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용 공간 관련 논의를 살펴보다

여성전용 공간은 진통을 겪는 중이다. 여성의 안전을 부르짖는 외침과 역차별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여성전용 공간을 둘러싼 여러 맥락을 차례대로 짚어봤다.

 

 

잇따른 인권위 시정 조치,
여성전용의 위치를 돌아보다

 

지난 202011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충북 제천여성도서관(아래 여성도서관)에 남성 이용자가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여성도서관은 김학임씨가 기부한 부지에 제천시가 8억 원을 투입해 1994년에 설립한 여성전용 공공도서관이다. 제천시는 남성도 간접적으로 책을 빌릴 수 있으며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는 시립도서관 접근성이 여성도서관보다 떨어지며 남성은 도서관 내 시설 대부분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제천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여성도서관은 올해 71일부터 남성에게도 공식적으로 도서 대출 서비스를 허용했다.

인권위는 지난 2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행복주택(아래 행복주택)의 입주 기준도 성별에 따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행복주택은 여성 근로자 임대 아파트인 한마음임대아파트를 재건축한 것으로 청년 계층의 입주 신청 자격은 여성으로 제한됐다. 이후 안산도시공사는 2차 모집부터 성별 구분 없이 입주자를 모집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위 조치를 둘러싸고 여러 목소리가 오간다. 국가인권위원회법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등을 이유로 고용, 재화·용역·교통수단·상업시설·토지·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훈련과 관련해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지금까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의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규정에는 성별이라고만 명시돼있어 남성을 배제하는 것도 차별 요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는 이번 사안은 여성전용 공간이 합당하냐를 둘러싼 규범적 판단 너머의 영역이라며 다른 공공도서관의 존재 여부, 공공도서관 이용자 제한의 합리성, 남성이 도서관을 이용했을 때 여성의 안전에 해가 되는지 등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홍 교수는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특정 집단에 우선적인 혜택을 주는 데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심사해야 한다제천시와 안산도시공사가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성전용은 공공과 민간 차원에서 지속해서 추진돼왔다. 몇몇 지자체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여성친화도시정책의 일환으로 여성전용 정책을 추진했다. 지난 2007년 서울특별시는 여성을 보호하고 배려하자는 취지로 여성전용 주차장 건설을 의무화하는 등 여성이 행복한 도시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2년에 충북 청주시는 여성 안심 콜택시인 핑크 택시를 도입했다. 운전자의 신상, 실시간 이동 경로, 탑승·하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했다. 여성전용 고시원, 여성전용 헬스장 등 민간 영역에서도 다양한 시설이 운영된다. 대치동 인근 여성전용 헬스장을 이용했던 박윤주(언홍영·17)씨는 운동을 하다 보면 움직임이 많아 신체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았다“GX 등 여성이 선호하는 프로그램 위주로 돼 있는 점도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여성 안전부터 여성혐오까지,
여성전용을 둘러싼 논의

 

여성전용을 둘러싼 맥락은 복잡하지만, 여성전용 공간의 필요성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박씨는 여성전용 공간에서는 각종 범죄나 위협, 불편한 상황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양 교수 역시 여성의 안전은 여성전용 공간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여성은 오랫동안 구조적인 차별과 안전 문제로 고통받았다특정 집단을 위한 전용 공간 자체가 불필요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여성전용에 대한 반감은 여성혐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대구가톨릭대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재학생인 황선진씨는 여성혐오 사회현상과 여성정책과의 관계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에서 여성우대정책에 대해 양성평등과 모순되며 여성이 스스로를 약자로 칭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존재한다여성과 남성의 지위가 동등하다고 보는 경우 우대정책은 여성만이 혜택을 받는다는 인식을 준다고 분석했다. 또한 사람들이 여성전용 정책이 시행된 계기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이름에 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 정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전용이 기존의 성별 선입견을 고착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전용여성분리로 이어지거나, 여성을 배려우대의 대상으로만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청주 핑크 택시는 공공 교통수단에서의 여성 대상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두바이의 핑크 택시가 이슬람의 남녀유별가치관 아래에서 고안됐다는 점에서, ‘여성분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대 여성합동과정 석사과정을 수료한 고윤경씨는 여성전용공간에서 여성전용 공간의 패인은 여성우대정책이나 여성에 대한 에티켓의 맥락에서 소개되고 이해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여성이 맞닥뜨리는 적대적 환경은 고정관념과 범죄라며 보호 수단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여성이 직면하는 문제를 돌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성전용이 상업적 필요로 고안되거나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민간에서는 여성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성전용이라는 표지를 이용한다. 양 교수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소비자 유치라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여성전용 주차장을 마련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전용 고시원의 경우 제대로 된 보안 시설을 갖추지 않았을 때 오히려 범죄 위험은 높아진다. <관련기사 18299불안과의 동거, 여성 전용 고시원’>

 

평등한 공간 위에
주체로 서는 여성

 

인권위 조치가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홍 교수는 여성 정책에 대해 성찰해야 하는 시점이라면서도 여성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마저 부정하는 백래시(Backlash)*와는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관점에서 정책을 바라볼 때 취지에 맞는 운영 방법을 고안하고 적용 대상을 다변화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여성과 관련된 시설이나 도서를 배치해 남성을 배제하지 않고도 공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전용 정책 설계 과정에서 안전에 민감한 다른 집단을 포섭할 수 있다여성, 장애인, 아동을 동반한 사람 등에 적용되는 정책을 모색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여성전용 정책의 설계 과정에서 지속성과 유지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청주 핑크 택시는 도입된 지 6년이 지난 2018년 운영이 중단됐다. 운전기사의 잦은 이직, 시민콜·안심콜 등 다른 서비스와의 유사성, 즉각적인 이용의 어려움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정책을 운용하는 데 있어 세심한 관리 및 주의도 필요하다. 여성들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여성전용 공간을 마련한 만큼 철저한 보안 체계를 갖춰야 하지만, 민간이 운영하는 시설은 대부분 관리 체계가 부실하다. 고객의 특성을 살린 변화를 꾀할 필요도 있다. 박씨는 생리 기간 헬스장 이용을 일시 정지할 수 있게 하는 등 여성 고객에 맞춘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전용 공간이 배려우대를 넘어설 때 비로소 여성은 주체로 설 수 있다. 고씨는 여성전용공간에서 대학 내 여학생 휴게실에 주목한다. 고씨는 여학생 휴게실은 이들이 보호받고 배려받아야 한다는 서비스 차원에서 요구된 것이 아니라면서 이곳에서 여학생들은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성차별적 문화나 위협으로부터 위축되지 않고 자신들끼리 안전한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여학생과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점에서 임파워먼트(empowerment) 공간으로 정의된다고 주장했다. 이때 임파워먼트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사전적 의미가 아닌, ‘의식 고양, 역량 강화, 참여 및 통제력과 의사 결정력, 평등한 변화를 위한 행동등이 결합한 여성 임파워먼트. 고씨는 자치 규약을 마련해 여학생들이 공간의 주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공간 내 성평등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 교수는 며칠 전 서울의 한 법원을 방문했을 때 여성화장실의 대변기는 3개인데 반해 남성화장실의 소변기와 대변기는 각각 5, 2개였다법원이 법 위반과 성차별을 하고 있어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7조에 따르면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소변기 합보다 많아야 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의 경우 그 수치가 1.5배 이상이어야 한다. 양 교수는 남성화장실은 창문을 통해 환기가 잘 됐고 빛이 들어왔지만, 여성화장실은 건물 안쪽에 조그맣게 설치돼있었다이는 판사, 직원뿐 아니라 법원을 찾는 방문객 다수가 남성일 것이라는 성차별적 통념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치 특혜라도 주는 듯 여성전용 공간을 말하기 이전에, 기존의 남성 중심적 공간 배치와 구성을 개선하고 화장실 등 필수적인 공간에서부터 성평등을 성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전용은 여성을 위해 기능하고 있을까. 여성에 대한 시혜적인 접근과 여성전용을 바라보는 단편적인 시각은 공간 내 불평등 타파라는 여성전용 공간의 본질을 잊게 한다. 보호받는 여성이 아닌 주체로서의 여성을 위해, 평등한 공간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백래시(Backlash): 사회·정치적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

 
글 여근호 기자
khyeo1123@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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