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박경민 기자 (정외·17)
사회부 박경민 기자 (정외·17)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동영상을 봤다. 좁은 화면 안에는 환상의 설국이 펼쳐져 있었다. 부러웠다. 낯선 인간들과 움직이는 숙소에서 적막을 즐기다니. 꿈같은 광경이었다. 홀라당 매료돼 곧 이를 낭만이라 칭했다. 이 열차에 타는 것을 꿈으로 삼게 된 계기였다.

소년은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계산을 시작했다. 특성화고에 다녔으니 취업과 대학 진학을 저울질했다. 금세 무게는 대학 진학으로 기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직장인이 된다면 시간에 쫓겨 열차를 타기 어려울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대학생이 코트 한 벌 걸치고 시베리아를 관통하는 그림도 추가 기울어진 하나의 이유였다.

그즈음,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유명하다길래 손에 잡았을 것이다. 수시용 독서기록장을 작성하기 위해 이리저리 책을 읽던 참이었다. 끊기는 흐름을 애써 부여잡으며 읽은 책의 결론은 허무했다. 주제 의식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 책을 명작이라 정했는지 큰 의문이 들기까지 했다. 10대 소년의 철없는 방황을 그려놓은 게 무어가 대수라고. 외려 주인공이 한심할 뿐이었다. 파수꾼이 되겠다는 다짐의 결말은 공허했다.

세월이 지나 우리대학교에 진학하고, 군대도 다녀왔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나도 제법 어른스러운 모양새를 갖췄다. 다만, 소년의 티를 벗으면서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간다. 자꾸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모든 것은 혹여 이 순간에도 남들에게 뒤처져 라는 상품의 가치가 떨어질까 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나도, 주변 친구들도 저 위압적인 취업의 장벽을 넘기 위해 나를 갈고 닦고 있다. ‘무한 경쟁 사회에 염증이 나면서도 철저히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도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기에.

그토록 소망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아직 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없다. 당장 열차 횡단에 필요하다는 200만 원을 손에 쥐어본 적도 없다. 1만 원 언저리 시급으로 생활하며 그만한 목돈을 바라는 것이 분명 사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돈도 돈이었지만, 꿈을 실현할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었다. 대학 생활도 직장인만큼이나 여유가 없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눈앞에 놓인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방학은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시간일 뿐이니까. 이 뿐만이 아니다. 저번 주를 돌아보니 하루에 5시간쯤 자며 잠을 포기했다. 바쁜 까닭에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 만남도 수 달에 한 번꼴로 미뤘다. 좋아했던 소주도 숙취로 인해 밀리는 일과 공부가 두려워 올해 들어 한 번도 마시지 않았다. 가장 허무했던 것은 열차를 타고자 했던 꿈마저 너무나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걸 포기하고 지워가는 지금, 다시 호밀밭의 파수꾼을 생각한다. 주인공 콜필드가 느꼈던 세상의 염증은 실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포기의 어색함마저도 사라질 것만 같다. 동시에 이제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것보다 눈앞에 놓인 수백 페이지 자료를 읽는 게 우선이니까. 놓인 일을 그만두고 떠나고 싶을 때 바로 떠날 수 있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잘 아니까. 자꾸 잃어가는 걸 붙잡고 싶지만, 이제는 무엇을 잃어버릴지도 쉽게 예측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필드는 파수꾼을 자처했다. 낭떠러지가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순수를 지키기 위해. 본인은 지키지 못했으나, 남은 모두의 순수라도 보호하고 싶었을 테다. 나 역시 그와 같은 마음을 품어본다. 기자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남아있다. 그가 파수꾼을 자처했다면 나는 기자라는 업을 자처하련다. 우리 사회가 순수를 간직한 공간이 되고, 경쟁을 넘어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내게 주어진 속박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파장을 일으키고 싶다.

훌쩍 자라나며 상상을 잃어버리기 전 내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 문득 시베리아를 관통하는 횡단 열차에 타는 내 모습을 꿈꿀 때면 가슴이 아린다. 소년에서 어른에 가까워진 나에게 순수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기에. 혹 앞으로 절대 가지 못해도 미련은 없다. 다른 스무 살의 누군가가 부푼 꿈을 안고 가볍게 떠날 수 있길. 그것으로 만족한다. 우리 사회가 호밀밭의 순수를 간직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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