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이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

지난 일주일간 음식의 맛과 재료, 모양을 세심하게 살피며 먹어본 기억이 있는가. 배달과 밀키트 사업이 활성화되며 음식을 구하는 것은 예전보다 쉬워졌지만, 음식이 우리 삶에서 갖는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순간은 많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은 각 에피소드를 통해 셰프들의 시선으로 요리가 어떻게 우리 삶에 활력과 풍요를 가져다주는지를 보여준다.

 

당신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셰프 마샤마 베일리는 어린 시절 음식을 나누며 얻는 행복을 배웠다. 베일리는 미국 남부의 서배너라는 흑인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가족들의 식사에 내놓는 요리만큼은 늘 푸짐하게 차렸다. 베일리는 “할머니께서는 요리를 통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그러나 열한 살이 되던 해 베일리 가족은 서배너를 떠나 뉴욕에 정착했다. 언제나 음식 냄새가 진동하던 고향에서와 달리 뉴욕에서 음식은 일과 학교에 밀려났다. 어린 마샤마는 고향에서의 일상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느꼈고, 음식이 삶의 풍요에서 큰 부분을 담당한다고 깨달았다.

미국의 스타 셰프 그랜트 애커츠에게 음식은 놀잇감이다. 어린 시절, 장난꾸러기였던 그의 삼촌은 조카 앞에서 보란 듯이 감자튀김을 피클로 감싸 먹었다. 호기심에 삼촌의 장난을 따라 했던 애커츠는 뜻밖에도 두 음식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영양소와 맛이 조화를 이루는 원리에 매료되며 그는 요리와 사랑에 빠졌다. 그에게 요리란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16살의 애커츠는 이미 오믈렛을 오렌지와 파슬리로 장식하며 음식으로 어떤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지 탐구하고 있었다.

멕시코 셰프 엔리케 올베라에게 음식은 선물이다. 어릴 적 그는 착한 일을 하면 음식을 상으로 받았다. 생일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는 어머니의 질문에는 늘 ‘풀포스 엔 수 틴타’라는 문어 스튜를 먹고 싶다고 답했다. 자라서 고등학생이 된 엔리케는 연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 요리에 몰두했다. 낮에는 시장에서 장을 본 뒤,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할 음식을 만들었다. 그의 요리 솜씨가 소문이 나며 곧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님까지 엔리케의 음식으로 파티를 즐겼다. 그는 선물을 주듯 맛있는 음식을 내보였다.

우리에게도 음식은 단순한 식량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명절날 이웃들은 함께 요리하고 반찬을 나누며 교류해왔다. 추석이나 단오와 같은 특별한 날에는 햅쌀로 빚은 송편으로 추수를 감사하거나 시원한 제호탕*을 마시며 여름을 대비했다. 지역의 풍토가 드러나는 특산물로 지역을 알리기도 한다. 제주도를 방문하면 등장하는 한라봉이나 흑돼지와 같은 주요 음식들은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이렇듯 『셰프의 테이블』의 셰프들처럼 우리의 삶도 음식을 통해 풍요로워진다.

 

음식이 담아내는 다채로운 이야기

 

음식에 얽힌 추억과 호기심, 즐거움을 바탕으로 세 사람은 셰프가 됐다. 이들은 결코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향에 돌아와 식당을 열게 된 베일리는 서배너의 식문화를 새롭게 배우고자 직접 농민들과 함께 싱싱한 남부 채소를 재배했다. 해안가에 인접한 섬마을에서 해산물 양식업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만났다. 노예제가 사라진 직후, 아무도 살지 않으려 하는 척박한 땅에서 생존해온 이들의 역사를 통해 베일리는 요리의 지향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그는 곧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되찾고 남부 음식을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서양식 냉스프 ‘오이 가스파초’와 더불어 ‘굴’, 그리고 쌀과 채소가 어우러진 필라프 ‘오크라 펄루’는 남부의 유산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탄생한 요리들이다.

애커츠가 운영하는 식당 ‘알리니아(Alinea)’의 철학은 음식으로 새로움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는 늘 음식을 위한 더 좋은 재료, 더 좋은 장소, 더 좋은 방식을 고민한다. 이는 곧 그가 요리하는 원동력이 된다. 예컨대 어느 날엔 풍선처럼 공중에 뜨는 음식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갖은 연구 끝에 한 요리사가 설탕을 부풀려 모양을 고정하는 법을 고안해냈고, 이 설탕 풍선은 식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메뉴가 됐다. 이렇듯 알리니아에서 손님은 음식을 하나씩 맛보는 과정 자체를 공연처럼 즐긴다. 토마토 모양으로 만든 딸기와 딸기 모양으로 만든 토마토, 거품 모양을 띠는 정체불명의 소스는 이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색적인 메뉴들이다.

엔리케는 멕시코 음식을 고급 요리의 영역으로 들여오는 데 힘썼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요리와 달리 멕시코 요리는 ‘저렴한 요리’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례로 멕시코의 대표 요리인 타코와 몰레는 길거리나 가정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토착 음식들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현대적이고 세련된 멕시칸 레스토랑을 열기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타코의 속재료 구성을 달리하고, 몰레에 100여 가지의 재료를 넣어 일 년 이상 숙성하는 노력을 기울여 이들을 레스토랑의 주 메뉴로 발전시켰다. 이처럼 세 명의 셰프들은 음식을 단순한 식량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새로운 시도, 고향의 문화를 포함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품은 요리는 그 자체로 예술이 됐다. 

셰프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음식의 사회적인 역할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요리는 사람들에게 색다르고 다양한 경험을 가능케 하고, 접시 안에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담길 수 있다. 재료들이 재배되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면서 자연을 향한 관심을 확장할 수도 있다. 우리 주변으로도 눈을 돌려보자. 비건 메뉴를 도입한 프랜차이즈나 동네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식당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회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셰프의 테이블』에는 베일리와 애커츠, 엔리케뿐 아니라 자연식 오픈 파이어 스타일의 요리를 선보이는 프란시스 말만, 인도 음식을 재해석해 아시아 최고의 식당에 선정된 가간 아난드 등 다양한 셰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이 접시 위에 펼쳐내는 이야기와 식당에서 어깨너머로만 보았던 주방의 모습들, 다양한 지역의 식문화가 궁금하다면 『셰프의 테이블』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호탕: 오매육, 사인, 백단향, 초과 등을 가루 내어 꿀에 재워 끓였다가 냉수에 타서 마시는 청량음료.

 

글 김채영 기자
chykim19@yonsei.ac.kr
<자료사진 Chef's Table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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