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이후 여전히 박탈당한 몸들을 상상하다

여성에게 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애 경험으로 손쉽게 묶여 왔다. 이는 국가와 권력이 여성의 몸을 통제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남녀가 결합하는 정상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여성의 몸은 인구 재생산의 도구처럼 여겨졌다. 저마다 다른 몸의 경험을 획일화한 사회는 여성의 몸이 갖는 다양한 층위를 건드리지 못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성의 몸은 사회를 결속시키는 광장이 됐다. 지난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거리로 퍼져 나왔다. 강남역 살인사건 시위, 혜화역 불법 촬영 규탄 시위, 미투 운동, ‘낙태죄폐지 촉구로 이어진 운동과 연대는 여성의 개인사를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이라는 사회적 요구로 쏘아 올렸다. 취약하고 불안정한 여성의 사적 경험은 정치적 공론장의 토대가 됐다. 여성의 몸은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모토를 실천하는 장이었다.

여성의 몸을 이어 말하는 경험이 광장에 부쳐졌다고 해서 정의롭고 평등한 미래가 곧장 보장되는 건 아니다. 페미니즘 내부에도 다양한 몸과 언어가 존재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논의가 정체됐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모든 사회운동이 그러하듯 운동의 방향도, 투쟁의 전략도 다층적인 결을 살펴봐야 한다. 몸의 역사는 평등한 사회로 향하는 직선이라기보다는, 진일보의 순간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주목하는 곡선일지도 모른다.

 

▶▶지난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작가들은 ‘몸이 선언이 될 때’ 전(展)을 개최해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 ▲재생산권 ▲몸에 대한 관심을 예술로 기록하고 공유했다.
▶▶강라겸(왼쪽부터), 김화용, 전규리 작가는 ‘몸이 선언이 될 때’ 전(展)에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을 비롯한 몸의 역사를 예술로 기록했다. 세 작가는 ‘낙태죄’ 폐지 이후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상상하고 있다.

 

이러한 굴곡의 역사를 예술로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몸이 선언이 될 때(When the body becomes Manifesto)’ ()에 참여한 작가들은 지난 2019낙태죄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과 재생산권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모두 페미니즘에서 미끄러지는 장애 여성, 퀴어 여성, 비혼 여성의 역동성에 주목해야 낙태죄폐지 이후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었다. 세 작가가 몸을 선언하는 작업은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페미니즘의 구호를 실천하는 동시에, ‘누가’ ‘어떻게연결될 수 있는지 동시대에 질문을 던진다. 작가들의 작품을 경유해 시대, 젠더, 국경 너머로 확장되는 몸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전규리/작가영화감독
여성을 잇는 곳에 예술이 있다

 

▶▶ 전규리 작가‧영화감독
▶▶ 전규리 작가‧영화감독

 

세계 어디에 있어도 우리를 연결하는 무언가가 느껴졌어요전규리 작가는 뉴욕과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미술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지난 20194낙태죄처벌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전 작가는 서로 다른 국가에서 동료들이 비슷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 작가는 미국에서, 이길보라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강라겸 작가는 한국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었다. 서로 동떨어진 젊은 여성 작가들을 낯설게 연결하는 이음매는 몸이 선언이 될 때기획전의 마중물이 됐다.

전 작가는 1990년에 태어난 백말띠의 여성이다. 1990년은 사상 최악의 성비를 기록한 해다. ‘백말띠에 태어난 여아는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이 돈 탓에 선택적 여아 낙태가 암암리에 이뤄졌다. 전 작가는 아들로 오인된 덕에 운 좋게태어났지만 사회가 원하는 대로 태어나지는 않았다.

 

▶▶『다신, 태어나, 다시』, 단채널 영상, 컬러 흑백, 12분 38초, 2020
▶▶『다신, 태어나, 다시』, 단채널 영상, 컬러 흑백, 12분 38초, 2020

 

다신, 태어나, 다시(2020)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여성의 상태에 질문을 던지며 기획전의 시계열을 횡단한다. 12분가량의 다큐멘터리는 1930년 태어났다 일찍 죽은 여성, 1990년 선택적 여아 낙태로 태어나지 못한 여성, 2050년에 다시 태어난 여성의 일대기를 교차한다. 미래의 여성이 현재의 나에게 전하는 텔레파시 같은 거죠전 작가는 과거 개인의 몸에서 출발해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임신중지 역사를 비정상에서 정상의 범주로 확장해 나간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에요지난 101일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될 경우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일명 심장박동법이 발효됐다. 전 작가는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본인의 존재를 위협하는 상황임에도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가부장제를 활성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러니역시 예술을 통해 말하고 싶었어요

 

▶▶『산증인』, 단채널 영상, 컬러 흑백, 2021, '몸이 선언이 될 때' 제작지원 작품
▶▶『산증인』, 단채널 영상, 컬러 흑백, 2021, '몸이 선언이 될 때' 제작지원 작품

 

다신, 태어나, 다시가 여성의 연대기를 가로지른다면 산증인(2021)은 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전 작가는 사람의 트라우마가 DNA에 새겨져 대물림된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 몸의 역사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산증인1950년대 전쟁포로의 몸에 새겨진 문신의 폭력성을 다룬다. ‘주홍글씨의 역사는 반공 문구와 남한 국기를 강제로 새겨 몸의 선언을 강요했다. “남과 북,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으로 해석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어요. 당시에는 북한군 말고도 여성 포로나 남한 포로도 분명 있었거든요. 이런 존재들이 전시에 포함되면 더 많은 몸의 이야기로 논의가 확장되리라 생각했어요

 

강라겸/작가타투이스트
정치적인 예술, 예술적인 정치

 

▶▶ 강라겸 작가‧타투이스트
▶▶ 강라겸 작가‧타투이스트

 

페미니즘 여성 작가들의 계보가 뚝뚝 끊겨 있는 것 같아요한국에서 미술과 타투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강라겸 작가는 기획전에서 나름의 변화를 기대했다. “예술계 안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가거나 세대에 따라 분절되는 지점들을 이번 기회에 다시 연결해보고 싶었어요

강 작가는 종교와 신화에서 얻은 모티브를 신체로 옮겨 오는 작업을 좋아한다. ‘이라는 기독교적 상징을 이용해 선악과라는 욕망의 금기를 깰 때 찾아오는 예술적 쾌감에 주목하는 식이다. 지난 2019낙태죄헌법 불합치 결정 당시 합헌 의견을 낸 판사 두 명의 얼굴을 인화한 이미지에 뱀 여인이 선악과를 먹이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뱀 여인은 거리로 나와 행진하는 여성들을 상징해요. ‘낙태죄위헌 결정의 장면들을 종교의 극적인 연출로 풀어낸 거죠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 단채널 영상, 모니터, 사운드, 타투 시술 의자, 혼합 설치, 가변크기, 4분 15초, 2021, '몸이 선언이 될 때' 제작지원 작품(전시 전경 Ⓒ사진 현준영, 《몸이 선언이 될 때》 기획팀 제공)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 단채널 영상, 모니터, 사운드, 타투 시술 의자, 혼합 설치, 가변크기, 4분 15초, 2021, '몸이 선언이 될 때' 제작지원 작품(전시 전경 Ⓒ사진 현준영, 《몸이 선언이 될 때》 기획팀 제공)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2021)에 등장한 뱀 이미지는 인간의 새로운 탄생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뱀은 동반자를 의미해요. 영상에서 손으로 등장하는 애인이 제 몸의 뱀을 엮어서 교미하는 장면은 새로운 방식의 잉태와 섹스를 상상해보게 하죠모니터 속 강 작가는 퀴어 여성으로서 느끼는 재생산 욕망과 현실이 불일치하는 경험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상 속 작가와 같은 자세로 타투 시술 의자에 앉은 관객은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자이기도 하다. 그는 성소수자의 재생산권을 경유해 자연적 재생산이란 무엇인지 정치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상상을 실현하려면 결국 예술과 정치가 연결돼야 해요. 예술가가 조금 더 정치적으로, 정치가가 조금 더 예술적으로 변해야 하는 거죠

그럼에도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 정치적 공간에 고정되는 건 아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에게 최전방에서 마치 과녁판이 된 것처럼 힘듦을 감수하며 사회적 합의를 조율하고 집행하는 게 두렵진 않으냐고 질문한 적이 있어요강 작가는 과녁판이 되진 못하더라도 본인이 상상하는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선언이라 생각한다. 몸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과격한 이미지로 풀어내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그에겐 곧 예술이다.

강 작가는 이중적인 타투의 역사를 매개하는 타투이스트다. 타투는 몸을 폭력적으로 억압해 온 도구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한 도구다. 강 작가는 지난 2019년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진행된 단체전 끝없는 여지에서 국가폭력 역사를 타투로 신체에 기록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타투와 미술은 몸을 매개로 겹쳐져요. 타투이스트이자 작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우리가 사는 공간을 떠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 공간을 떠낸 이미지를 신체에 담겠다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까지가 제 역할이지 않을까요

 

김화용/작가기획자
교차성은 예술과 만난다

 

▶▶ 김화용 작가‧기획자
▶▶ 김화용 작가‧기획자

 

영페미의 끝물 세대랄까요김화용 작가는 20대 초반을 여성운동과 함께 보낸 윗세대 영페미니스트. 정치사회적인 형태로 예술을 풀어내는 미술가 그룹 옥인 콜렉티브의 멤버로 10년 넘게 활동했다. 페미니즘 문화 운동의 방식으로 예술 작업을 이어온 미술 작가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전규리, 강라겸, 이길보라 세 작가의 제안을 받아 이번 전시의 총괄기획을 맡았다. 그는 큐레이토리얼*이 강하지 않더라도 작가의 개별 작품들이 빛난다면 그 자체로 사회적인 발언이 될 수 있다젊은 작가들의 언어와 감각으로 전시를 함께 이끌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작가와 작품을 선별하는 큐레이터의 역할보다 낙태죄비범죄화 이후를 다른 작가들과 함께 소통하고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김 작가가 총괄기획을 맡은 이유는 다름 아닌 페미니즘이다. 그에게 페미니즘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뒤집히는 경험이었다.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를 장착하면서 개인을 한 가지 정체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세대론을 떠나 논의의 장이 넓어질 수 있겠다는 설렘을 느꼈다면서도 나름의 맥락이 있겠지만 생물학적 여성의 문제를 우선시하는 등의 상황은 페미니즘 내부에서 논의를 지속할 수 없게 하고, 오히려 재생산권과 같은 큰 담론에서 차별과 혐오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낙태죄폐지 이후의 세계는 여성의 몸만을 다루지 않는다. 김 작가가 벼려온 페미니즘적 감수성은 아직 만나지 못한 타자와 소수자의 경험을 상상하는 힘이 됐다. 그는 그동안 여성의 몸을 재단해 온 낙태죄를 폐지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성소수자와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비롯해 국가와 권력이 개인의 몸을 억압한 역사로까지 시선을 확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에서 퀴어 여성의 재생산 욕망이 왜 계속해서 거세되는지질문을 던지고, 산증인에서는 전쟁 포로의 몸에 문신을 새긴 역사를 추적해 오늘날까지 우리의 몸에 통제가 가해지는 맥락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각자의 몸의 경험을 단순히 합치는 차원이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김 작가는 넓은 의미의 교차성 페미니즘으로 젠더와 시대를 확장해 다양한 몸의 이야기가 맞물리는 과정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몸을 통제해 온 역사를 페미니즘적 태도로 다시 살펴보자는 거죠다양한 몸의 경험들이 교차해 자신들의 몫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 사회를 유연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준다고 그는 설명한다. “문화예술에 담긴 교차성을 항상 고민해요. 교차성이 예술적 상상력과 만나 조금 더 섬세하게 다뤄졌으면 하거든요

 

*큐레이토리얼(curatorial): 기획자가 미술작품의 맥락과 의미를 강화하고자 전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언어화하는 것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사진 허유신 기자
yushin0626@yonsei.ac.kr
<사진제공 몸이 선언이 될 때, https://thebodymanifesto.xyz
전규리 홈페이지, www.kyurije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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