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규 음악감독을 만나다

▶▶Photo by 우상희
▶▶Photo by 우상희

지난 2020년, 한국관광공사에서 공개한 뒤 여름을 강타한 영상 ‘범 내려온다’를 기억하는가. 국악인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이 영상은 큰 인기를 얻었고, 누리꾼들은 국악이 이렇게 ‘힙’한 음악인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상에 쓰인 노래를 부른 밴드 ‘이날치’도 덩달아 화제가 됐다. 이들은 어떻게 국악을 힙한 음악으로 바꿨을까. 이날치에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는 장영규 음악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영화 음악과 밴드 등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는 장영규다.

 

Q. 한국관광공사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이날치가 큰 인기를 얻게 됐다. 이날치의 결성 계기가 궁금하다.

A. 판소리 「수궁가」로 음악극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수궁가」를 할 수 있는 소리꾼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지난 2008년부터 함께 여러 작업을 했던 안이호 소리꾼과 권송희 소리꾼을 섭외했다. 안 소리꾼이 소개한 다른 소리꾼들도 함께 음악극을 진행하게 됐다. 그러나 국내에서 음악극이 상업적으로 공연되지 않기 때문에 재공연 기회가 많지 않다. 나와 소리꾼들은 이 음악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전통 음악들을 다루는 밴드를 편성해 관객과 더 가까이에서 공연해보자고 제안했다. 초창기에는 이름도 없이 공연했고 관객도 많지 않았다. 갈수록 큰 공연을 하게 되면서 이날치라는 이름을 짓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Q. 이날치는 스스로 ‘국악의 세계화’보다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를 표방한다고 소개한다. 이날치가 ‘얼터너티브 팝’ 장르를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A. 이날치는 판소리를 밴드 사운드로 재해석한 얼터너티브 팝 밴드다. 이날치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음악 활동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전통 음악을 다루면 국악 시장에서 활동하게 된다. 해외 문화원이나 한국을 소개하는 시장 위주로 활동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관객과 가깝고 넓은 팝, 록 장르 시장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팝이라는 장르를 계속해서 강조했다. 그 시장에서 활동하고 소비될 것이라는 선언인 셈이다.

 

Q. 이날치 이전에도 전통 음악 프로젝트 ‘비빙’, 퓨전 음악 그룹 ‘씽씽’ 등 민요나 국악을 주축으로 한 음악에 도전해왔다. 한국의 전통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A. 유명한 국악 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여러 음악 작업을 하다 보니 주변에 전통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같이 작업을 하게 될 기회도 자연스레 많이 생겼다. 전통 음악을 하는 지인들을 오랜 시간 접하니 전통 음악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 사명감을 가졌던 건 아니다. 록 뮤지션들이 록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음악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Q. 국악 내에서도 새롭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A. 전통 음악과 전통 악기 소리에 관심이 있었지만, 음악적으로는 잘 알지 못했다. 비빙에 참여하면서 국악이 어떤 음악인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전통 음악 내에서도 소외돼있는 음악들을 하나씩 공부했다. 불교 음악으로 시작했고, 두 번째는 가면극, 세 번째로 궁중 음악, 네 번째가 판소리였다.

 

Q. 영화 『전우치』에서 전우치가 왕을 농락하는 장면에 삽입된 OST 「궁중악사」를 제작했다. 이 외에도 영화 『곡성』과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영화나 연극에 쓰이는 음악을 제작할 때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는가.

A. 장르의 특성보다는 영화나 연극을 만드는 연출자나 감독과의 소통을 가장 중점으로 둔다. 소통을 통해 작업 책임자가 어떤 사람이고 그가 작업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작업에서 음악이 해줘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런 것부터 충실히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이날치의 멤버들과 함께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음악 제작에 참여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A. 이경미 감독은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다 보니 관습에서 벗어난 음악을 쓰기를 원했다. 사실 그전에 만난 사람들은 국악의 색채가 음악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국악은 전통적인 장면에만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감독은 판소리를 써도 좋겠다고 제안했다. 드라마에는 ‘훔친 방석을 깔고 공부하면 대학에 간다’는 미신을 믿는 학생들에게 훔친 방석을 팔려는 일당이 인근 학교에서 방석을 훔치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 이날치의 곡 일부를 다시 녹음한 판소리를 삽입했다. 방석을 훔치고 나오는 일련의 과정이 판소리의 리듬감으로 재미있게 표현됐다.

 

Q. 국립무용단의 강강술래 ‘완월’의 음악을 만들고 안무도 연출했다. 어떻게 무용을 연출하게 됐나.

A. 보통 강강술래 하면 사람들은 빙빙 도는 춤이라는 형태만 안다. 나도 그 정도로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비빙’과 국립무용단이 연이어 한 무대에 선 것을 봤다. 그곳에서 본 국립무용단의 강강술래는 내가 알던 강강술래와 달랐다. 원형을 살리면서도 기하학적인 매력이 느껴지게 구성됐다. 그래서 국립무용단 단장에게 강강술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매력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1~2년 후에 국립무용단 측의 연락을 받아 함께 작업하게 됐다. 나는 음악을 만들 때 멜로디보다 구조에 중심을 두는 편이다. ‘완월’의 안무를 만들 때도 음악 작업 스타일과 유사하게 작업했다. ‘완월’에서는 잘게 쪼개진 춤의 동작들을 재조합하며 구조를 다뤘다.

 

Q. 사람들이 국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A. 국악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전문 국악 연주자의 목소리를 접하기 힘들다. 국악의 종류도, 무엇이 유명한지도 잘 모른다. 국악을 접할 기회가 줄어드니 국악에 대한 호불호를 판단할 기회도 없어진다. 국악에는 기와집, 창호지같이 촌스럽다는 고정관념이 담긴 이미지만 남는다. 전통 음악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국악을 지나치게 소중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전통 음악도 그저 하나의 음악이다. 들어본 후에 즐길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순수하게 국악을 들을 기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사람들이 국악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하나의 음악 장르로 듣게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우리는 전통 음악을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 음악’으로 여겨왔을지도 모른다. 이와 달리 장 감독은 전통 음악을 하나의 음악으로 바라보고 그의 시선을 활동에 반영하고 있다. 지나치게 신성시되며 어렵게 느껴지던 국악이 장 감독의 활동을 통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르로 바뀌기를 바란다.

▶▶이날치의 얼터너티브 팝 들어보기
▶▶이날치의 얼터너티브 팝 들어보기

글 김지원 기자
l3etcha@yonsei.ac.kr
이승연 기자
maple0810@yonsei.ac.kr
<사진제공 하이크>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