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립서적, 『스키터』

“엄마,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마워. 갱년기 축하해”

 

갱년기를 ‘축하’하는 한 마디가 이리도 어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갱년기는 여성에게 불필요해진 호르몬이 줄어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몸은 그에 맞춰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다. 흔히 말하는 갱년기 증상은 몸이 열심히 변화에 적응 중이라는 신호다. 갱년기는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갱년기에 들어선 여성은 자신이 갱년기임을 부정하며 우울해지곤 한다. 주위 사람들도 당황해 갱년기를 겪는 사람과 갈등이 생기기 일쑤다. 독립서적 『스키터』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소통을 시작으로 엄마의 갱년기는 가족의 삶에 녹아든다.

 

“비로소 엄마가 갱년기라는 걸 정신적으로 인정하는 날이었다. 갱년기가 인생 여정 중 누구나 겪는 과정으로 만들어진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갱년기를 맞이한 작가의 엄마는 불안함에 시달린다. 낯선 변화에 두려워하면서, 곁을 내주지 않는 바쁜 가족들에 외로움을 느꼈다. 의지와 다르게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당혹해하는 엄마의 모습은 가족을 당황하게 했다. 저자인 박지현씨도 엄마의 낯선 모습에 연락을 피하거나 귀찮다고 짜증을 냈다. 어쩌다 말을 건네면 엄마가 신경질적인 말투로 대답해 서로 모진 소리가 오갔다.

하지만 작가의 가족은 함께 노력하기 시작한다. 호르몬은 의지만으로 조절할 수 없으니 엄마가 자책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갱년기가 여성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가족들은 엄마도, 우리도 처음 겪는 갱년기이므로 차근차근 같이 걸어가자고 얘기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뒤로 엄마의 갱년기 증상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가족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노화의 과정을 밟아가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만들었다.

우리 대부분은 처음 갱년기를 마주했을 당시 작가의 가족과 비슷하게 갱년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후 달라진 작가의 가족과 달리 갱년기 여성과 가족의 소통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갱년기 여성은 열감, 안면홍조, 메말라가는 피부와 푸석해지는 머릿결과 같은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신경질, 우울증 등 정신적 증상도 동반된다. 갑작스러운 호르몬 변화와 함께 작가의 엄마와 같은 불안감을 겪으며 밤새워 잠을 뒤척일 수 있다. 이처럼 갱년기는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갱년기를 ‘잘 모르지만, 극복해야 하는 질병’으로 치부한다. 노년인 김영옥 활동연구가는 그의 책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의 페미니즘』에서 자신과 동료의 갱년기 증상에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이에 한국 사회가 여성의 노화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으며 사적 부담만을 지운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갱년기 자체를 질병이라고 오해하며 갱년기의 시작인 폐경을 ‘여성성의 상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처럼 갱년기는 거부하고 싶고 우울한 인상을 남기는 단어가 됐다. 이 같은 오해와 잘못된 인식은 갱년기를 둘러싼 사회적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갱년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사회는 이를 기반으로 갱년기 여성과 소통해야 한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력은 갱년기 여성의 열정에서 나온다”며 갱년기를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갱년기는 부정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중대한 전환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폐경을 ‘월경이 완성된다’라는 의미의 ‘완경’으로 바꿔 표현해 갱년기 이후의 삶을 응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갱년기 여성은 변화를 인정하고 갱년기를 삶의 전환기라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가족과 소통하며 갱년기 증상이 완화된 작가의 엄마처럼 말이다.

 

갱년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갱년기 여성이 받은 상처가 속에서 곪도록 내버려 둔다. 갱년기를 긍정하는 소통은 이를 터뜨려 서로에게 연고를 발라주는 과정이다. 작가의 가족도 소통으로 갱년기라는 시기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다가올 갱년기를 준비하고 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스키터』의 가족은 말한다. 갱년기를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완전한 주인공으로서 인생 2막의 시나리오를 즐겁게 만들어 가길 응원한다고 말이다.

 

글 홍지혜 기자
gh4784@yonsei.ac.kr
<자료사진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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