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우리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성채원(QRM/영문·20)

 

2021년의 말엽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기후변화만큼이나 시의성 짙은 의제는 드물다. 기후변화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기후변화의 위험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적다. 요지는 기후변화가 더는 막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악명 높은 온실가스다. 개중에 이산화탄소, 즉 탄소가 특히 문제시된다. 이 탄소를 절감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탄소중립이다. 많은 나라가 이미 탄소중립을 지향하고 있다. 요컨대 오스트리아는 오는 2022년 톤당 30유로씩의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에서 시작해 2025년에는 이를 55유로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해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근래 화두로 떠오른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본질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석탄 발전을 모두 중단,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의 국내 순 배출량을 0으로 하는 것을 목표한다. 언제까지? 정부에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제안한 2050탄소중립위원회(아래 탄중위)에 따르면 오는 2050년까지다. 어떻게? 탄중위의 제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화력발전을 중단해 순수한 배출을 최대한 감축하는 것이고 둘째는 화력발전과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 등의 신기술을 병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첫째 시나리오가 절감에는 더 효과적이다. 물론 많은 사람이 1안과 2안 모두 공통으로 현실성이 결여됐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현실성은 달리 말해 우리 모두의 이권이다. 지난 10월 30일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이 탄중위로부터 받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삶의 질이 낮아지더라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감수할 수 있다’는 답변은 15.4%에 그쳤다. 화력발전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 역시 묵과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이권을 고려하다 보면 지금 시점에서 기후위기가 필요로 하는 발 빠른 대응은 아무래도 요원해지게 된다. 지난 9월 11~12일 동안 진행된 ‘시민대토론회’에서 탄중위의 숙의 결과는 ‘탈석탄은 늦게, 탄소중립은 이르게’였다. 지극히 모순된 결론이다. 그런 명쾌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가능했다면 이미 기후위기는 과거의 일일지도 모른다.

탄중위에 참여한 시민 중 일부는 “교육 자료와 전문가 강연에서 현재 탄소중립 기술의 한계와 부작용을 다루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 탄중위 자체가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얕은수라는 것이다. 답은 물론 정해져 있다. 탄소중립 기술에 한계와 부작용이 있을지언정 탄소중립을 지향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물론 이는 각종 비판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관련 정책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여러 비판점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따른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더 나은 정책을 모색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도 각종 기술적 한계를 비롯하여 많은 맹점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보완의 과정이 마냥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현생인류의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이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담론이 급격하고 갑작스럽게 느껴진다면, 급격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주체가 누구인지를 한 번쯤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지난 세기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해운, 조선, 철강과 같은 중후장대 산업을 통해 국가의 발전을 도모해온 우리나라가 아닌가.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우리가 그만큼이나 오래도록 회피해온 공론이다. 이제는 이 과업을 마주할 때가 된 것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의 좌우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세를 탄 문장이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If not now, then when?) 이 말의 앞부분 역시 중요하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If not you, then who?) 이는 우리에게 다시금 경종을 울리는 무게감 있는 질문이다. 우리의 미래를, 21세기의 초반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지금까지는 지구가 우리를 지탱해왔고, 보듬어왔고, 대체할 수 없는 삶의 터전으로서 기능해왔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그를 지탱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그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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