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보도부장
이지훈 보도부장

 

 

기사는 여론의 글짓기다. 기사는 여론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동시에 여론을 전달하기도 한다. 기사만큼 여론에 민감한 글쓰기도 없다. 학내 사건을 기사화하는 보도부 기자로서, 어떤 사건을 기사화할지 결정하는 보도부 부장으로서 가능한 모든 여론을 놓치지 않고 살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모든 여론을 기사로 풀어낼 순 없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의견이라도 기사로 기록하긴 어려웠다.

지난 9월, 학내 커뮤니티를 달궜던 ‘여론’이 바로 그런 예였다. 당시 커뮤니티는 8월 30일 우리대학교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아래 학소위) 설립을 위한 중운위 TFT 요청의 안’으로 시끄러웠다. 커뮤니티 여론은 ‘학소위 설립을 위한 중운위 TFT 요청의 안’이 통과된 것에 날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시작 단계에 불과한, 아니 시작을 준비하는 학소위에 이토록 관심이 집중된 까닭은 학소위가 이젠 사라진 총여학생회(아래 총여)의 기억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학소위를 반대하는 사람 중 다수는 학소위가 소수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총여의 부활을 꾀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학소위·총여 일체론’이다. 뜨거웠던 여론을 기사로 옮기기 망설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령 학소위가 지난 2019년 학생총투표로 해산된 총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고 하더라도, 학소위의 설립목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기구를 반대한다는 의견엔 동의하긴 어려웠다. 

학소위 역시 의문부호가 붙는 지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학소위의 전문성 부족, 타 기관과의 업무 중복 등 학소위 설립에 반대하는 논리적인 의견도 있었다. 지난 10월 3차 임시확대운영위원회를 통해 사라진 기존의 성폭력 담당위원회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던 마당에 학소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소수자라는 명확하지 않은 보호대상에 관해서 권한의 범위는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따라서 커뮤니티에서도 이른바 ‘총여·학소위 일체론’이 아닌 소수자 권리를 보호할 기구로서 학소위의 실효성 또는 기구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면 어땠을지. 이 같은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졌다면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지 않았을까란 아쉬움이 든다.

다소 성급했던 여론전 이후 학소위 설립엔 분명히 제동이 걸렸다. 비대면 학기가 지속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학내외로 선거를 비롯한 각종 논쟁이 들이닥치는 지금, 논리적이고 건전한 논의의 필요성도 더불어 커지고 있다. 각자 기사를 작성한다는 마음으로 근거를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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