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영화관 폐업, 위기 타개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영화관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831일 서울극장은 43년간의 추억을 뒤로하고 관객과 작별했다. 세찬 비가 쏟아지던 그 날, 많은 관객이 서울극장의 마지막을 채워줬다. 시간이 흘러 관객이 떠나고 남은 것은 어두운 빗소리와 희미한 조명뿐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깊은 터널에 빠진 영화관은 빛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도금 펜과 오스카 와인
서울극장에 어린 추억

 

지난 831일 서울극장은 다양한 관객들로 북적였다. 마지막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는 관객부터 상영관 입장을 위해 서두르는 관객까지, ‘쓸쓸한활기를 띠는 서울극장의 마지막을 K씨는 홀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극장은 지난 1978917일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영화관은 개봉관에서 최초 상영한 영화를 재개봉관에서 재상영하는 구조였다. 합동영화사는 열악한 시설로 재개봉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세기극장을 인수했다. 이후 서울극장으로 개명하고 시설을 개선해 개봉관 지위를 얻는 데 성공했다.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고정민 교수는 서울극장은 과거 6대 개봉관 중 하나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이후 4개월에 걸친 공사를 마무리한 서울극장은 1980726일 재개관했다. 기존 660석이던 좌석을 1천 석으로 늘리고 70mm 영사기를 설치하는 등 관람 환경을 크게 개선했다.

K씨는 재개관한 서울극장의 첫 관객이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도착한 K씨 뒤로 많은 사람이 줄을 이었다. 서울극장을 운영한 합동영화사 고() 곽정환 회장은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K씨에게 도금 펜을 선물했다. K씨는 서울극장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라며 폐업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찾아왔다고 밝혔다. K씨의 손에는 오스카 보시오 와인이 들려있었다. 곽 회장의 아내이자, 곽 회장 별세 이후 서울극장을 운영해 온 고은아 대표에게 전하는 선물이었다. K씨는 고 대표에게 감사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영화관 측에 와인 전달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서울극장은 지난 1989년 상영관을 두 개 이상 갖춘 다중상영관으로 탈바꿈하며 운영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8CGV 강변 등장 이후 급성장한 멀티플렉스* 체인에 힘을 잃기 시작했다. 2003년 멀티플렉스로의 전환, 2017년 대대적인 리뉴얼 등 다양한 변화로 생존을 꾀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운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72일 영업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81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서울극장 굿바이 상영회-고맙습니다 상영회를 마지막으로 서울극장은 막을 내렸다.

 

찬바람 부는 극장가
절벽 끝에 몰린 영화관들

 

서울극장 폐업은 영화관이 직면한 위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극장을 찾는 발길이 끊기자 문을 닫는 영화관이 속출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아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국내 극장 매출과 관객 수는 각각 전년 대비 73.3%, 73.7% 감소했다. 2020년에만 72개에 달하는 영화관이 휴·폐관한 한편, 새로 개관한 영화관은 33개에 그쳤다. 고 교수는 영화관 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컸다영화관은 많은 사람이 밀집한 공간이기에 관객이 감염 위험을 느끼기 쉽다고 말했다.

위기는 비()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더 치명적이었다. 지난 2020년 기준 전국 474개 영화관 가운데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413개였으며, 4대 멀티플렉스 체인(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씨네Q)의 좌석 점유율은 96.4%에 달했다. 라이카시네마 이한재 대표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시장규모가 작아 코로나19로 인한 급락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주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멀티플렉스와 달리,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적자로 인한 폐업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휴·폐관한 72개 영화관 중 47개가 비()멀티플렉스 영화관이었으며, 새로 개관한 33개 영화관 중 비()멀티플렉스 영화관은 경상남도 산청군 작은영화관이 유일했다.

OTT 시장의 급격한 성장으로 영화관 산업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실제 사냥의 시간, 승리호등 몇몇 영화는 극장이 아닌 OTT 플랫폼을 통해 개봉했다. 국내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발표한 국내 OTT앱 시장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화한 지난 1년 동안 넷플릭스 월 사용자는 20201월 기준 4704524명에서 20212월 기준 113283명으로 113% 증가했다. 고 교수는 많은 이들이 OTT와 같은 대체 서비스에 익숙해졌다코로나19가 종식돼도 얼마나 많은 관객이 영화관으로 돌아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영화관 산업의 장기적인 전망이 밝지 않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다. 영화관 산업은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성숙 산업이다. 특히 영화관이 이미 잘 갖춰진 선진국의 성장 가능성은 더욱 낮다. 고 교수는 영화관 접근성이 낮아 성장 여력이 있는 후진국과 달리 선진국 내 영화관 산업은 성장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하은선 미국통신원의 2019년 미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북미 박스오피스 수입은 전년 대비 4% 감소했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원 곽서연 연구원은 2018년 세계 영화산업 현황 및 2019-2023년 성장 전망에서 2018년부터 오는 2023년까지 북미 영화관 산업 성장률이 0.82%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최근까지 성장을 거듭해 온 국내 영화관 시장도 이제는 포화 상태에 다다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 교수는 “2019년 우리나라 1인당 연평균 관람 횟수는 4.37번으로 세계 최상위수준이라면서도 이 수치에서 더 올라가긴 힘들다고 말했다.

 

코로나 비상(非常) 속 영화관 비상(飛上) 가능할까

 

▶▶라이카시네마는 연희동의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 지하 1층에 위치한 예술영화관이다. 라이카시네마는 카페와 영화관을 접목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라이카시네마는 연희동의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 지하 1층에 위치한 예술영화관이다. 라이카시네마는 카페와 영화관을 접목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변화하는 영화산업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넘어선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된다. 영화관 구독 서비스 버추얼 시네마(Virtual Cinema) 등이 대표적이다. 인하대 연극영화학과 노철환 교수는 3만 원 이내로 영화관에서 최신 영화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프랑스식 구독 서비스는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에게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관 방문 횟수가 많았던 이전과는 달리 계속되는 코로나19 위기와 OTT 시장의 성장으로 영화관 구독 서비스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프라인의 극장 상영료를 온라인에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미국에서 등장한 버추얼 시네마는 코로나19로 영화관이 폐쇄된 상황에서 키노 로버(Kino Lorber), 필름 무브먼트(Film Movement) 등 독립영화배급사들이 개발한 시스템이다. 온라인에서 영화를 개봉하고 수익은 오프라인과 공유한다. 노 교수는 관객이 배급사 홈페이지에서 영화를 구매해 관람하면 관람료 절반이 제휴 영화관으로 넘어가는 온·오프라인 공생 시스템이라며 관객은 제휴 영화관에 애정을 유지하고 영화관은 코로나19를 버틸 원동력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최신 기술 접목 소규모 영화관 등 오프라인의 강점을 살려 관객의 발길을 돌리려는 노력도 계속된다. 고 교수는 기존 영화관에 최신 기술을 접목해 관객에게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20722일 메가박스는 국내 최초의 돌비 시네마를 개관하며 코로나19 극복 의지를 다졌다. 최첨단 음향 기술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와 콘텐츠의 명암 대비를 풍부하게 하는 돌비 비전(Dolby Vision)’을 통해 관객에 높은 몰입감을 준다는 게 메가박스 측의 설명이다. 이외에도 메가박스 측은 다양한 프리미엄 시네마를 선보일 계획이라 밝혔다.

코로나19 위기 속 소규모가 강점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이 대표는 과밀(過密) 공간을 꺼리는 분위기에 적은 인원만 입장할 수 있는 예술영화관이 대형 영화관의 대안으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라이카시네마는 지난 1월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지하 1층에 개관한 연희동 최초의 예술영화관이다. 이 대표는 라이카는 우주를 비행한 최초의 개라며 라이카를 기리고 힘든 시기에 새로운 비상을 꿈꾸자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라이카시네마는 1월 개관기획전을 시작으로, 5월부터는 기존에 여러 편을 묶어 상영하던 단편 영화를 한 편 단위로 상영하는 단편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8월에는 서대문독립민주축제와 연계해 서대문독립민주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예술영화관은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이 대표는 예술영화를 휴식과 대화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문화공간과 접목해 일반 대중이 예술영화관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지울 수 있다영화 외에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영화 팬들에 새로운 경험을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대중들에게 낯선 예술영화의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예술영화 팬들에겐 경험의 폭을 넓히는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스페이스독을 방문한 추지윤(24)씨는 여러 문화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것이 마음에 들었다원래는 카페를 방문하고자 이곳을 찾아왔는데 예술영화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라이카시네마는 이후에도 다양한 기획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 대표는 영화 관람 후 카페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시네마 토크’, 건물 내 멀티미디어 장비를 활용해 층마다 어울리는 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영화제등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극장에서 K씨와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던 순간, 고 대표가 기자 옆을 지나갔다. 가방에는 K씨가 선물한 오스카 와인이 꽂혀 있었다. K씨는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자신을 소개했다. 고 대표의 표정에는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서울극장 마지막 날 두 사람의 대화에 첫 날의 추억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영화관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하나의 콘텐츠를 통해 시간을 공유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영화관의 끝을 얘기하는 시대에도 새로운 시작을 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노력이 꽃을 피워내는 날을 그려본다.

 

*멀티플렉스: 일반적으로 6개 이상의 스크린을 운영하는 상영관과 다양한 부대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는 공간을 의미

**복합문화공간: 문화예술의 복합공간으로서 커뮤니티 공간, 공연 공간, 전시 공간, 휴게 공간 등을 포함하는 한 공간을 의미

 
글 여근호 기자 
khyeo1123@yonsei.ac.kr
사진 고운선 기자
avakobo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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