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원 사회부장 (불문/정외·19)
정효원 사회부장 (불문/정외·18)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화제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넷플릭스 세계 스트리밍 순위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언론, 스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심지어 넷플릭스가 진출하지 않은 중국에까지 불법 유통돼 열풍이 분단다. 중국 대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해시태그의 누적 조회 수가 14억 건을 넘어섰다.

오징어 게임은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참가자들이 모여 게임을 벌이는 내용이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게임에 이들은 목숨을 걸고 참가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구슬치기등에서 패배하면 그 즉시 죽는 것이 게임의 룰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한 서바이벌 게임들이 이어져 한자리에서 1~9화를 몰아봤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 흥미로운 드라마가 내겐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약자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였다. 1살 아기와 아내가 있지만, 임금이 밀려 힘겹게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 알리’, 가족을 탈북시키려다 브로커에게 거금을 뜯긴 탈북민 새벽’. 이들은 모두 약자 중 약자였다. 10명이 팀을 짜야 하는 줄다리기게임에서 참가자들은 강자 편에 끼길 바랐고, ‘알리’, ‘새벽과 같은 약자들과는 한 팀이 되길 꺼렸다.

내가 여태 바라본 세상도 오징어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에서 밀려나고 사회에서 도태되는 인물들의 모습은 현실과 다를 게 없다. 아니 어쩌면 현실은 오징어 게임속 세상보다 더 가혹할지도 모른다. 장애인들은 지난 20년간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의 현주소는 그대로다. 지하철 4호선에서 이동권 보장 시위를 벌여도 돌아오는 건 너희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밀렸다는 말뿐이었다.

이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언어는 범람한다. 그럴듯한 이유가 붙고, 인터넷 (meme)’으로 예쁘게 포장되기도 한다. “장애인들의 시위가 출근길에 방해돼서”, “어른답지 않은 행동들을 해서”, “연금만 타 먹는 틀딱충들이라는 말은 약자의 가슴에 총알을 박는다.

앉은 자리에서 이 안타까운 논픽션을 마주하고, 다시금 내가 우리신문사에 들어온 이유를 상기해봤다. 드라마보다 더 가혹한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들의 문제에 끊임없는 관심을 표하는 것. 그럼으로써 마스크를 쓰고 손가락으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마스크 맨들에게 작지만 강한 펀치를 날리는 것이었다.

물론,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부끄러웠던 적이 많다. ‘탈시설장애인당장주연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를 했던 날이 특히 생각난다. 장 활동가를 만나기 전 장애인 인권을 주제로 시사바로쓰기기사를 썼었다. 인생 처음으로 장애인과 대화한 날이었던 인터뷰 날, 대화를 이어가며 이전 기사를 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어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였을까. 여태 오직 기사를 쓰기 위해 타인의 삶을 이용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게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포부는 어디로 가고, 부끄러움 속에서 한 주, 한 주 당장 눈앞에 놓인 기사를 겨우 마무리해갔다.

황동혁 감독이 드라마를 연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황 감독은 헤럴드 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쟁 사회의 잔인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패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혹자는 오징어 게임의 표현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드라마가 여성, 외국인 노동자, 노약자들을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을 뿐,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봐진다.

이 같은 혐오의 시선에 무뎌져 게임보다 여기(현실)가 더 지옥인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우리신문사 사회부장으로서 처음 수습기자 직함을 달았던 그때의 다짐을 되새겨 본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