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는 사육곰 문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갇혀 사는 야생동물'을 위한 생츄어리 건립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다.

 

▶▶곰 보금자리는 매주 일요일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곰농장에서 사육곰의 건강 및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곰 보금자리는 매주 일요일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곰농장에서 사육곰의 건강 및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윗줄 청소 시작할게요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아래 곰 보금자리) 최태규 대표의 목소리가 곰농장 일대에 울려 퍼졌다. 활동가들이 철창 안으로 던져 넣은 땅콩을 따라 곰들은 하나둘 내실로 들어갔다. 호스로 물을 뿌려 바닥에 널브러진 땅콩 껍데기와 변을 청소한 뒤 곰들에게 얼음 토마토, 멜론, 사과 등이 주어졌다. 곰들은 내실 문이 열리자마자 각자 좋아하는 과일을 집어 들었다. “L4 왼쪽 뒷다리 한 번만 봐 주세요활동가들은 철창 너머로 확인한 곰들의 건강 상태를 관찰지에 적어 내려갔다. 사육장 청소부터 개체 관찰까지, 오전 11시에 시작한 작업은 3시간 넘게 이어졌다.

곰 보금자리는 지난 5월부터 매주 일요일 강원도 화천군 산 중턱에 자리한 곰농장을 찾는다. 수의사, 대학원생, 디자이너, 동물 훈련사, 환경단체 활동가 등 22명이 합심해 13마리의 사육곰을 돌보고 있다. 최 대표는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하는 사육곰 산업을 종식시키는 게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라며 현장에서 사육곰의 복지 향상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와의 인터뷰는 926일 화천 곰농장을 오가는 차 안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동물복지를 공부하는 수의사인 최 대표와 함께 곰 보금자리 활동 전반을 들여다봤다.

 

곰농장 찾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사육곰 입장에서 생각해봐야죠

 

▶▶ 곰 보금자리는 풍부화 프로그램과 긍정강화훈련을 통해 사육곰의 더 나은 삶을 그리고 있다.
▶▶ 곰 보금자리는 풍부화 프로그램과 긍정강화훈련을 통해 사육곰의 더 나은 삶을 그리고 있다.

 

식사를 앞둔 곰들은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철창 안을 빙글빙글 도는 정형행동을 반복하기도 했다. 지난 1982년에 지어진 화천군의 철제 사육장은 용접 부위가 떨어지는 등 노후화가 심각했다. 곰 보금자리는 수시로 철창을 보수하고 매주 곰들의 식단과 훈련을 관리하고 있다. 최 대표는 주변 환경이 깨끗하고 먹이가 풍부하더라도 정형행동은 나타날 수 있다사육 상태에 놓인 곰들은 먹이를 찾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워 야생에서 찾아보기 힘든 비정상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육곰은 사람이 가두어 기르는 야생동물이다. 최 대표는 갇혀 사는 야생동물은 농장 동물, 애완동물과 달리 가축화를 거치지 않아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시설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적이 없다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곰과 같은 야생동물을 농장 동물처럼 키우는 관행이 있어 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곰은 하루에 17시간 정도 섭식 활동을 위해 땅을 파거나 나무에 오른다면서도 농장에서는 밥을 주는 시간이 30분에 지나지 않아 이외의 시간에는 곰의 행동 욕구가 좌절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곰 보금자리는 사육곰이 처한 현실을 점검하고자 지난 20192월부터 6월까지 전국 곰농장 31곳 중 28곳의 실태를 조사했다. 곰 보금자리가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발표한 ‘2019 사육곰 현장조사 및 시민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육곰의 복지 수준은 전적으로 농장주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조사에 응한 농장의 26%가 곰들에게 음식물 찌꺼기를 급여했고 34%는 뜬장*을 사용 중이었다. 최 대표는 곰이 좁은 공간에서 어떤 결핍과 좌절감을 느끼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사육곰이 야생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곰 보금자리는 사육곰이 야생에서 보일 법한 자연스러운 행동을 유도하는 풍부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들은 폐소방호스로 해먹을 만들어 곰들이 나무에 올라가듯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다양한 장소에 먹이를 숨겨 곰들이 찾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행동 풍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 대표는 풍부화는 동물의 생존에 필수적이라기보단 동물복지를 높이는 데 필요한 활동이라며 동물들의 개별적인 맥락을 고려해 풍부화를 진행하면 이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는지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U라인 청소를 끝낸 최 대표는 스프레이에 꿀물을 담아 L라인으로 향했다. 동물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이순영 활동가가 곰에게 꿀물을 뿌리는 사이 최 대표는 통나무를 받쳐 곰의 앞발을 고정한 뒤 혈관을 찾아 채혈을 시작했다. 곰이 느끼는 감정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긍정강화훈련의 일환이다. 그는 블로우건(마취총)으로 마취할 때 개체가 느끼는 통증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연결되기 쉽다긍정강화훈련은 동물이 마취로 인한 고통과 공포감을 느끼지 않고 건강검진을 재미있는 놀이로 생각하게 해 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풍부화와 긍정강화훈련은 사육 환경에서 사람과 동물 간 소통을 돕는 중요한 도구인 셈이다.

곰 보금자리에는 사육곰이 일상에서 느끼는 경험에 집중해야 한다는 합의된 감각이 존재한다. 지난 7월 곰 보금자리는 동물권행동 카라(아래 카라)와 함께 죄 없는 무기징역, 철장 속 사육곰 해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곰 보금자리는 화천 곰농장의 두 사육장을 L라인과 U라인으로 나눠 입구의 개체부터 차례로 L1, L2, U1, U2 등의 일련번호를 붙였다. 곰들의 고유한 특성을 하나씩 호명하고 이름을 짓는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최 대표는 개체별로 먹이와 사람에 대한 반응이 모두 다르기에 개별적인 특성을 먼저 파악해야 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웅담의 늪빠진 사이
열악한 동물복지 놓쳤다

 

화천 곰농장의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육곰 대부분은 좁은 철장 안에 갇혀 음식물 찌꺼기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허술한 관리·감독 체계와 법망의 빈틈이 초래한 결과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현재 369마리의 사육곰이 남아 있다대부분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해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경기도 용인시의 한 농가에서 일어난 사육곰 탈출 사건은 사육곰 산업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2마리 중 1마리가 농장주의 불법 도살을 숨기기 위한 허위 신고로 밝혀지면서다. 최 대표는 "해당 농장은 불법 증식 및 도살로 수차례 과태료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으나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다 보니 불법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사육곰 산업은 지난 1981년 정부가 농가 소득을 보전하고자 곰 수입을 허가하면서 시작됐다. 최 대표는 “1960~70년대 웅담 수요가 늘어나 야생 곰을 찾아보기 어려워지자 정부는 곰 수입과 사육을 정책적으로 장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5년 사육곰 산업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사육곰 수입 금지 조처를 내렸다. 1993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아래 CITES) 가입으로 수출길 또한 막혔다.

 

▶▶ 화천 곰농장의 U라인 전경.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사육곰 산업은 방치됐다.
▶▶ 화천 곰농장의 U라인 전경.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사육곰 산업은 방치됐다.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국내 사육곰 산업은 계속됐다. 녹색연합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사육곰 개체 수 현황에 따르면 사육곰은 지난 1985493마리에서 20051454마리까지 증식했다. 최 대표는 정부는 2014년부터 3년간 중성화를 통해 사육곰 개체를 줄이는 데 성공했으나 이는 오히려 동물복지에 악영향을 미쳤다별다른 사후 처치가 이뤄지지 않아 곰들이 통증을 느끼거나 수술 과정에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곰을 사육하고 도살해 웅담을 채취하는 일련의 과정은 합법이다. 반달가슴곰은 CITES에서 정하는 1등급 국제적 멸종위기종에 해당한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아래 야생생물법) 16조 제3항에 따르면 국제적 멸종위기종은 수입 또는 반입 목적 외 용도로 사용될 수 없다. 그러나 야생생물법 시행규칙 제22조는 10년 이상 증식된 사육곰에 한해 예외적으로 용도 변경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을 보호하면서도 사육곰 산업을 지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함께 존재하는 셈이다.

멸종위기종을 별도로 관리하는 빈틈에서 사육곰의 처우는 열악할 수밖에 없다. 환경부는 지난 2004년부터 지리산국립공원 반달가슴곰 종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복원 대상은 야생생물법 제2조 제3호에서 국내 멸종위기종으로 정하고 있는 우수리 아종**’이다. 같은 반달가슴곰이지만 곰농장에서 웅담 채취용으로 사육되는 곰의 사정은 다르다. 일본, 대만, 히말라야 등지를 배경으로 하는 사육곰은 아종이 달라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최 대표는 국제적으로는 아종의 구분 없이 모든 반달가슴곰을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수익을 위해 사육곰을 키우고 있는 현실에 법을 끼워 넣다 보니 사육곰 산업이 무관심과 방치 사이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남아 있는 사육곰의 삶
해답은 생츄어리에 있다

 

곰 보금자리는 현장에서 동물을 구조하는 활동에 더해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사육곰 산업이라는 큰 매듭을 푸는 중이다. 사육곰 산업이 완전히 종식되려면 개체를 늘리지 않더라도 남아 있는 사육곰을 위한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 최 대표는 사육곰 정책이 중성화 수술에 집중된 탓에 정부는 남아 있는 사육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곰 보금자리 활동가들은 출범 초기부터 생츄어리를 건립해 사육곰 산업을 종식시키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지난 2018년 곰 보금자리가 발간한 동남아 곰 생츄어리 답사 보고서에 따르면 생츄어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동물을 구조한 뒤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돌보는 시설이다. 최 대표는 사육곰 산업 종식 후에도 농장에 남아 있는 사육곰을 보호하려면 이들이 야생과 유사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 곰 보금자리가 답사한 베트남 땀다오 국립공원의 생츄어리. 이곳은 국제생츄어리 연맹 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았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지난 2018년 곰 보금자리가 답사한 베트남 땀다오 국립공원의 생츄어리. 이곳은 국제생츄어리 연맹 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았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생츄어리는 동물이 구조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이들의 더 나은 삶을 기록하는 공간이다. 동물보호 비정부기구인 애니멀스아시아가 펴낸 생츄어리에서의 반달가슴곰과 말레이곰 관리 및 복지에 따르면 생츄어리에서는 청소, 영양 및 먹이 주기, 풍부화 등을 고려한 사육 관리가 이뤄진다. 관리사들은 곰들의 행동과 건강 상태를 규칙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한다. 국제생츄어리연맹에서는 번식, 동물이나 부속물의 상거래, 안내자 없는 관람, 동물 전시 및 생츄어리 밖으로 옮기는 행위, 대중과 야생동물의 직접 접촉 등을 금지하는 생츄어리의 최소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최 대표는 국가마다 운영 방식의 차이는 있으나 생츄어리에서 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동물복지 교육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곰 보금자리와 카라는 오는 2022년 완공을 목표로 경기도 고양시에 민간 사육곰 생츄어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최 대표는 “2022년까지 화천 곰농장의 사육곰 13마리를 민간 생츄어리로 옮기고, 매년 시설을 늘려 총 150마리의 사육곰을 관리하는 게 목표라 말했다. 국가 차원의 생츄어리도 건립될 예정이다. 지난 2월 환경부는 ‘2021년도 사육곰 및 반달가슴곰 보호시설 공모사업을 실시해 2023년 전라남도 구례군에 국내 첫 반달가슴곰 생츄어리를 조성하기로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생츄어리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며 동물을 가둬 놓고 전시·관람하는 게 아니라 동물복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점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곰 보금자리는 동물복지를 증진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육곰 훈련, 풍부화, 생츄어리 건립은 모두 동물복지의 일환이다. 최 대표는 현재 통용되는 동물권 개념에 비추어 동물복지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15년부터 확산된 동물권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을 구조하거나 보호해서도 안 되며 이들이 야생에서 알아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이러한 주장에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동물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동물복지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사람이 가둬 기르는 동물의 입장에서 필요한 걸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는 동물이 무엇을 느끼고 경험하는지 세밀하게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육곰이 자유를 찾아 탈출한다는 통념과 달리 곰의 입장에서 철창 밖 세상은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동물복지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을 동물에게 제공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물복지의 주체는 사람의 상상이 아닌 동물의 감정인 셈이다.

생츄어리 건립은 갇혀 사는 야생동물동물복지가 현실에 얼마나 충실히 반영되느냐의 문제다. 최 대표는 생츄어리는 우리 사회가 야생동물을 함부로 다뤄 온 잘못을 반성하고, 갈 곳 없는 동물들을 어떻게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라 덧붙였다.

 

아쉬움을 느끼기보단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는 거죠최 대표는 사육곰 산업에 관여하지 않던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큰 변화이지 않으냐고 웃어 보였다. 생츄어리 건립은 갇혀 사는 야생동물의 존재와 인간의 책임을 깨달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는 동물복지에 무심한 우리 사회에 곰 보금자리가 내놓은 하나의 답변일지도 모른다.

 

*뜬장: 바닥까지 철조망을 엮어 배설물이 그 사이로 떨어지도록 만든 장

**아종: 분류학상 종의 하위단계로 같은 종에서 유전적 차이, 서식지, 형태에 따라 더 세분된 개념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사진 고운선 기자
avakoboe@yonsei.ac.kr

<자료사진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http://projectmoonbea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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