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교수(우리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예병일 교수(우리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카네기멜론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랜디 포시 교수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지 13년이 지났다. 컴퓨터는 생존을 위해 겨우 적응해 가며 사용하고 있을 뿐 깊이 있는 지식은 전혀 없는 필자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마지막 강의때문이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많은 효소를 분비하는 췌장은 문제가 발생하면 이 효소가 췌장 자체를 소화해 녹여버릴 수 있으므로 빠른 시간에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또 위험을 감지할 신경도 발달해 있지 않으므로 이상이 발견되면 이미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진행된 후일 가능성이 크다. 위암이나 만성골수성백혈병의 경우 30여 년 전에는 치료가 아주 어려운 암에 포함됐지만 오늘날에는 어느 정도 치료 가능한 병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췌장암은 예나 지금이나 암 중에서도 가장 치료가 어려운 병의 하나다. 따라서 랜디 포시 교수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은 멀지 않은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많은 이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꿋꿋한 모습으로 마지막 강의를 했다. 그 내용은 인터넷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고, 같은 이름의 책으로도 발행됐다. 무슨 일이든 마지막임을 실감하면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의미를 부여하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뭔가 잊지 말고 간직해야겠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랜디 포시 교수가 필자에게 남겨 준 유산은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게 됐다는 점이다. 학생들을 만나 한 학기를 보낸 후 마지막 시간에 기억에 남을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평소 수업보다는 더 고민하며 그 시간을 준비하곤 한다. 지난 학기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한 이야기는 나의 대학 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 세 가지.

대학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일 첫 번째는 의사국가고시 합격통지서를 받은 것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의사면허증을 받아든 것이 아주 즐거웠던 친구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에게 가장 즐거운 일로 남은 이유는 대학 시절에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의사국가시험도 잘 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했고, 시험을 잘 친 동료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과정으로 의사면허증을 받아들었겠지만, 필자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겼구나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이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세상에서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의욕이 솟아올랐다. 이렇게 사소한(?) 일에 큰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지나간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는 희로애락이 모두 함께해야 희와 락의 크기가 더 커진다.

대학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일 두 번째는 동아리 공연을 마치고 청중들의 박수를 받은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악기를 잠시 다루기는 했지만 정해진 곡을 연주하기에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남들은 친구가 좋아서, 분위기가 좋아서 동아리 활동을 한다지만 내게는 오로지 멋진 공연을 하는 구성원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기보다) 빠지지 않고 연습에 참여했다. 아마추어 동아리인데 실력이 모자라더라도 참여만 열심히 하면 무대에서 내려가라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기대대로 공연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잘하지는 못했지만,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동료들의 능력에 의해 공연을 마치고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성취감을 느끼려면 조금 높은 목표를 정해 다른 일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그만큼 큰 성과를 얻으면 된다.

대학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일 세 번째는 대학 1학년 때 포항제철에 견학 가 34일 프로그램의 셋째 날 저녁에 열린 가든파티에 참석한 것이다. 즐겁게 사흘을 보낸 후 내일이면 모두 헤어져야 할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진 저녁 식사는 야외에서 바비큐를 즐기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사흘간 아주 친해진 사람들과 연락처를 메모하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재회를 기약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이 함께 하고, 주변 경치와 날씨까지 완벽했으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교수가 되었고, 가장 내 마음에 드는 학생들에게 나의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가든파티를 베풀어 준 것은 또 다른 큰 즐거움이 되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인생에서 수시로 바뀌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하고, 더 높은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성과물도 따라오게 된다. 매일 아침에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을 계속 만들어 가자. 세상은 넓고, 건강하기만 하면 기회는 수시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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