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보도부장 (ECON·20)
정희원 보도부장 (ECON·20)

 

학내 사안을 다루는 보도1부의 부장이 되고 이런저런 기사를 실어달라는 부탁을 참 많이 받았다. 학교 부처에서 오는 전화부터 학생들의 제보, 학교 본부를 상대로 투쟁해야 하는 분들의 연락까지 그 주체도 참 다양했다. 대학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작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의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매주 보도부에 할당된 지면은 정해져 있다. 우리는 그에 맞춰 기사를 준비한다. 한 면에 들어가는 기사는 보통 두 개뿐이니 부탁받는 대로 기사를 다 쓰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기사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나와 동료 부장은 머리를 맞대고 기사화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따져야 할 것은 여러 가지였다. 신문이 발행될 다음 주 월요일까지 유효한 얘기인지, 학생 기자 신분으로 취재 가능한 사안인지, 지면에 남은 자리가 있는지.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고려됐던 건 사안의 경중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부탁과 제보를 거절했다. 지나치게 소소하다거나 우리가 다룰 내용이 아니라는 판단이 주를 이뤘다. 또 색깔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아예 가지 않은 취재들도 있었다. 당시엔 최선의 결정이라 여겼지만, 우리신문사가 다룰 수 있는 기사의 범위를 스스로 한정 짓는 선택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처음 우리신문사에 들어왔을 때 학내 구성원 모두를 위한 공론장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사자가 아니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고 그러려면 편견 없는 태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좋은신문을 만들겠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상황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어떤 기사를 다루는 게 더 좋을지 결정하느라 보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은 뒷전이 될 때도 있었다. 편집권을 쥐고 내 가치 판단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올릴지 말지 결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누군가에겐 우리신문사에 제보하는 게 최후의 보루였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닿았던 어떤 목소리는 학내로 퍼져나가지 못했다. 그 책임을 느낀다. 가치 있는 신문을 만들고자 함이었지만 그 포부 아래 어떤 목소리들은 묻히고 말았다. 갖가지 이유로 취재를 거절당한 취재원들이 여전히 눈에 밟힌다. 그들이 처한 상황의 경중을 따져서, 다른 기삿거리들과 비교했을 때 가치가 어떤지 나의 기준에 맞춰 평가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대신에 그 지면이 꼭 필요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담겼으니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이 글을 통해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건 하나의 다짐이다. 부장으로선 모든 이야기를 지면에 실을 수 없었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모든 목소리에 공평하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우리신문사를 떠나서도 학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에 꾸준히 관심 가지겠다는 것. 잊지 않게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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