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이분법적 세대 갈등에서 벗어나려면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의가 화제입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정년 연장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평행선을 달리는 두 주장 사이에 탈출구는 어디 있을까요?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
청년뇌관을 건드리다

 

현재 우리나라 정년은 60세이지만, 법제화된 것은 불과 8년 전입니다. 지난 1991고령자고용촉진법이 제정돼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권고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인 정년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20134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아래 고령자고용법)이 통과돼 60세 정년이 의무화됐습니다. 고령자고용법 적용대상은 20161300인 이상 사업장 및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20171월에는 그 외 사업장과 국가·지방자치단체까지 확대됐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2015년까지 55~58세 사이에 머물렀던 대다수 기업의 정년이 2016~2017년부터는 60세로 연장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정년 연장 요구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 정년 체제 유지 시 은퇴 후 국민연금을 수령하기까지의 소득 공백 기간이 길어질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민연금 수령 시기는 고령화 추세를 반영해 현행 62세에서 오는 202363, 202864, 203365세로 늦춰질 예정입니다. 지난 618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산하 현대자동차·기아·한국지엠(GM) 등 완성차 3사 노조는 최대 65세로의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완성차 3사 노조 대표들은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소득 공백 기간에 생계 수단에 대한 특별한 대안이 없다며 국민연금 수령 시기에 맞춘 정년 연장의 법제화를 주장했습니다.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노인 부양 부담 증가도 정년 연장 요구에 힘을 실어줍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021.7%였던 노년부양비*가 오는 2065년에는 100.4%까지 증가할 전망입니다. 이는 정년 연장을 통해 생산 활동을 하는 노동자 수를 늘려 노인 인구 부양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9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산가능인구 부족과 노년부양비 부담의 이중고를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65세로의 정년 연장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4일부터 17일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아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3.9%정년 연장이 청년 신규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정년 연장이 가뜩이나 어려운 고용 시장을 얼어붙게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9.5%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가능성이 작다고 답했으며, 62.9%향후 청년 일자리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8월 기준 우리나라 청년 확장실업률**21.7%로 청년이 체감하는 취업난은 아직 높은 수준입니다.

실제로 호봉제 기반의 우리나라 임금 체제에서 섣부른 정년 연장은 신규 채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임금이 연차에 비례하는 호봉제에서 노동자 임금은 정년 직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릅니다. 정년 연장 시 고연차·고임금 노동자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 사용자의 임금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죠. 한국개발연구원 한요셉 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아래 고용 효과 연구)에서 고용보험 DB를 활용해 지난 2016년부터 진행된 60세로의 정년 연장의 효과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10~999인 규모의 민간사업체에서 정년 연장의 예상 수혜자가 1명 증가할 때 55~60세의 고용은 약 0.6명 증가했지만, 15~29세의 고용은 약 0.2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는 반대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728일에는 현대자동차가, 827일에는 기아와 한국지엠이 차례대로 잠정 합의안을 타결하며 완성차 3사 노조는 파업 없이 임금 및 단체협약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정년 연장은 합의 항목에서 제외돼 잠재적 폭탄으로 남게 됐습니다. 대전 시내버스 노사 역시 정년 연장, 임금 협상 등을 놓고 3월부터 교섭을 진행했지만, 정년 연장과 유급휴일 보장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습니다.

정부 역시 정년 연장이 아닌 고용연장카드를 제시했습니다. 지난 20202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연장도 이제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하며 논의를 본격화했습니다. 올해 8월에는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를 계속 고용할 경우 기업에 지급되는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의 지원 대상이 확대됐습니다. 기업이 정년 후 노동자를 자발적으로 재고용하도록 유도한 것이죠. 정치권에서도 정년을 앞둔 장년층과 실업 문제로 고통받는 청년층의 목소리를 의식해 논의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 정년 연장 관련 내용을 찾아보긴 힘듭니다.

 

 

세대 갈등에 갇힌 논의
정년 연장 이면의 문제들

 

정년 연장을 둘러싼 세대 갈등에서 벗어나 논의를 한 발짝 진전시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년 연장을 넘어 정년 보장, 소득보장체계, 사회적 안전망, 임금체계 전반으로 시각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많은 노동자가 60세 정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2020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5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체감 정년과 노후준비 현황에 따르면 직장인이 예상하는 평균 퇴직 연령은 49.7세로, 2016년 대비 1.2세 낮아졌습니다. 현 정년 60세보다 10년 이상 빠른 수치입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20206월 발표한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60세 정년제를 운용하는 사업체 비율은 전체의 21.6%에 불과합니다. 한편 300인 이상 사업체와 노조가 있는 사업체의 정년제 운용 비율은 각각 92.8%, 96%에 달합니다. 결국 현행 정년 체제의 혜택이 대규모 사업체 노동자에 국한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정년 연장 요구의 시발점인 연금 제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사적연금 등 연금 제도는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는 소득보장체계의 기본 뼈대를 이룹니다. 그러나 지난 2018년 진행된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연금에 의한 소득대체율***39.3%OECD 평균인 65.9%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겠다고 선택한 비율은 1.9%에 그쳤으며, 사적연금 가입률은 24.0%에 불과했습니다. 현행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이고 소득대체율은 40%이지만, 이는 가입 기간 40년을 전제로 책정한 명목상 수치일 뿐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의 국민연금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민연금 전체 수급자 4468126명 가운데 가입 기간이 20년 이상인 수급자는 57971명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민연금 실질 소득대체율은 22.4%에 불과했습니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민연금 고갈도 가속화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8년 실시한 제4차 국민연금 재정 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오는 2057년입니다. 2013년 계산 결과보다 3년 단축된 시기입니다. 연금의 소득보장 효과를 높이고 고갈 속도를 늦추기 위해선 보험료율을 높이는 등 제도 개편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2018년 정부가 보험료율과 명목상 소득대체율을 각각 12%, 45%로 올리는 안을 발표했지만, 추가적인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습니다.

연금 제도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노동자를 포괄할 사회적 안전망도 바라봐야 합니다. 연금은 가입 기간과 은퇴 전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에, 근속 연수가 짧고 소득이 적은 노동자는 그 혜택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지난 20205월 하나금융그룹 100년 행복연구센터가 직장에서 물러난 50~64세 도시생활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만이 노후 자금이 충분하다고 답했으며, 66.0%부족하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연금을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이 퇴직 이후의 삶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지난 2018년 기준 43.4%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이는 OECD 평균 14.0%를 크게 웃도는 수치입니다. OECD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실제로 은퇴하는 평균 연령은 72.3세입니다. 현 정년 60세보다 10, 평균 퇴직 연령 49.7세보다 20년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높은 노인빈곤율이 퇴직자를 노동시장으로 다시 내몰고 있는 것이죠.

정년 연장의 필요성 자체는 충분히 타당합니다. 정년과 국민연금 수령 시기가 불일치해 발생하는 소득 공백은 분명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관련 논의를 전개할 때 임금체계와 정년 연장 속도부터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로 임금피크제 등 기업 부담을 줄이는 제도를 병행한다면 정년 연장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5조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매년 정원의 3% 이상을 청년 미취업자로 고용해야 합니다. 또한 지난 2015년부터 전체 공공부문으로 확대된 임금피크제는 정년 도래 3~5년 전부터 임금을 감액하고 신규 채용에 인센티브를 부여합니다. 고용 효과 연구에 따르면 청년 미취업자 고용 의무가 부과되고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공공기관은 오히려 정년 연장 대상자 1명 증가 시 15~29세의 고용이 약 1.2명 증가했습니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닌 셈이죠.

정년 연장의 속도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한국노동연구원 남재량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018년 발표한 정년 60세 이상 의무제 시행의 고용효과 연구에서 급격한 정년 연장이 노동비용 상승을 유발해 정년에 근접한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고용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정년 연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1년 또는 2~3년에 1세 정도의 완만한 연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정년 연장에는 여러 조건이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쟁은 세대 갈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법적 찬반론은 논의의 본질을 흐립니다. 정년 연장 너머에 숨은 문제를 마주하기 위해 논쟁의 시각을 비틀어야 하는 순간입니다.

 

*노년부양비: 생산가능인구(15~64)에 대한 고령인구(65세 이상)의 백분비

**확장실업률: 기존 실업률 통계에 시간관련추가취업가능자잠재경제활동인구를 추가로 반영한 실업률. 고용시장 분석을 위한 보조지표로 활용되며 체감실업률혹은 실질실업률이라고도 함

***소득대체율: 은퇴 후 받게 되는 연금액이 생애평균소득의 몇 퍼센트인지 보여주는 비율

 
글 여근호 기자
khyeo1123@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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