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깅 댄서 ‘유유밀란’ 김유정을 만나다

 

평소 알고 있던 춤과 다르다. 몸의 움직임이 만드는 각도와 조형성이 두드러진다. 이색적인 의상과 메이크업이 이목을 끌고, 무대 위 댄서의 모습은 모델이 취하는 포즈를 닮은 듯하다. 대중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조금씩 주목받고 있는 춤, ‘보깅을 추는 댄서 유유밀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유유밀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유정이다. 댄서이자 안무가이고, 댄스 에이전시의 대표를 맡고 있다. 순수무용과 보깅 댄스를 모두 추는 댄서다.

 

Q. 보깅이라는 장르와 보깅 댄스의 특징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A. 보깅은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포괄하는 하나의 문화다. 과거 성 소수자들이 볼룸이라는 공간에 모여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나 하고 싶은 일들을 표현하던 문화에서 파생됐다. 가령 대기업 임원이라는 주제가 주어지면 그에 맞는 의상을 입고 대기업 임원의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볼룸 안에서의 대회를 이라고 부른다. 보깅 댄스, 런웨이*, 페이스**를 포함한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다. 예컨대 페이스 카테고리의 참가자들은 피부, 헤어, 치아 상태 등 본인의 얼굴을 내세워 연기를 뽐내고 겨룬다.

보깅 댄스는 보깅 문화의 한 갈래로, 모델의 포즈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그렇기에 초기 보깅 댄스에서는 단순한 포즈와 깔끔한 몸 선이 부각됐다. 이를 올드웨이(Old Way)’라고 부른다. 이후 화려하고 추상적인 요소가 추가되거나 여성적인 면이 강조되며 뉴웨이(New Way)’보그펨(Vogue Femme)’이라는 새로운 장르들이 더해졌다.

 

Q. 어떻게 보깅 댄서의 길을 걷게 됐나.

A. 내가 춤을 시작한 시기는 보깅이 한국에 도입되기 전이었다. 당시에는 어렸기 때문에 현대무용을 배우면서 재즈댄스, 힙합과 왁킹 등 다양한 장르도 경험하며 내게 맞는 춤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보깅을 추천해줬고, 보깅의 요소를 안무에 조금씩 섞어 보면서 이 춤이 내 몸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래 익혀왔던 순수 현대무용과 새롭게 배우는 보깅을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아 학부 때부터 둘을 병행해왔고, 지금은 두 분야에서 모두 프로로 활동하고 있다.

 

Q. ‘유유밀란이라는 활동명을 지은 계기가 궁금하다.

A. ‘하우스란 차별받던 사람들끼리 같이 살며 의지하는 단체다. 지금의 크루와 비슷한 개념이다. 뉴욕의 메인스트림 하우스 오브 밀란의 제안을 받아 합류하게 됐다. 기존 활동명인 유유밀란을 합쳐 유유밀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Q. 댄서와 안무가 일을 어떻게 병행하고 있는가. 안무가로서 안무를 어떻게 창작하는지도 궁금하다.

A. 두 가지를 병행하려면 집중도를 조절해야 한다. 대학원 시절에는 젊은 안무가가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에 지원해 안무 작품들을 내는 데 집중했었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신체적인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볼룸에서 춤을 추는 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싶어 안무가 활동은 잠시 쉬고 있다. 지금은 광고용 안무를 짜거나, 방송 가수들의 안무를 함께 작업하는 정도로만 안무가 활동을 하는 중이다.

안무를 창작할 때는 연구를 굉장히 열심히 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다양한 내용을 찾아보고, 마인드맵처럼 아이디어를 펼쳐놓는다. 그 가운데 포인트를 찾고 엮어서 안무를 만든다.

 

Q. 보깅 무대에서 스타일링이 독특해 보인다. 보깅 무대는 어떻게 준비하는가.

A. 각 볼의 테마와 드레스코드에 맞춰 자신을 꾸며야 한다. 특히 볼에서는 패션을 통해 춤을 돋보이게 해야 하므로 옷이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라텍스 볼에서의 의상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뉴웨이 카테고리의 주제가 아프리카 동물들이었다. 나는 홍학을 컨셉으로 잡았다. 흔한 사파리 동물들과 달리 독특하면서도 내 신체 구조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의상을 직접 바느질해서 만들고, 바디페이팅까지 해서 무대에 올라 큰 환호를 받았다.

무대 연출에도 집중하는 편이다. 가령 하우스 오브 키치라는 볼 무대를 연출했을 때는 컨셉에 맞는 촬영 배경과 런웨이 각도를 만드는 데 신경 썼으며, 포토존에 인형 박스를 만들기도 했다.

 

Q. 지난 2018년에 라텍스볼 뉴웨이 카테고리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감회가 궁금하다.

A. 뉴욕 라텍스볼은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대회다. 나는 보깅을 한국에서 독학했을 뿐 뉴욕에서 배운 적은 없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당시엔 내가 밀란 하우스에 합류하기 전이어서 하우스 간의 응원문화에서도 불리했다. 영상으로만 보던 유명 댄서들과 함께 대기하며 굉장히 떨렸던 기억이 난다.

무대는 오히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큰 대회에 출전하는 건 처음이라 그간 연습한 것을 모두 보여주진 못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홍학 의상이 아주 큰 인상을 남긴 것 같다. 참가자가 정말 다양해서 내 의상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대회 이후 뉴욕의 다른 수업에 가면 댄서들이 플라밍고!”라며 나를 알아봐 줘서 뿌듯했다.

 

Q. 한국에서도 볼이 열리는지 궁금하다.

A. 한국에 볼이라는 문화가 들어온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왁킹 행사에서 이벤트성으로 보깅 배틀이 작게 열렸었다. 이후 내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키치 하우스를 만들고, 뒤이어 다양한 하우스들이 생기면서 하우스들이 돌아가며 볼을 주최할 수 있는 규모가 됐다. 최근 개최한 캐치볼은 해외에서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Q. 보깅 댄스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보깅이 추구하는 가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모델처럼 키가 크고 예쁜 사람만 보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그잡지 속의 표지 모델이자 유명인이라는 자신감만 있다면 누구나 보깅을 할 수 있다. 보깅은 자신감이 생명이다. 어떤 체형이든 자신 있게 춤을 추는 모습 자체가 매력적이다.

 

Q. 타 예술 장르와의 협업도 진행해왔다. 서로 다른 장르가 결합하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가.

A. 표현의 영역이 확장된다. 작품의 주제를 신체로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 비주얼 아티스트 이석 작가와 함께 비디오 아트와 보깅 댄스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는데, 시각 요소와 음악의 결합으로 몸이 표현하지 못하는 영역들이 채워졌다. 특히 시각 예술과 음악이 보깅에서 강조하는 신체의 선과 각, 딱딱 떨어지는 안무와 잘 어우러졌다. 서로에게 영감을 준 작업이었다. 다만 두 장르를 하나로 결합하기 위해 굉장히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디테일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Q. 대중들이 보깅에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가.

A. 사람들이 내 영상만으로 보깅을 접해서 이 춤이 너무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다. 보깅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고, 누구나 보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나아가 대중들이 보깅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최근 들어 대중 가수의 안무에 보깅의 요소가 삽입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가수 엄정화, 가희, 청하의 안무에서 보깅을 차용하기도 했다. 방송 안무다 보니 순수 보깅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보깅을 알릴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본다. 앞으로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고, 보깅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려 한다. 최근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화제가 되며 댄서들을 향한 관심이 커진 것처럼, 보깅이란 생소한 장르가 널리 알려져서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춤을 췄으면 좋겠다.

 

Q.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인가.

A. 보깅 대회에서의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에는 뉴욕에 가서 보깅 문화를 더 많이 배우며 대회도 자주 나가고 싶다. 댄서로서 정점을 찍고 나면 볼을 기획해 후배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나아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보깅을 학문적으로 정리해보고 싶다.

 

뉴욕 할렘가 내 성 소수자들이 차별을 피해 춤추던 공간 볼룸에서 탄생한 보깅 댄스. 이제는 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 나다운 나를 표현하는 보깅 댄스를 즐기며 자신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런웨이: 볼 대회의 카테고리 중 하나. 모델 워킹과 유사한 형식을 띠며 주로 워킹의 힘과 스타일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페이스: 볼 대회의 카테고리 중 하나. 참가자는 마치 화보 촬영지에 있는 것처럼 연기하며, 본인의 눈, 치아, 피부 등 얼굴 요소들을 강조해 뽐낸다.

 

▶▶보깅 댄스를 추는 '유유밀란'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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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홍지혜 기자
gh4784@yonsei.ac.kr

<사진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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