만에 얼굴 한 번 보려고(웃음)” 신문 배달은 새벽을 홀로 지새우는 ‘외로운’ 노동이다. “이게 참, 힘든 여정이야. 사람들과 단절될 수밖에 없거든” 정씨는 주차장 한구석에 신문 더미를 내려놓고 쉴 새 없이 다음 장소로 향했다.

정씨는 새벽 2시까지 아파트 단지 5곳을 옮겨 다녔다. 마지막 배달지인 홍제동 ㅇ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45분. 1천500세대 이상이 거주하는 대단지에 배달된 신문은 한 묶음에 그쳤다. “50세대 정도만 (신문을) 보는 셈이지. 옛날엔 10~30% 정도였는데 지금은 5%나 들어갈라나. 모든 신문이 마찬가지야. 저기는 한 종류뿐인데 난 심지어 여러 종류로 갖다 준 거거든” 정씨가 가리킨 출입문 옆에 놓인 ㅎ신문은 10부가 채 안 됐다. “우리가 나이 먹어가듯이 신문도 나이 먹어가는 거야”

그렇다고 지대(본사가 지국에 신문을 판매한 금액)가 부수에 비례해 줄어든 건 아니다. 정씨는 본사에 납부하는 지대가 부수의 감소세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구독이 줄어든 만큼 부수를 줄여줘야 우리도 먹고사는데, 본사가 줄어든 부수만큼 지대를 빼주진 않거든” 지국에서 관리하는 부수가 감소하더라도 본사에는 감소 전 부수에 해당하는 지대를 내야 하는 셈이다.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서대문구 ㄱ신문 홍은지국 전경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서대문구 ㄱ신문 홍은지국 전경

 

지대를 메우고자 배달비를 삭감할 수도 없다. 신문 배달비는 부수당 3천 원에서 많게는 6천 원이 책정되는 부수제 방식으로 지급된다. “구독 부수가 줄어든 만큼 (배달원) 월급을 줄이진 못하지. 그동안 함께 해 온 세월도 있고, 부수당 금액을 줄이면 더는 배달을 안 하실 테니…” 신문 판매는 지국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구독료 감소로 인한 어려움은 신문 산업을 지탱하는 이들의 궁핍함과 닿아 있다. “어쨌든 다들 살려고 발버둥 칠 거 아니에요. 하루아침에 딱 망해버리는 산업이 아니니까. 그렇게 버티다가 서서히 곪아가는 거지”

지대와 배달비, 사무실 관리비를 제하고 정씨에게 돌아오는 몫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씨가 오후 3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이유다. “내 인건비가 포함됐는데도 얼마나 남을지 가늠이 안 돼. 부담이 크니까 나가서 알바라도 하는 거지” 신문 산업은 더이상 주된 수입원이 아니다. 부업을 병행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지국장과 배달원은 대부분 50대가 넘는다. “신문 배달하시는 분들도 다 부업인 셈이지. 누가 새벽부터 나와서 30~40만 원 받으려고 일하겠어. 냉정하게 말하면 패잔병만 남은 거야. 배달도 안 구해지고, 지국을 그만두려 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거든”

정씨에겐 ‘주 5일 근무제’가 필요하다. “지대는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까. 우리도 좀 사람답게 살자 이거야” 주 5일 근무제는 주요 일간지의 ‘주 5일 발행’과 닿아 있다. 토요판이 발행되는 이상 토요일 밤에 퇴근해 일요일 밤에 출근하는 정씨의 스케줄이 바뀌긴 어렵다. “토요일에 쉬면 그나마 좀 버텨보겠는데 그것도 안 되고. 일하는 데 끝이 없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9 전국 신문지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국의 경영 개선 및 신문 구독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변화는 ‘주 5일 근무’(36.1%)와 ‘신문지대 현실화’(34.0%)였다.

 

▶▶정씨는 다시 오토바이에 신문을 싣고 아침 6시까지 2차 배달을 이어갔다.
▶▶정씨는 다시 오토바이에 신문을 싣고 아침 6시까지 2차 배달을 이어갔다.

 

배달을 마치고 지국으로 돌아가는 거리는 스산했다. 쓰레기 수거 차량이 내는 소음이 텅 빈 골목을 채웠다. 배달원들이 떠난 지국에 홀로 남은 정씨는 저울로 무게를 맞춘 신문을 띠지로 엮는 작업을 이어갔다. 패잔병이 살아남으려면 오늘자 신문을 제시간에 날라야 한다. “홍은1동 다시 배달하러 가야지. 2차 돌고 오면 아침 6시쯤 되거든” 다녀온 길을 되짚는 정씨의 오토바이가 새벽 2시를 가로질렀다.

 

글 박경민 기자
lightmiin@yonsei.ac.kr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사진 허유신 기자
yushin062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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